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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금강경 金剛經 이색이상분
常不輕菩薩 2015-07-07 21:39:10, 조회 : 1,306, 추천 : 0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처님을 충분히 갖추어진 형상이 있는 몸으로써 볼수 있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충분히 갖추어진 형상이 있는 몸 으로는 볼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충분히 갖추어진 형상이 있는몸 이란 곧 충분히 갖추어진 형상이 있는 몸이 아니라 그 이름이 충분히 갖추어진 형상이 있는 몸 이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를 충분히 갖추어진 형상으로 볼수 있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를 충분히 갖추어진 모든 형상 으로는 볼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모습이 충분히 갖추어짐 이라고 하시는 것은 곧 모든 모습이 충분히 갖추어짐 이 아니라, 그 이름 을 모든 모습이 충분히 갖추어짐 이라고 합니다.
--------------------------------------------------색과 상을 여읨


해설

우리가 영원하다고 생각하여 집착하는 모든 만상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형상은 모두 껍데기에 불과합니다.아무리 부처님 몸일지라도 그 모습을 이루고 있는 물질들은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고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어떤 모습이나 형상을 가지고 부처님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모양에 사로잡혀서도 안 되고 물질세계의 어떤 껍데기에도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이색이상분의 내용입니다.
부처님은 중생이 법신을 보지 못하고 다만 삼십이상 팔십종호의 부처님 몸을 보고 여래의 참모습인 줄 알까봐
염려하신 것입니다.순간순간 변하고 결국에는 사라질 물질이나 형상에 대한 집착을 여의었을 때 비로소 참된 부처님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구족색신이란 깨달음을 이루신 거룩한 부처님의 모습을 말합니다.여기서 말하는 색신은 구체적인 육신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부처님은 중생 교화를 위해 하나의 방편으로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지니고 생노병사의 과정을 거치셨습니다.
역사적인 인물로 사셨던 석가모니 부처님은 화신으로서의 부처님입니다.
그러한 부처님의 육신을 보고 부처라 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거룩한 모습을 갖추셨다 할지라도 육신은 순간적으로 존재할 뿐 생사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 물질이 인연으로 모여 잠시 몸을 이루었다가 언젠가는 지수화풍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육신으로는 진정한 여래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심지어 부처님을 직접 대하고 있는 수보리조차도 모습으로는 여래를 볼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된 부처님은 눈에 보이는 껍데기가 아니라 깨달은 마음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거룩한 육신은 거룩한 마음을 바탕으로 하여 저절로 생겨난 것입니다.
참다운 마음이 완비되고 구족되어 형성된 것이므로 진리의 몸은 물질을 떠나고 껍데기를 떠난 마음자리에 있습니다.

진실된 부처를 보려면 그 모습에 끄달려서는 안됩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무히 훌륭해도 깨달음의 눈으로 보면 진여의 실상이 아니므로 그 이름이 구족한 색신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제상이란 부처님이 갖춘 성스러운 모습을 뜻합니다.
부처님은 여러 생에 걸쳐 중생을 제도하고 수행한 과보로 보통 사람의 몸과는 다른 삼십이상 팔십종호의
뚜렷한 특징을 갖추게 되셨습니다. 절에 모셔져 있는 불상은 이런 모습들을 표현해 놓은 것입니다.
눈썹 사이에 백호가 있고,머리 위에 열 길의 광명이 따라 다니는 등 삼십이상 팔십종호의 특징이 없으면 부처님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삼십이상 팔십종호를 갖추어 훌륭한 길상을 지녔다고 해서 그것으로 여래를 볼 수는 없습니다.
보신이나 화신은 법신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으며 여래의 법신은 마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부딪치게 되는 모든 비극은 껍데기에 쏠려 그것이 전부인 줄 아는 어리석음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형체를 떠나고 상을 떠나 스스로 갖추어진 영원한 생명인 부처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부처님은 어떤 형상으로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간절히 기도하고 정진하면 내 마음에 자리하고 있는 부처님의 자재로운 힘이 모둔 것을 다 이루어 주십니다.
이 원리를 아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맑히고자 정성을 다합니다.

부처님께서 삼십이상 팔십종호의 거룩한 모습을 하고 계시더라도 그것은 다만 중생을 깨우치기 위한
방편의 모습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 모든 형상은 인연따라 잠시 한 덩어리를 이룬 것에 불과하므로
단지 이름하여 구족하다고 말할 뿐입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허망한 것임을 깨우쳤을 때 비로소 진정한 여래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옮김


꽃들이 만발한 이곳에 / 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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