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방송게시판
|
|
|
|
![]()
| 信心銘(신심명)58~59 허명자조(虛明自照) 불노심력(不勞心力) |
|
|
2016-12-10 20:21:51, 조회 : 1,630, 추천 : 0 |
|
첨부파일 : 2.gif (11kb) 다운 : 226
![]()
![]()
|
58 허명자조(虛明自照) 불노심력(不勞心力)
텅 비어 밝게 스스로 비취니 애써 마음 쓸 일이 아니다.
‘일체불유(一切不留) 무가기억(無可記憶) 즉 일체에 머물지 아니하니 가히 새겨놓고 기억할 것이 없다.’ 고 한 것에서, 수많은 차별상 중에서 특별히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있고 집착하는 것이 있으면, 머물음이 있는 것이고, 기억할 일이 있는 것이라, 그에는 반드시 괴로움이 따르게 된다. 그러나 수많은 차별상 중에서 어느 것에도 특별히 마음 가는 것이 없다면 머물음이 없는 것이요 기억할 것도 없는 것이 된다.
이와 같이 일체 머물음이 없을 때 마음은 허공(虛空)과 같이 텅 비어있게 된다. 그리고 텅 비어 있으니 장애가 없어 자성(自性)이 밝게 저절로 비춰지니 애써 마음 쓸 일이 없게 된다는 말씀이다. 모든 것은 자성이 알아서 다하니 수고스럽게 애쓸 일이 없게 된다는 뜻이고 또 노심(勞心)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의미도 있다.
위 게송 35)에서 ‘임성합도(任性合道) 소요절뇌(逍遙絶惱) 자성에 맡기면 도와 합해져 소요(逍遙)자재하여 일체번뇌가 끊어진다.’ 라고 했는데 허명자조(虛明自照), 텅 비어서 밝게 저절로 비춰진다는 것은 임성합도(任性合道), 즉 성에 맡기면 도(道)에 합한다는 뜻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일체를 본성에 맡김으로서 대도(大道)와 합하고, 대도에서 텅 비어 밝게 저절로 비춰보는 눈이 열리게 되기 때문이다.
59 비사량처(非思量處) 식정난측(識情難測)
생각으로 헤아릴 곳이 아니니 의식(意識)과 감정(感情)으로는 측량키 어렵다.
허명자조(虛明自照) 불노심력(不勞心力), 텅 비어 밝게 스스로 비취니 애써 마음 쓸 일이 아니다. 라고 하는 곳이 생각으로 헤아려서 알 수 있는 곳이 아니고 의식이나 감정으로 측정하기도 어려운 곳이라는 뜻이다. 생각하고 재보고 저울질하는 것도 의식(意識)이 하는 것인데 이 의식이나 감정(感情)으로도 허명자조(虛明自照)한 곳을 측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의식이나 감정은 우리들이 욕계(欲界)에서 살아가는 경험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욕계를 벗어난 허명자조(虛明自照)한 곳을 사량(思量)하거나 측량할 수는 없는 일이다.
허명자조(虛明自照)한 곳은 일체 번뇌망상이 끊어진 적정(寂靜)한 곳에서 자성(自性)이 밝게 비춰지는 것이니 대각(大覺)을 이루어 지혜의 광명이 비춰지는 모습을 설명한 것으로 이해된다. 즉 대도(大道)가 있는 곳이 사량으로 알 수 있는 곳이 아니고, 의식이나 감정으로 측정할 수 있는 곳도 아니라는 말씀이니, 오직 깨달은 사람만이 체험할 수 있는 경지하는 뜻이라고 해석한다.
세속(世俗)에서 세속이 아닌 출세간(出世間)을, 출세간에서 출세간이 아닌 세간을, 형상(形相)에서 형상 아닌 여래를, 형상이 없는 여래가 형상이 없는 것이 아닌 형상을 보는 것이니 사량(思量)이나 감정(感情)으로 닿을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이 게송 59)에서 대각(大覺)을 성취하고 그를 묘사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출처] 승찬대사 신심명 해설 - 현성(玄性) 스님
----------------------------------------------------------
진성/안동역에서 |
|
|
|
|
|
|
|
|
|
|
|
|
ⓒ 2001-2004 by Passkorea Co., Ltd. All rights reserved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