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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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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8 20:21:06, 조회 : 1,145,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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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0280020000423.jpg (62kb) 다운 :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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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 문언박(文彦博)
송(宋)나라 때에 분주(分州) 개휴(介休)의 사람인데 자(字)는 관부(寬夫)이다. 송나라의 인(仁), 영(英), 신(神), 철(哲)의 四왕조(王朝)에 역사(歷仕)하여 출장입상(出將入相) 한지 五十여 년에 벼슬이 태사(太師)에 이르고 역경윤문사(譯經潤文使)를 겸하여 노국공(㯝國公)을 봉(封)하였다.
노국공이 원래 불법에 귀신(歸信)하여 만년(晩年)에는 아미타불을 전념(專念)하고 발원하기를「내가 항상 잡념을 버리고 오로지 불도에만 열중하여 일체선(一切善)을 근수(勤修)하기를 원하며 내가 심종(心宗)을 깨닫고 널리 모든 함식(含識)을 제도(濟度)하기를 원한다」하고 경사(京師)에 있어서 정엄법사(淨儼法師)로 더불어 十萬 인을 모아 정토회(淨土會)를 만들었더니, 사대부(士大夫)를 쫓는 이가 많았고 임종(臨終)에 안연(晏然)히 염불하며 앉아서 화(化)하니 九十二 세이다.
(八) 왕일휴(王日休)
송(宋)나라 때의 여주(廬州) 용서(龍舒)사람으로 자(字)는 허중(虛中)이다.
위인(爲人)이 마음이 바르고 얌전하며, 검소하고 깨끗하였으며 고종조(高宗朝)에 국학진사(國學進士)가 되었으나 벼슬을 버리고 나가지 아니하였고 경사(經史)를 박통(博通)하였으나 하루아침에 버리고 말하기를 「이것은 다 업습(業習)이요, 구경법(究竟法)이 아니니 나는 서방으로 돌아간다」하고 그로부터 염불에 잡념을 버리고 오로지 불도에만 열중하였고 나이 六十에 포의소식(布衣蔬食)으로 천배(拜)하며 용서정토문(龍舒淨土文)을 지었는데 왕공(王公) 사대부(士大夫)로부터 도자(屠者), 걸개(乞丐), 노복(奴僕), 비자(婢子), 배우(俳優), 기녀(妓女)등에 이르기까지 정토법문(淨土法門)으로써 귀의(歸依)하기를 권인(勸引)하였으며 쉬운 말로써 간곡히 알아듣게 일러 주는 것이 부형이 자제(子弟)를 교훈하듯이 하였다.
왕일휴는 명종(命終)하기 三일 전에 여러 친지에게 작별을 고하며 다시 보지 못하겠다는 말이 있더니 기일에 이르러 평소와 같이 염불하다가 문득 큰 소리로 아미타불을 부르고 「부처님이 와서 맞으신다」하면서 서서 화(化)하였다.
(九) 서 뢰(徐雷)
중화민국 절강(浙江) 낙청(樂淸) 사람으로 음주(飮酒)와 야유(冶遊)를 좋아하여 팽할(烹割), 음연(飮讌)이 허일(虛日)이 없더니 경신년(庚申年) 즉 1920 년 정월 보름날 밤에 어떤 사람의 수족을 네 기둥에 얽어매고 두 귀졸(鬼卒)들이 몽둥이로 그 등을 치는데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서뢰가 가까이 가서 보니 곧 자기라 놀랍고 두려운 중에 사지(四肢)는 얽어매었고 등에는 통격(痛擊)을 받으므로 아픔을 참지 못하여 큰 소리로 부르짖더니 공중에서 염불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따라서 염불하다가 깨어나니 등이 아직도 아픈지라 대단히 무서워서 평일에 사행(邪行)하던 것을 생각하니 부끄럽고 후회되기 짝이 없었다.
곧 맹성(猛省)하여 「내가 들으니 불도를 배우면 가히 생사(生死)를 요(了)할 수도 있고 지옥의 고를 면할 수도 있다더라」하고 그 후부터 앞서 저지른 악행(惡行)을 통개(通改)하고 매일 아미타불의 명호(名號)와 『화엄경 보현행원품(華嚴經普賢行願品)』을 외우더니 하루는 저녁에 그 처에게 말하기를 「내일은 불보살이 오셔서 나를 접인(接引)하실 터이니 방을 깨끗하게 하고 분향 예배하라」하고 이튿날에 목욕한 뒤에 옷을 갈아입고 단정히 앉아서 염불하면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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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진스님/바람부는 날에는 너에게로 가고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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