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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의 불교계소식

 몸을 가두니 복(福)...
眞虛性宗 2005-11-17 10:58:40, 조회 : 1,987, 추천 : 0
  첨부파일 : 200511160371_01.jpg (42kb)   다운 : 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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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死必打破(생사를 반드시 타파하겠노라).”

지난 15일 저녁 계룡산 갑사 대자암. 암자 앞마당에 서면 단풍이 거의 졌음에도 여전히 수려한 풍광을 뽐내는 계룡산 자락이 눈앞에 병풍처럼 펼쳐진다. 그러나 스님 25명은 그 풍경에 눈 돌릴 틈 없이 분주한 모습이었다. 음력 10월 보름, 동안거(冬安居) 시작일인 16일부터 3년간 대자암 무문관(無門關·12명)과 부여의 폐교를 개조해 만든 분원(分院·13명)에서 가행정진(加行精進) 수행하기 위해 자원한 스님들이다.

무문관의 생활은 일반 선원(禪院)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선원의 동·하안거는 3개월씩. 큰 선방에서 스님들이 함께 좌선한다. 대부분 시간표도 정해져 있다. 선원 밖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함께 노동(울력)도 하고, 간단한 대화도 나눌 수 있다.

그러나 무문관에서는 철저히 혼자다. 혼자서 길 없는 길, 문 없는 문을 헤쳐 나가야 한다. 스님들에겐 2~3평 남짓한 방 한 칸씩이 주어졌다. 스님들이 목욕하러 간 사이 잠깐 들여다 본 방은 ‘꽤 좁은 여관방 같다’는 인상이다. 그러나 문 옆에 뚫린 ‘밥구멍’을 보는 순간, 감옥의 느낌이 확 온다. 여기가 그냥 먹고 자는 곳이 아니라, 화두(話頭) 하나밖에는 의지할 것이 없는 무인도 같다는 느낌도 든다.

하루에 단 한 번, 오전 10~11시 사이 밥을 넣어주기 위해 뚫어놓은 가로 30Cm, 세로 20Cm 정도의 작은 ‘밥구멍’ 안쪽엔 ‘필요하신 것은 메모해 주세요’라고 적혀있다. 꼭 필요한 의사소통도 말이 아니라 메모로 하라는 이야기다. 하물며 외부와의 서신교환은 일절 없다. 방안엔 냉장고, 전자 레인지, 찻물을 데우기 위한 커피포트와 작은 탁자, 이불 한 채, 참선 때 앉는 방석뿐. 방 옆엔 세면대와 변기가 설치된 욕실과 작은 수납공간이 붙어있다. 개인적으로 준비한 약(藥), 생식, 녹차 등은 있지만 서책(書冊)류는 없다. 스님들은 3년 동안 이 방안에서 보름에 한 번씩 스스로 머리를 깎아가며, 스스로 규칙을 세워 살아야 한다. 몸이 아파서 문을 나오게 되면 그 자리는 바로 대기자에게 돌아간다.

직사광선 쬐지 못하는 스스로 선택한 감옥살이, 그것도 지독한 독방살이인 셈이다. 그럼에도 지난 8월 수행자를 모집할 때 21명 정원(이후에 4명 증원)에 107명이 몰려 추첨을 통해 참여자를 선발해야 했다. 이 같은 수행열기에 대해 불교계에선 “선승(禪僧)들은 한국 불교의 힘이고, 에너지원(源)”이라 부른다.

스님들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와 사진촬영을 꺼렸다. 15일 밤, 간단한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암자를 나온 한 스님을 우연히 만났다. 스님은 “모든 세상일에서 벗어나 3년 동안 본래의 마음자리를 찾는 공부에 몰두하고 싶어 휴대폰, 자동차 모두 없애고 무문관을 찾았다”고 말했다. 16일 오전 입재법회 후 대자암 조실 정영(瀞暎·83) 스님과 25명 스님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제 옆방에 살아도 3년간은 얼굴을 마주할 수 없는 마지막 자리였다.

정영 스님은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올곧게 간단없이 정진하라”며 “이 가운데 도인(道人)이 나오길 빈다”고 당부했다. 이후 부여에 머물 스님들은 길을 재촉했고, 무문관 스님들 역시 방으로 사라졌다.


조선일보 2005.11.16 대자암(공주)=김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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