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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信心銘(신심명) 52~53. 지동무동(止動無動) 동지무지(動止無止)
법성화 2016-12-04 14:09:21, 조회 : 1,492,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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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지동무동(止動無動) 동지무지(動止無止)
그침 중에서 움직이는 것은 움직임이 아니요, 움직임 중에 그침은 그침이 없는 것이다.


지동무동(止動無動)의 지동(止動)은 ‘움직이는 것을 그치면’ 이니, 지동(止動)의 동(動)은 일체 편견이나 분별심의 작용이나 근심걱정 망상 등의 작용이다. 그러하니 지동(止動)은 이러한 편견, 분별심, 근심걱정, 망상 등의 작용이 완전히 소멸되여 적정(寂靜)에 든 경지를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무동(無動)의 동(動)은 역시 일체 편견이나 분별심의 작용이나 근심걱정 망상 등의 작용이니, 무동(無動)은 이러한 일체 편견, 분별심, 근심걱정, 망상 등의 작용이 없다는 의미이다.

이는 지동(止動)에서 일체 생노병사의 번뇌에서 해탈한 경지에서 불쌍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자비행과 보살행 등을 하는 움직임은 있지만 그 움직임은 편견이나 망상으로 인해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말로 해석한다. 왜냐하면 지동(止動)에서도 움직임은 있지만 그 움직임은 탐욕이나 어리석음으로 인한 움직임은 아니기 때문에 무동(無動)이라고 했다고 생각된다.

동지무지(動止無止)의 동지(動止)는 ‘고요한 것을 움직인다.’ 는 의미이니 일시적으로 마음이 고요하였다가 편견, 분별심, 근심걱정, 망상 등의 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니, 게송 43) 미생적란(迷生寂亂), 미혹하여 고요함과 어지러움이 일어난다고 한 것과 같다. 조건의 변화에 따라 좋고 나쁜 감정의 기복(起伏)이 심할수록 더 미혹한 것이고 적을수록 덜 미혹한 것이며 완전히 조용해지면 적란(寂亂)이 없는 것이니 미(迷)함이 사라진 것이니, 깨달아서 좋고 나쁜 것이 없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동지(動止)이므로 조건에 따라 탐욕심이 움직이는 것이므로 일시적으로 그 움직임이 멈추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멈춘 것이 아니라고 하여 무지(無止)라고 했다. 그러므로 동지무지(動止無止)는 우리들의 일상생활상에서 일어나는 번뇌가 수행을 통해 멈추었다가도 잠시 후 그 번뇌가 다시 반복되므로 이는 멈추었다고 해도 멈춘 것이 아니니 동지무지(動止無止)라고 했다.

첫 구(句) 지동무동(止動無動)은 수행이 완전하게 이루어진 경지이고, 동지무지(動止無止)는 수행이 진행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좀 다르게 표현하면 모든 번뇌가 멈추어진 가운데 움직이 있는 것은 번뇌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므로 움직임이 없다고 하여 지동무동(止動無動)이라 하고, 번뇌가 움직이는 가운데 잠시 멈춤이 있는 것은 번뇌가 완전히 멈추어진 것은 아니라 하여 동지무지(動止無止)라고 했다고 할 수 있다.


53 양기불성(兩旣不成) 일하유이(一何有爾)
양(兩)쪽이 이미 성립되지 않는데 하나가 어찌 있겠는가.


양기불성(兩旣不成)의 양(兩)은 양쪽을 의미하는 것이니, 간택(揀擇), 증애(憎愛) 등 상대적인 개념이 성립되지 않으면, 일하유이(一何有爾) 즉 어찌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것 중 하나만이 있을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양쪽 마음이 성립되지 않는데 어찌 사랑만 혹은 미움만의 한쪽 마음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한 쪽 마음만은 있을 수 없으니,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랑도 없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미워함도 없다는 말씀이다.

작은 것은 큰 것이 있으니까 작은 것이니, 큰 것이 없으면 작은 것도 없다는 말이다. 부자(富者)가 있으니까 가난한 사람이 있는 것이니, 가난한 사람이 없으면 부자도 없다는 말이 된다. 꼴지가 없으면 일등도 없고, 일등이 없으면 꼴지도 없다.
편견(偏見)이란 두 쪽을 만들어 놓고 한쪽에 치우치는 것이니 두 쪽을 만들지 않았으면 치우칠 쪽이 어찌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두 쪽이나 여러 쪽을 만들어 놓고 서로 경쟁을 시키니 편당(偏黨)이 될 수밖에 없고, 편당이 되었으니 자기 쪽 당에만 편중하게 될 수밖에 없으니 반드시 상처를 입는 당이 있을 수밖에 없는 모순이 있다.
과연 민주주의를 어떻게 하는 것이 양기불성(兩旣不成), 즉 양쪽이 이미 성립될 수 없도록 할 수 있을까? 양당(兩黨)이 있는 한 치열한 싸움을 피할 수 없으니 말이다.

차별심을 갖지 않으면 만법을 가지런히 볼 수 있다고 하여 만법제관(萬法齊觀)이라 하고, 게송 51)에서 민기소이(泯其所以) 불가방비(不可方比) 즉 그 까닭을 없애면 가히 비교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현 정치제도가 편당(偏黨)하지 않을 수 없는 제도이니 어찌 편당하는 근거를 없앨 수 있으며, 비교하는 마음을 지울 수 있을까? 현 사회제도와 정치제도 하에서는 가히 불가능한 말씀으로 이해되지만 불교적인 입장에서만 본다면 너무나 지당하신 말씀이다.

또 한편 대립관계에 있는 두 편이 서로 경쟁을 하니까 그 경쟁의 반사 이익, 즉 가격이 저렴해 진다든가, 품질이 더 좋아지는 예가 있지만, 경쟁이 없는 곳에서는 의욕을 잃기도 하고, 나태해지고, 일하기 싫어 게을러지는 사례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므로 대립적인 관계에서 경쟁을 하더라도, 그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불화(不和)를 화해(和解)시킬 수 있고, 대립적인 관계가 없는 만법제관(萬法齊觀)하는 평화로운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나태심(懶怠心)을 창조심(創造心)으로 전향(轉向)시킬 수 있는 정치와 사회제도가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출처] 승찬대사 신심명 해설 - 현성(玄性)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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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보살님/아가야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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