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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한스승아래에서 승려노릇을 배우다.(법전스님 법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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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6 19:15:31, 조회 : 1,393,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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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1474757352147.jpg (47kb) 다운 :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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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담 스님의 깊고 청아한 염불소리 출가 다음 날부터 맵디매운 행자생활이 백양사 청류암에서 시작되었다.
묵담 스님은 일상생활에서의 규율을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지킨 호남 제일의 청정 율사였다. 계율을 생명처럼 여겼던 묵담 스님은, ‘무릇 계는 삼세제불이 출현하신 큰 법규요,
사부대중이 성위聖位에 오르게 되는 중요한 문이다’라고 일렀던 율사였다. 또한 근세 한국 스님 중 불교의식에 가장 밝은 선지식으로, 불상·탱화·사리탑 봉행, 사십구재·백일재·우란분재 등의 의식을 그분보다 더 잘한 스님은 없었다.
특히 복장의식과 점안의식에 대해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일가견을 가진 분이어서 의식집전을 많이 했고, 당시 사십대의 나이에도 고승법회에 늘 초청되어 다니곤 했다.
은사스님이 일찍 돌아가시자, 그 당시 대강사였던 금해金海 노스님을 지극정성으로 모셨는데, 내가 청류암에 갔을 땐 금해 노스님이 돌아가신 바로 뒤였다. 묵담 스님은 금해 노스님의 삼년상을 손수 영단에 모시며 예의를 다 갖춰 지내고 있었다.
노스님의 영정에 절을 올리는 엄숙하고 간절한 묵담 스님의 모습은 어린 나의 눈에 무척 감동으로 다가왔고, 그토록 공경을 다하여 스승에게 예를 올리는 모습이 그때 나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누군가를 공경한다는 일이 저토록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침 저녁으로 행자를 포함한 대중 스님들이 나와서 도량석을 했다. 묵담 스님의 염불은 심산유곡에서 들려오는 듯 깊고 은은했고, 높지도 낮지도 않은 청아한 염불소리는 어린 행자의 가슴에 오래 머물곤 했다. 나는 평생 염불이며 어산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때 경건하면서도 깊은 염불소리는 사람의 혼을 정화시킬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다
예불하는 법을 배우고 글을 익히는 짬짬이 묵담 스님의 시봉을 들었다. 스님의 행자들에 대한 교육은 참으로 철저했다. 매사에 철두철미했던 분인지라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어리다고 그냥 봐 넘기는 법이란 없었다.
해동율맥 9대 율사이며, 열한 살에 백양사로 출가하여
선禪과 율律 공부에 밝고 이사理事와 내외內外가 겸전한 당대 의 선지식으로 존경을 받고 있던 분이었으나, 어린 행자인 나에겐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다.
묵담 스님이 문을 열고 나와 신을 신는 소리가 들리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달려나갈 만큼 매일, 무섭고 긴장된 나날을 보냈다. 들락날락 늘 일고여덟 명의 행자가 있었으나 석달 이상을 견디는 사람은 없었다. 삼 년을 견딘 건 나 하나뿐이었다.
심지어는 자다가도 뺨을 맞았다. 잠결에 ‘왜 그러시는가’ 하다가, 나중에 공양할 때 대중들에게, ‘저놈이 잠꼬대를 한다’고 말해서 그 이유를 알곤 했다.
불가에 ‘오른쪽으로 누워 자는 것은 여래 잠이요, 왼쪽으로 누워 자는 것은 축생 잠이요,
엎어 자는 것은 마구니 잠이요, 바로 누워 자는 것은 송장 잠이다’라는 말이 전해져 온다. 묵담 스님은 ‘오른쪽으로 누워 자면 잡꿈도 적어지고 정신도 맑아진다’고 하면서 그렇게 자라고 일렀다. 그러나 잠으로 클 나이, 어떻게 숙련된 사람처럼
그렇게 오른쪽으로만 누워 잘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이리 뒤척이고 저리 움직이다 보면, 철썩철썩 뺨을 맞게 된 것이다. 나중엔 얼마나 긴장이 되었는지, 한 번도 뒤척이지 못하고 잤다.
아마도 요즘 사람들 같으면 사흘도 못 견디고 도망갔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묵담 스님의 청결한 습관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얼마나 깔끔했는지 ‘찬물도 씻어서 먹고 싶다’고 했고, 뒷간에 다녀와서 뒷물을 하지 않은 채 법당에 들어가는 일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처마 밑의 물이 흘러나가는 도랑에 기름기가 보이는 날엔 그 기름기를 걷어내라고 해서 책임자는 물론 다른 행자들까지 불러 먹게 했고, 밥을 너무 많이 하는 날엔 남은 밥을 모두 먹게 했다.
이렇게 행자생활이 고초당초보다 매우니,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행자들은 잔뜩 겁을 집어먹고 달아나듯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집으로 가는 길을 몰라서 엄한 교육을 고스란히 감당했던 나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만큼 나는 우직하고 순진했던 모양이다.
행자들이 왔다가 기겁을 하고 돌아가도 묵담 스님의 매운 행자교육은 바뀌거나 멈춰질 줄 몰랐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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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헤림/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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