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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信心銘(신심명)지동귀지(止動歸止) 지갱미동(止更彌動)
법성화 2016-11-02 23:14:39, 조회 : 1,350,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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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지동귀지(止動歸止) 지갱미동(止更彌動)

움직임을 그쳐 그침으로 돌아가니 그침이 다시 두루 움직이더라.


우리가 욕망이나 망상을 쉬게 하기 위해 참선수행을 한다. 한 생각을 쉬게 하면 또 다른 생각이 일어나 번뇌나 망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본 게송 11에서 이렇게 움직였다 사라지고 다시 움직이는 수행과정을 가지고 ‘움직임을 그쳐 그침으로 돌아가니 그침이 다시 움직이더라.’ 라고 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앞 구절에서 일종평회(一種平懷)하면 민연자진(泯然自盡)한다. 즉 일종(一種)으로 바로 지니면 없어짐이 저절로 다하리라고 한 것이 곧 지동(止動)의 의미라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들이 수행하는 방법부터 살펴보자.

움직이는 생각을 멈추기 위한 방법으로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1) 염불 - ‘옴마니반매훔’, ‘관세음보살’, ‘신묘장구대다라니’, ‘반야심경’ 등을 반복해서 외우는데, 한 구절 한 구절을 외울 때마다 마음을 집중하여 외우면 딴 생각이 들어오지 않게 된다. 이렇게 염불하는 동안 마음집중이 잘되면, 집중력이 길러진다는 의미이고, 염불하는 동안 다른 생각이 침투하는 것을 경험하면, 좀 더 빠른 속도로 외우면 다른 생각이 들어오는 것이 차단되며 집중력이 길러진다.

2) 간화선 - 화두를 잡고 그 화두에 대한 의심을 냄으로서, 그 의심이 다른 생각을 차단하게 하는 방법이다. 화두에 대한 간절한 마음으로 분심(忿心)을 냄으로서 다른 생각이 들어오지 않게 된다. 화두는 자기가 간절하게 원하는 의문이 있을 때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분심이 일어난다. <예 : 중생제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 즉 화두는 다른 생각이 침입하지 못하게 하는 방패막이가 될 때, 화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것도 역시 집중력을 길러주는 방편이다.

3) 생각을 관하는 법 - 단전을 마음의 중심으로 삼고 고요히 앉아 있노라면, 어떤 생각이 저절로 떠오른다. 그 때, 그 생각을 막으려고 하지도 말고, 왜 오는가, 어디에서 오는가? 등 어떠한 생각도 일으키지 말고, 그 일어나는 생각을 바라만보고 있는 법이다. 바라만보고 있으면 그 생각이 꼬리를 내리고 사라지는 경우도 있고, 장난을 걸어오는 경우도 있다. 보는 나는 생각을 일으키면 안 되고 다만 바라만 보는 ‘나’가 되어야 한다.

번뇌와 망상이 많이 일어나는 사람은 그것들이 일어나는 것을 제어하는 작용이 전혀 없기 때문이니, 제어작용을 하는 마음을 길러주는 방법이다. 스님은 이를 자각식(自覺識)이라고 이름붙이고 싶다. 내 마음속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는 마음, 자각하는 마음이란 뜻이다. 능동적으로 그리고 의지적(意志的)으로 스스로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자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되면 번뇌나 망상이 일어날 때 바로 인식하여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불교 용어로는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바라만 보는 수행이다. 마음속에 저장되었던 모든 번뇌가 스스로 솟아나게 하여 털어버려 더 이상 솟아나는 번뇌도 없고 털어버릴 것도 없는 자리에 이르면 그 곳이 바로 불생불멸의 본래의 자리이다. 이 관법(觀法)이 지관(止觀) 중 관(觀)에 해당하는 것으로 요즈음 위빠사나로 알려진 선(禪)이다. 반대로 지관(止觀) 중 지(止)는 간화선(看話禪)에 해당하는 것으로 사마타선으로 알려진 선이다.

묵조선(&#40665;照禪)은 위빠사나선의 변형이고 간화선은 사마타선의 변형이라고 생각된다. 묵조선과 간화선은 중국 송대(宋代)에 시작된 것이고, 사마타선과 위빠사나선은 부처님 당시에 이미 있었던 수행법이다. 현대 미국사회에 맞는 선풍(禪風)이 불었으면!!! 수행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위 세 가지 방법을 겸수(兼修)할 것을 권한다.

우리들의 수준에서는 지동(止動), 번뇌의 움직임을 멈추면 또 번뇌가 일어나고, 그 움직임을 멈추면 또 다른 움직임이 일어나는 과정을 반복하게 되는데 이것을 지갱미동(止更彌動), 즉 그침이 다시 움직이게 된다. 라고 해설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말하는 지동귀지(止動歸止)의 귀지(歸止)는 적정(寂靜)한 자리로 돌아간다는 말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지동귀지(止動歸止)는 번뇌의 움직임을 멈추어서 적정한 곳으로 돌아가면, 즉 ‘모든 번뇌를 쉬어서 본래부터 평온한 고요한 자리로 돌아가면’ 이라는 뜻으로 해석되고, 지갱미동(止更彌動)은 그 고요한 곳에서 다시 두루한(큰) 움직임이 일어난다. 즉 세속적인 번뇌 망상에서 벗어나 출세간적(出世間的) 지혜의 움직임이 두루 일어나게 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즉 금강경에서 말씀하신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즉 ‘응당 머무는 바 없으니 그 마음이 일어난다.’ ‘그 마음’은 이 구절의 앞 구절에서 나오는 ‘청정한 보살의 마음’이다. 보살이 응당 머무는 바가 없으니 청정한 지혜로운 마음이 일어난다. 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머무는 바가 없다는 것은 구하는 바가 없다는 말이고, 구하는 바가 없는 마음이 지동귀지(止動歸止)의 고요한 마음으로 해석한다. 구하는 마음이 없는 고요함에 들어가 보니 내 안에 모든 것이 이미 구족하여 있음을 깨달았으니 편안함을 얻은 자리가 귀지(歸止)의 지(止)라고 해석된다.

다시, 움직임이 멈추어져 멈춤으로 돌아가니 멈춤에서 다시 큰 움직임이 일어난다는 뜻을 살펴보고자 한다.
움직임은 바라는 마음, 구하는 마음, 의지하는 마음이고, 이 마음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일어나는 불만스런 마음, 화내는 마음, 원망스런 마음 등의 움직임이다. 이러한 마음은 우리들의 마음에 저장되어 있는 업(業)에 따라 증폭될 수도 있고, 감소될 수 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수행을 통해서 ‘일종평회(一種平懷)하여 민연자진(泯然自盡)하라’ 한대로 하여 편견(偏見)을 떠나 중도(中道)에 안주(安住)하면 마음이 고요하게 될 것이니 지동(止動), 움직임이 멈추어진다. 움직임을 멈추었다고 해도 또 다른 움직임이 솟아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지나, 만법(萬法)이 이미 나에게 구족하여 있음을 깨달았으니 전혀 구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평온하고 고요한 경지에 들게 되는데, 이 자리를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하여 귀지(歸止)라 한다고 했다. 즉 해탈(解脫)하여 능소(能所)가 없는 세계에 든 것이다. 일종평회(一種平懷)가 되어 중도(中道)에 들면 능소(能所)가 없는 세계에 들게 된다.

지갱미동(止更彌動)은 능소(能所)가 없는 본래의 고요한 자리에서 ‘다시 크게 움직임이 일어난다.’고 했는데 이 움직임은 베풀고자 하는 자비심이다. 앞의 마음의 움직임은 분별심이 있는 구하는 마음의 움직임이고, 미동(彌動)의 두루한 움직임은 무분별지(無分別智)로 천지만물에게 베풀고자 하는 마음의 움직임이므로 그 차원이 다른 움직임이라고 해석된다.




(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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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해림/비원
오도행 [2016-11-03] : 수행의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시어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성등 현수언 [2016-11-04] : 법성화법우님.신심명 올려주심에 감사합니다.저는 지도무난 정도이었는데 앞으로 신심명 공부 하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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