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꽃의 장
꼬살라 왕자 위두다바의 사끼야 족에 대한 원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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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제따와나 수도원에 계시던 어느 때, 꼬살라 국왕 빠세나디의 아들인 위두다바와 관련하여 게송을 설법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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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왕위를 강탈당하는 빠세다니 왕 이야기
왕은 반둘라의 후임에 반둘라의 조카인 디가까라야나를 임명했는데, 의협심이 강했던 그는 왕에게 아무 죄도 없는 삼촌을 죽인 문제를 준엄하게 따졌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빠세나디 왕은 후회스럽고 고통스러워 견딜수가 없었다. 그는 이제 마음이 평화롭지 못했고, 통치의 기쁨도 느끼지 못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마을 울룸빠에 계시었는데, 국왕은 부처님을 뵙기 위해 그곳으로 가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데를 잡아 임시 천막을 쳤다. 그런 다음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다섯 가지 표지(왕관・옥쇄・왕홀・반지・망토)를 군사령관 까라야나에게 맡겨 두고
몇 사람의 수행원만을 거느린 채 부처님을 찾아갔다.
국왕이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떠나는 것을 본 군사령관 까라야나는 즉석에서
결단을 내렸다. 그는 왕자 위두다바에게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다섯 가지 표지를 주어 왕으로 추대한 뒤
빠세나디를 위해서는 말 한 마리와 시녀 한 사람만을 남겨둔 채 사왓티로 돌아와 버렸다.
한편 빠세나디는 부처님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설법을 들은 다음 밖으로
나와 보니 단지 말 한 필과 시녀 한 사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는 매우 놀라 남아 있는 시녀에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 보았다. 그러자 시녀는 모든 사실을 고했다.
빠세나디는 새로 왕이 된 위두다바를 붙잡기 위해서는 마가다 국의 젊은
조카 왕에게 힘을 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마가다 국에는 빠세나디의 누이가 시집을 갔기 때문에 지금의
왕은 그의 조카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도움을 청하려고 시녀와 함께 급히 말을 달려 라자가하(마가다 국의 수도)에 도착했다. 그러나
날은 이미 저물어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기 때문에 빠세나디는 성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늙은 데다가 더위와 피로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리하여 늙은 왕은 허술한 휴게소에서 누운
채로 죽고 말았다.
다음날이 되어 시녀는 왕이 죽은 것을 알고 통곡했다. 그리고 빠세나디 왕이 죽었다는 사실은 위두다바에게도 전해졌다. 위두다바
왕은 부왕의 장례를 치렀다.
이렇게 왕이 된 위두다바는 지난날 사끼야 족에게서 당한 모욕을 상기했다. 그는 곧 군대를 일으켜 사끼야 족을 멸망시키려고 진군해 나갔다.
이날 새벽 부처님께서는 신통력으로써 당신의 출신국인 사끼야 족들이 파멸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을 아시었다. 부처님께서는 사끼야 족을 보호해야겠다고 생각하시었다. 그래서 탁발을 하시고 응향각에 돌아오신 다음 사자와 같은 위용으로 오른편으로 누우시어 저녁 해를 보내시었고, 석양 무렵에 허공을 날아 까삘라왓투 근처로 가시었다. 부처님께서는
그늘이 아주 짧은 나무 밑에 앉으시었다. 그때 그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군대를 주둔하고 있던
위두다바는 아주 큰 반얀나무 그늘 아래 서 있다가 부처님을 보았다.
그는 곧 가까이에 다가와 부처님께 머리를 땅에 대고 인사를 올린 뒤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이 더운 날씨에
왜 이렇게 그늘이 엷은 곳에 앉아 계십니까? 저쪽에 그늘이 좋은 반얀나무가 있으니 그곳으로 가시어 앉으시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대왕이여, 여래에 대해 상관하지
마시오. 내 종족의 그늘이 나를 시원하게 해주고 있소."
위두다바는 곧 부처님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하였다.
'부처님께서 이곳에 계시는 것은 사끼야 족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곧 부처님께 머리를 조아려 인사를 드린 다음 군대를
이끌고 사왓티로 떠났다. 이에 부처님께서도 허공을 날아 제따와나 수도원으로 돌아오시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서 위두다바 왕은 다시 사끼야 족에 대한
분노를 일으켜 두 번째로 군대를 이끌고 진격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부처님은 같은 장소에 앉으셔서 위두다바를
제지하시었기 때문에 위두다바는 거의 까삘라왓투 국경까지 갔다가 군대를 철수할 수 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는 다시 군대를 이끌고 사끼야 족을 치러 갔고, 이때에도 부처님이 이를 막아내시었다.
부처님께서는 이 같은 방법으로 당신의 모국을 세 번이나 지키시었으나, 사실은 이 또한 임시적인 것에 불과했다. 네 번째로 위두다바가 군대를
이끌고 사끼야 족을 치러 가자 부처님께서는 사끼야 족의 업을 읽으시고 더 이상 그들을 보호하지 않고 그냥 수도원에 남아 계시었다. 꼬살라의 위두다바는 국경에 이르러 부처님이 보이지 않자 주저하지 않고 까삘라왓투로 진격해 나갔다.
위두다바는 직접 군대를 지휘하여 사끼야 족을 공격했다. 이때 사끼야 족 중에서도 정각자 붇다의 친족들은 비록 자기들이 희생되더라도 적을 죽이지는 않으리라는 결심을
다지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끼야 족은 매우 능숙한 전술가들이고 또 훈련이 잘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활 쏘는 데 있어서 어떤 종족보다도 우수하다. 특히
우리의 긴 활은 매우 평판이 높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솜씨만을 보일 뿐 사람은 죽이지 말자."
그래서 그들의 창이나 화살은 사람은 다치지 않고 위두다바의 병사들 사이로
날아가기만 했다. 위두다바도 곧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편 위두다바는 병사들에게 사끼야 족은 모두 죽이되 마하나마를 따르는
자들은 살려 주라고 지시해 두었다. 그래서 힘이 부족하고 숫자도 적은 사끼야 족은 마침내 다 멸망하였고, 단지 마하나마를 따르거나 사끼야 족이 아니라고 자기 출신을 부정하는 자만이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사끼야 족들은 여간해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그들 중 일부는 살기 위해서 풀잎을 뜯어 입에 물거나 갈대를 꺾어 입에 물고 있었다. 그것은 병사들이 그들에게
"너희는 사끼야 족이냐?" 하고
물으면 그들은 "아니요. 우리는 풀잎이요." 라든가, "아니요. 우리는 갈대잎이요." 라고 대답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방법으로 그들은 살아날 수 있었는데, 이후부터 그들은 「풀잎 사끼야 족」, 「갈대잎 사끼야 족」 이라고 불리었다. 그런 풀잎과 갈대잎 사끼야를 제외한 모든 사끼야 족은 비록 젖먹이일지라도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고 다 죽임을
당했다. 그래서 위두다바는 결국 자기가 어릴 때 앉았던 자리(우유와
물로 바닥을 씻으며 궁녀가 자신을 노예의 자식이라고 비웃던)를 맹세했던 말 그대로 사끼야 족의 피로
씻을 수 있었다. 그렇게 복수를 한 다음 그는 군대를 철수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