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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보적경 제4권-2. 문변장엄회(無邊莊嚴會) ①/1) 무상다라니품(無上陀羅尼品) ①
법성화 2018-06-22 22:25:09, 조회 : 1,135,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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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변장엄아, 네가 이 가운데 잘 깨달아 들어가면 곧 능히 부서지지 않을 끝없는 광명의 청정 법문을 길러내어 거두어 잡아들이므로 마땅히 청정함을 얻으며, 희론이 없으므로 마땅히 광명을 얻으며, 번뇌의 부림을 초월하여 집착함이 없으므로 마땅히 벗어남을 얻으리라.

무변장엄아, 온갖 법을 오직 이름과 모양[名相]으로 열어 보이어 연설할 뿐이니라.

어떤 것이 '이름'은 일체의 물질 아닌 온(蘊) 이니라. 이와 같은 이름과 모양은 일체가 다 허망하여 실답지 않건마는 뒤바뀐 생각으로 인하여 집착하여 혹은 '물질이 나[我]다, 물질이 나의 것이다'라고 모양을 분별하므로 이름 붙여 말함이 있느니라. 이와 같이 이름과 물질 둘이 다 실답지 않아서 모두가 허망하여 무너지는 법이라, 꼭두각시 같고 꿈과 같으며 물질 자체가 진실치 못한 것이 꿈에 본 것과 같으며, 느낌[受]·생각[想]·지어감[行]·의식[識]의 4온(蘊)도 또한 진실치 못하니 다만 세속 문자로써 내세울 뿐이니라.

이렇게 알 때에 괴로움이 있음을 보지 못하며, 실다운 이치로 말미암아 반연함이 없고, 반연이 없으므로 마음에 있는 바가 없고, 있는 바가 없으므로 무엇이 저 열반과 서로 응할 것이 있겠느냐? 이로 말미암아 능히 열반계에 생각[想]과 앎을 초월하는 멸함을 얻느니라.

무변장엄아, 삼계는 상과 작의(作意)에서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삼계가 허망하다 말하며, 상과 작의도 또한 진실함이 아니니라. 저 온갖 상은 곧 물질의 집착이며, 온갖 작의는 다 느낌·생각·지어감·의식과 서로 응하느니라. 모든 법의 본성은 또한 서로 응함이 없으며 또한 서로 응함 아님도 아니며, 상도 아니며 또한 작의도 아니니 상과 작의의 본성이 다 공이며, 온갖 언설(言說)도 또한 다 허망하여 다만 거짓 시설이니라. 자성으로 하여금 적정하게 하라. 무변장엄아, 모든 법의 본성을 붙인 이름으로 분별한 까닭에 이러한 말이 또한 다 평등하니라.

무변장엄아, 이 법 가운데 실제(實諦)를 증득할지니 모든 보살도 마땅히 깨달아 알지니라. 말하자면 '모든 여래는 온갖 번뇌의 부림을 다 놓아 버린 까닭에 그 연설하신 것을 끝내 헛되이 버려서 아니 된다'고. 너희들은 잘 생각하여 집착함 없이 온갖 법에 분별을 내지 말고, 모든 희론을 여의고 온갖 법이 자성이 없는 줄을 깨달아서 중생을 가엽게 여기는 생각을 일으키며, 이러한 법문에 깨쳐 들어가서 일체를 위하여 열어 보이어 연설할지니라.

어떤 법문인가. 말하자면 '무명 등 모든 유위법(有爲法)을 알고 지견(智見) 등 모든 무위법(無爲法)을 깨달으며, 두루 청정하게 일체 유위·무위·무희론지(無戱論智)에 깨쳐 들어가서 수(數) 아니면서 수에 들어가며, 수 아니면서 수에 머물러서 이와 같은 수 아닌 법에 수순하므로 무위·청정 법문을 증득하며, 총지[徧持] 광명지혜를 얻어서 모든 법을 거두어 잡아 지니어 잃어버리지 않게 하며, 능히 지혜의 방편선교로 널리 중생을 위하여 모든 법을 연설 할지니라.

무변장엄아, 이 모든 보살들이 다라니문에 들어가는 것은 이 문으로 말미암아 광대한 차별지혜를 발생하여 또한 능히 모든 법의(法義)를 연설하는 선교지(善巧智)를 일으킬지니라.

무변장엄아, 이 가운데 어떤 것을 다라니문이라 하는가. 이 보살이 모든 법 가운데 능히 총지 방편선교를 얻나니, 무변장엄아, 이 가운데 보살이 변청정(邊淸淨) 선교지에 머물러서 변재를 행하여 의각혜(義覺慧)로 말미암아 모든 법 본연의 자성을 관찰하느니라, 그러나 온갖 법 자성이 머무른 바 없으며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으며, 건립함도 없고 끝없이 건립함을 말로 나타낼 수 없지마는 다만 세속의 말로 연설할 뿐이니라. 모든 법 본연의 자성은 다 말로 표현할 수 없나니,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고 문자로 표시할 수도 없으며, 문자가 청정하여 공용(功用)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모든 법의 본성이 허공과 같기 때문이니라. 온갖 법이 다 이와 같이 조작도 없고 일어남도 없고 모양도 없이 청정하므로 다만 허공과 같다는 모양으로 열어 보이고 연설하나니, 이것이 곧 모든 법의 문 없는 문이니 문이 청정하므로 끝내 물듦이 없으며 또 물듦을 따르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모든 법이 끝내 난 것도 아니요 일어남도 아니며 법 자성이 또한 생기(生起)함이 아니니라. 이러므로 마땅히 알지니라.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이 말씀하신 온갖 법의 자성이 성(性)이 없나니, 또한 이 '제법무성(諸法無性)'에 집착하지 말라. 이것이 모든 보살의 집착 없는 다라니문이니라.

모든 보살문의 청정이 되는 까닭이니라. 이와 같이 온갖 법을 연설할지니라. 형상이 있다는 것은 말한 바 형상이 곧 형상이 아니라, 지어짐도 아니요, 무너짐도 아니요, 사랑함도 아니요, 성냄도 아니니라. 이러므로 형상문(形相門)이라 함은 곧 문이 아니니라. 문이 청정하므로 이것으로 말미암아 능히 형상 없는 청정법문에 들어가느니라. 이 형상문이 없는 것인 줄을 비추어 알기 위하므로 유의(有義)로써 하지 말고 이와 같이 지음[所作]이 없으므로 형상 없는 데 들어간다고 선설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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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아/극락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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