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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창포불교대학


  인사하는 도반의 공간

 前 서귀포불교대학장 현수언
眞虛性宗 2015-01-21 21:15:54, 조회 : 1,857,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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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수언 前 학장은 … 1935년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 출생했다. 1955년 초등교사 교편생활 시작했으며 1976년 서귀포서화 동호인회 가입을 시작으로 서예생활을 시작했고, 소암 현중화 선생으로부터 17년 간 서예를 배웠다. 2000년 서귀포불교대학 1기로 입학해 2003년 서귀포불교대학 학장에 취임했다. 학장을 역임하면서 경전 암송대회, 수계법회시 1080배 실시, 매년 설악산 오세암·봉정암 성지순례, 매월 격월로 신행·산행법회 봉행, 성도재일을 앞두고 철야정진 수련회 개최, 사경노트 제작 등 2013년 퇴임까지 9년 8개월 동안 면학 분위기를 조성해 명문불교대학으로 부상에 노력했다. 2009년 붇다대상을 수상했으며, 2005년부터 제주를 찾는 신혼부부 1700여명에게 자신이 쓴 휘호를 선물했다. 매해 입춘절마다 ‘입춘대길’ 휘호 를 지인들에게 선물하며 서예를 수행의 방편으로 삼고 있다.

1990년 후반 2000년 초에 접어들면서 제주지역에 ‘불교대학’ 설립 붐이 조성됐다. 제주지역 불자들도 정법불교를 통해 ‘기복신앙’에서 벗어나 ‘참 불자’의 언덕을 건널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특히 인구 16만의 소도시 서귀포시 유일의 ‘서귀포불교대학’은 지난 2000년 4월 문을 연 후 지금까지 2천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다. 서귀포시장을 비롯해 기관단체장, 지역 유지 등도 서귀포불교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지역 내 교류가 형성되지 않을 정도로 서귀포불교대학의 위상과 명성은 높다. 타 종교인들도 불교를 알고자 문을 두드릴 정도다. 서귀포 불교대학이 ‘제주 불교대학의 메카’가 될 수 있었던 데는 종단을 초월해 지역 스님들이 교수협의회를 구성하고 대학 강의와 신행활동에 도움을 주는 시스템이 주효했다. 또한 그 중심에는 2003년 7월 학장을 맡아 2013년 3월까지 9년 8개월 동안 서귀포불교대학과 함께한 현수언(80) 前 학장이 있었다.

불교에 대한 목마름… 불교대학 1기 입학
초등학교 교편을 잡고, 취미 생활로 서예를 즐겼던 현 前 학장은 처음부터 열렬한 불심을 가진 불자는 아니었다. 초하루에 아내를 절에 데려다 주는 것 외에는 사찰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귀포시 법환초 교장 퇴임을 앞둘 무렵이었다.
현 前 학장은 “당시 교편을 잡고 있던 법환초 어머니회장이 바로 불자 탤런트 고두심 씨의 친동생 고두실 씨였다”며 “친하게 지내는 지인 역시 독실한 불자였다. 자연스럽게 법우들과 함께 한마음선원 제주지원과 혜국 스님이 창건한 남국선원 등을 참배하면서 불심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고, 정년퇴임 후에는 사찰을 순례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자연스레 불자가 됐다”고 회상했다.
당시만 해도 사찰에 가면 불교에 대한 기본교리를 가르치는 과정이 전무했던 터라 현 前 학장은 불교에 대한 목마름이 가득했다. 1999년 정년퇴임 후 2000년 3월 불교대학이 개원하자마자 바로 입학신청을 했다. 1년 동안 불교대학에 입학, 불교에 대해 알아가며 그는 자신의 인생을 바르게 회향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또 서귀포시의 저명한 서예가소암 현중화 선생으로부터 서예를 배웠던 그는 불교대학 졸업 후 약천사에 머물면서 매일같이 법구경과 경전 등을 사경하며 불심을 돈독히 쌓아나갔다. 한지에 먹물 들 듯 그렇게 현 전 학장에게는 시나브로 불자의 색이 입혀졌다.
“당시 약천사 주지 성공 스님은 대보름이 되면 경내에서 달빛축제를 열었어요. 졸필일지 모르지만 저 나름대로 정성껏 부처님의 말씀을 부채에 써서 그날 오시는 분들에게 선물로 20~30개를 보시했더니 많은 분들이 좋아하셨습니다. 불자로서의 첫 작품 활동이었던거죠.”

“서귀포불교대학의 구원투수가 돼 달라”
붓으로 금강경 전편을 사경하는 등 불심이 타오를 무렵, 현 前 학장은 뜻하지 않은 전화를 받게 됐다. 당시 서귀포불교대학 교수협의회장이었던 시몽 스님(前 법화사 주지)으로부터 서귀포불교대학장을 맡아달라는 전화였다. 그가 사찰에서 수행하는 모습을 지켜봤던 시몽 스님이 현 씨를 서귀포불교대학을 이끌 적임자라고 눈여겨 본 것이다. 당시 평균 40여명을 웃돌았던 입학생들이 8~9기에 접어들면서 10여명으로 급감했고, 서귀포불교대학에게는 급한 불을 꺼 줄 수 있는 구원투수가 필요했던 셈이다.
“처음에는 불교대학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망설였지만 끝내 수락을 했죠. 입학생 모집이 당장 발에 떨어진 불이었기 때문에 40여 곳의 사찰을 순회하며 스님들에게 신도들의 불교대학 입학 권유를 일일이 당부했습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10기는 35명, 11기는 49명이 입학하는 등 입학생 숫자는 점차 늘어갔다. 그래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불교대학에 강의를 받으러 오는 학생들마다 대학 입구에서 일일이 악수를 청하며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입학생들의 불교에 대한 호감도는 자연스레 높아졌다.
점차 학생들이 증가함에 따라 약 30평에 지나지 않던 기존의 강의실이 비좁아졌다. 서귀포시 서홍새마을금고 2층 건물을 임대해서 쓰다 2005년 6월 동홍동으로 이전, 약 3배에 달하는 80평 규모의 건물로 이사를 가게 된다. 9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의실과 참선실, 휴게실, 행정실 등을 갖춘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개교 5년 만에 학교 이전을 통한 새로운 출발의 전기를 마련한 야심찬 도전이었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학장을 비롯해 모든 임원들이 무보시로 봉사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며 입학생들의 입학금을 조금씩 모아 목돈을 마련해 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현 건물의 매입을 맡았던 임원이 등기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건물이 담보로 잡혀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설상가상으로 법원에 경매 공고가 떴다.
“12기가 졸업할 시기였는데 학생들에게 얼마나 미안한 마음이 들던지 지금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입니다. 임원들과 해결방안을 두고 머리를 맞댔지만 또렷한 방법이 나오질 않았어요. 경매에 참여를 했고 혼자 법원에 가서 결과를 지켜봤지요.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조마조마합니다. 당시 입찰에 참여했던 곳 중에 교회도 있었지만 결국 우리가 낙찰받게 됐어요. 바로 불법을 널리 펴라는 부처님의 가피지요. 그 일로 오히려 학생들에게 더욱 힘 쏟을 수 있는 전화위복이 됐지요.”

명문불교대학으로서 부상
이후 서귀포불교대학은 불교를 공부하고 싶어하는 서귀포시민들의 갈증을 해소하며 명문불교대학으로 부상하게 된다. 결국 80명도 모자라 90명으로 입학 정원을 늘려도 대기자가 밀려 2~3년 동안 적체되는 현상까지 빚어졌다.
현수언 학장은 서귀포불교대학에 교육과정을 확실하게 뿌리내렸다. 학생들이 힘든 수행 과정을 몸소 체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수행의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서귀포불교대학생이 되면 졸업을 한 달여 앞두고 수계법회가 봉행된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지었던 죄업을 1080배를 통해 참회하면 수계증을 받을 수 있다.
현 前 학장은 수계법회 날 1080배를 하는 이유에 대해 “수계는 진정한 계율의 상징이자 ‘참 불자’가 되는 첫 걸음”이라며 “이를 불교대학에서 이론 공부를 했다고 받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자신의 참 본래 모습을 발견할 때 자신의 법명 역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또 서귀포불교대학 재학생들은 성도재일을 앞두고 매년 1월 초에 철야용맹정진 수련회를 개최한다. 수련회는 발우공양은 기본이고 불자의 서원과 발원문 작성, 포살자자, 웰다잉 강의, 유서쓰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재학생들에게 불성의 씨앗을 심어주고 있다.
또한 현 전 학장은 격월로 신행과 법회를 봉행하는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신행법회는 둘째 주 일요일마다 교수 스님들의 사찰을 순회하며 다양한 수행을 체험해볼 수 있다. 이론공부만으로는 부족하기 쉬운 수행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했다. 불교대학이 단지 불교지식만 전달하는 공간이 아니라 수행을 통해 학생들에게 진정한 불성을 심을 수 있도록 밑거름을 만드는데 주력하고자 했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현 前 학장은 “불교대학을 졸업했다면 기본적인 경전을 독송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불자의 기본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졸업을 앞둔 학생들은 불교대학 강의실에서 경전 암송 시험을 치른다. 시험과목에 선정된 경전은 반야심경·천수경·이산·혜연선사발원문 등 총 6개로 포교사가 시험관으로 나서 심사를 한다.
“지난 2005년부터 경전 암송시험을 치르고 있습니다. 각 경전별로 완벽하게 독송해야 완독 점수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학사관리가 철저하기로 유명합니다. 경전암송 이외에도 사경, 출석 등 6가지 신행점수를 종합해 졸업식 때 시상하고 있고요. 최우수상은 제가 경전을 쓴 8곡 병풍을 선물로 선사합니다. 최고 인기죠. 경전 암송은 시험공부처럼 억지로 외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신심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야 해요. 경전을 모두 외웠다고 자만에 빠지면 오히려 독이 되기에 공덕을 쌓는 마음가짐으로 늘 생활 속에서 수지독송하는 습관을 들이고자 경전 암송시험을 도입하게 됐습니다.”
또 현 前 학장은 지난 2005년부터 매년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설악산 오세암·봉정암 성지순례를 교과과정에 편입했다. 이는 재학생들의 불심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톡톡히 하며 많을 때는 200여명이 동참할 정도다. 덕분에 예기치 않은 효과까지 생겼다. 설악산-봉정암 순례가 인기 코스로 자리잡으면서 동문과 재학생들이 봉정암의 ‘깔딱고개’를 넘기 위한 예행연습으로 한라산을 함께 오르며 관계를 돈독히 다지는 것이다.

도민들에게 불법의 징검다리 놓아줘
이처럼 다양한 수행 프로그램 도입을 통해 현 전 학장은 제주를 불심의 땅으로 더욱 공고히 다졌다. 그는 지난 2009년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사)붇다클럽에서 제정한 ‘붇다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제주도민들이 행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불법의 징검다리를 놓아준 것이다.
현 前 학장은 재학생들의 신심 구축뿐 아니라 사경의 생활화 확산에도 몸소 노력했다. 노트형 사경집을 직접 제작해 배포한 것이다.
“기존 사경집은 금강경과 법화경 등 경전별로 글자 위에 베껴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그래서 저는 100장 분량의 백지에 줄만 그어진 노트 형태로 사경집을 제작해 자신의 근기에 맞게 사경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특히 낱장의 사경지는 사경 후 부처님께 봉안하거나 집에 보관하면서 분실되는 경우를 쉽게 보았기 때문에 정돈된 형태의 사경노트를 통해 부처님법을 정성스럽게 써 가보로 물려주는 사경운동도 함께 펼쳐보고 싶었어요.”
현 前 학장에게 서예는 사경과 더불어 또 다른 수행의 한 방편이 되고 있다. 지난 2005년부터 불교대학 강의가 없는 날이면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의 앞날에 행복이 깃들기 바라는 마음을 담아 곳곳에서 휘호를 무료로 써주고 있다. 장소는 주로 제주도내 주요 관광지인 산방산과 천지연 폭포, 이중섭 거리 등이다. 그는 신혼부부들에게 초심을 잃지 말라며 ‘행복한 가정’을 주제로 휘호 선물을 해 오고 있다.
지금까지 2천여 부부에게 글을 써 주었다는 현 前 학장은 “관광객들로부터 듣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미묘한 공양구가 되어 신심을 불러일으킨다”며 “관광객들이 제주에서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돕는 포교사가 되고 싶다”는 바람도 밝혔다.
지난 2013년 학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서예인으로, 포교사로, 불자로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현 前 학장은 “서예를 통해 사경에 주력할 것이고, 부처님의 교리를 꿰뚫는 불자가 되겠다”고 밝혔다.
그래서 일까. 매년 입춘이 돌아오면 손수 먹을 갈고 화선지를 접고 입춘글을 받아볼 사람을 떠올리며 그 사람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가득 담아 새해를 축원하는 글을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다. 멀리 있는 사람에겐 우편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직접 만나서 새해 인사를 나누며 새해 축원을 담은 입춘글을 전한다. 이러한 현 학장의 입춘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제주 너머까지 퍼져있다.
“전남 불심사 주지 스님은 매년 불자들에게 나눠줄 입춘첩을 부탁해요. 불심사 불자들은 집안에 그 글을 걸어두고 한해를 건강하고 무탈하게 보내려는 마음의 기도를 올립니다. 그런 인연이 깊어져 불심사 수계식에는 인쇄된 수계첩 대신 제가 직접 쓴 수계첩을 준다고 들었어요. 법명을 받은 불자들은 수계의 의미가 더욱 깊어졌다고 말하더군요. 부끄럽지만 가장 뜻 깊은 일이죠..”
그 인연이 닿아 현재 현 前 학장은 불심사 무창포불교대학 학장 소임을 맡는 등 인재불사와 끊을 수 없는 고리를 이어나가고 있다.
현재 조계종단에 116개 불교대학이 있지만 재가불자가 학장을 하는 경우는 서귀포불교대학이 유일한 곳이다. 더욱이 입학생이 적체되는 등의 성공사례는 보기 드물다.
이처럼 서귀포불교대학이 불자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꼭 가고 싶은 명문불교대학으로 부상하게 된 데는 현 前 학장의 노력이 자리하고 있었다.

출처 : 현대불교신문(www.hyunbulnews.com/news) 2015.01.16  
이병철 제주불교 기자    linus@hyunbul.cojm
常不輕菩薩 [2015-01-22] : 인연따라 태어나 사는 중생이라고들 합니다만..부처님 법 만난 불연은 정말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_()_
常不輕菩薩 [2015-01-22] : 현수언 학장님께서는 인연과 불연을 모두 지으셨으니 하루 하루 귀중한 삶이 아니셨겠는지요.._()_
常不輕菩薩 [2015-01-22] : 모습을 뵈오니 친정아버님이 그리워집니다.. 현수언 학장님 무병장수와 행복을 기원드립니다..나무관세음보살..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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