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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한스승아래에서 승려노릇을 배우다.(법전스님 법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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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8 18:47:48, 조회 : 1,412,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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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50.jpg (68kb) 다운 :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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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을 오후, 설거지를 끝내고 잠시 감나무 밑에 앉아 쉬고 있을 때였다. 푸른 가을 하늘 아래 빨갛게 익어가는 감을 바라보다가 무심코 옆에 있던 돌멩이를 주워 감나무를 향해 던졌다. 툭- 감 한 톨이 떨어졌다.
묵담 스님이 지나가다 마침 이 모습을 보고 나를 불렀다.
어떤 손으로 돌멩이를 던졌느냐.”
“오른손으로 던졌습니다.”
묵담 스님은 막대기를 가져오라고 해서 어린 행자의 오른손을 몇 대 때리고 나서야 가던 길을 재촉했다.
종아리도 많이 맞았다. 속가에서 서당에 다닐 때 맞은 매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묵담 스님은 행자 중 누군가 하나 잘못을 하면 모두 불러다 종아리를 때리곤 했다.
한 사람당 스무 개씩 끊어온 막대기 중 가장 실한 것 다섯 개를 골라 그것이 다 부러지도록 종아리를 쳤는데, 행자 중 나이가 가장 어렸던 나는, 먼저 매를 맞은 행자들이 뒷방으로 건너가 울어가면서 약을 바르는 사이, 맨 나중에 맞곤 했다.
어려서부터 살이 여물어 맷집이 좋았던 나는 자신의 차례가 오면 입을 꽉 다물고 있었다. 그러면 장단지 살이 더 야물어져서 막대기가 톡톡 튀어버리곤 해서 다른 행자들 맞은 매의 삼분의 일쯤만 맞곤 했다. 그러면 묵담 스님은 매채를 놓으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놈은, 눈이 작아 겁이 없어.”
내가 그 견디기 어려웠던 행자시절을 지나는 동안
출가자가 지녀야 할 가장 큰 덕목 중의 하나인 인내를 배우고 익혔다. 그리고 ‘대충’과 ‘그냥’이라는 낱말은 있을 수 없었던 묵담 스님 밑에서의 행자시절은 훗날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철저하게 완벽을 기하게 하는 정신적인 힘을 축적했던 세월이었다. 묵담 스님이 나에게 의도적으로 베풀었던 가르침이요, 은혜였다 할 것이다.
선지禪旨가 싹트다 .
묵담 스님 밑에서 행자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초발심자경문》을 배웠고,
《석문의범》 《불자필람》 등을 모두 외웠다. 무엇이든 집어넣으면 소화가 되던 어린 시절, 배우는 책들은 줄줄 외웠고 염불소리 또한 점점 힘이 실려 갔다.
행자시절, 나의 마음을 끌어당긴 선지식들이 있었으니, 바로 청류암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운문암 선방의 스님들 모습이었다.
그때 언제나 화두삼매에 들어 있던 인곡 스님이 조실로 주석하고 있으면서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구산 스님 등 스무 명의 수좌스님들을 데리고 여름과 겨울, 두 차례에 걸쳐 결제를 나고 있었다.
묵담 스님과 도반이었던 인곡 스님은 옷이 다 떨어지면
가끔 선방에서 내려와 묵담 스님에게 말을 건넸다.
“자네, 나 옷 한 벌 주시게.”
나는 별 말없이 옷을 하나 받아들고 선방으로 올라가는
인곡 스님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곤 했다.
가진 거라고는 누더기 가사 한 벌뿐이었던 탈속한 분위기의 인곡 스님을 좋아했던 나는 염불하고 경전을 배우는 것보다는, 자꾸 선방 쪽으로 마음이 쏠리기 시작했다.
백양사 큰절에서 식량을 주면 공부하던 것을 멈추고 수좌스님들이 나와서 지게에 식량을 지고 올라가는 모습도 나에겐 예사로이 보이지 않았다. 인적이 깊었던 구산 스님은 일에 묻혀 사는
어린 행자를 불러내어 때때로 당신의 무릎에 재우곤 했다.
묵담 스님이 ‘어디 갔었느냐’고 혼을 내기라도 하면, ‘내가 데리고 있었다’고 하며 감싸주어 꾸지람을 모면하게 했다.
나보다 서너 해 일찍 불가에 입문한 구산 스님은 그뒤, 해인사에서 육이오 전쟁을 함께 치르기도 했고, 후에 여러 번 함께 지낼 것을 구산 스님이 권유했으나, 봉암사에서 스승 성철 노장님을 만난 이후로는 외곬수로 노장님만을 섬기느라 함께 살지는 못했다.
따뜻한 성품에 선지禪旨가 깊었던,
훗날 송광사 방장으로 효봉 선사의 법을 이어갔던 구산 스님을 나는 잊지 못한다. 나는 다 떨어진 누더기 가사를 걸쳤으나 고요하고 맑은 분위기의 선방스님들이 좋았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아 온종일 면벽을 하고 앉아 있는 스님들을 바라보면서 선방에 대한 동경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행자시절은, 참선의 세계를 동경하며 선지를 싹틔우고 초발심을 키웠던 시절이었다 할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이 그리워 남몰래 뿌렸던 눈물과 함께 한 세월이었고, 묵담 노스님의 엄한 교육 속에서 차츰 출가의 법도가 몸에 익어갔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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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주/부처님께 귀의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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