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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보적경 제4권-2. 문변장엄회(無邊莊嚴會) ①/1) 무상다라니품(無上陀羅尼品) ①
법성화 2018-06-23 23:08:13, 조회 : 1,209,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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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변장엄아, 이와 같이 말한 형상 없는 문은 다라니의 청정을 위하므로 굴리느니라. 무변장엄아, 말한 바 문이라 함은 마치 허공과 같으니라. 온갖 법이 허공에 의지하여 나고 멸함이 있나니 저 나고 멸함이 성(性)이 평등하니라. 이렇게 관할 때에 생멸이 없으며 거두어 줄 것이 없나니 온갖 법을 마땅히 이렇게 알지니라. 온갖 법이 또한 거두어 줄 것이 아니며, 거두어 줌 아님도 아니며 등(等)도 아니며 등 아님도 아니며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느니라. 이것으로 말미암아 능히 이 형상문을 깨달아서 무상문(無相門)의 청정을 얻기 위하므로 열어 보이어 연설하느니라.

무변장엄아, 모양이 없다고[無相] 한 것은 말하자면 신(身:及身)과 신의 시설[身施設]이 없으며 이름[名]도 없고 글귀[句]도 없고 또한 시현도 없느니라. 이 교의를 잘 알지니라. 저 형상이 없다 함은 허공과 같음이니 허공이란 것은 또한 허공과 허공을 보이어 말할 것이 없느니라. 이것이 무명이 명(明)에 수순하는 지력취(智力聚)의 법문이니라. 보살이 능히 다라니 이취방편(理趣方便)을 증득하면 그 증득하여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쟁론(爭論)이 없게 되고 잊어버림[忘失]이 없으며 끊임없는 비밀한 말[無斷秘密語言] 다라니문에 따라 들어가게 되느니라. 마치 무열뇌(無熱惱)라고 이름하는 용이 큰 비를 퍼부어 끊임없는 듯하니라. 무변장엄아, 말한 다라니라는 것은 이 어떤 구의(句義)인가.”

무변장엄보살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다라니라 함은 곧 이것이 모든 법에 수순하는 비밀 방편의 붙인 이름[假名]이며, 생각을 따라 총지[徧持]하는 업(業)이며, 법을 설하는 어구(語句)이니 지혜의 전일(專一)한 힘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다라니 수(數)에 들어가게 되며, 선각혜(善覺慧)로써 한량없고 끝없는 보리의 힘을 받아 지니게 되나이다.

세존이시여, 이 다라니문은 이것이 대허공(大虛空)이며, 이것이 대방광(大方廣)입니다. 이 뜻으로 능히 널리 연설하오며 평등을 말함으로 말미암아 능히 거두어 주므로 명자(名字)가 교법을 따라 교묘하게 열어 보이어 널리 유포하나이다. 문자의 차별에 원만함을 얻으므로 변재에 통달하여 성취하게 되며 뜻을 잘 관찰하고 교묘하게 말함으로 말미암아 의변재(義辯才)에 원만을 얻으며 모든 법을 결정하여 잘 열어 보이므로 법(法) 변재에 원만함을 얻어서 중생을 불쌍히 여기어 큰 자비로써 거두어 잡아들이며, 거두어 잡아들임으로 말미암아 차제로 길들여 청정을 얻게 하고 모든 희론을 여의고 능히 평등한 법을 말하게 되나이다.”

세존이 이 다라니의 비밀 방편법문을 말씀하실 적에 한량없고 끝없는 선교의(善巧義)가 부처님 입에서 나왔다.

그때에 부처님이 무변장엄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말하자면 문이란 것은 여래의 온갖 지혜의 지혜 문이라는 말이다. 이 가운데 말로 말미암아 온갖 법을 연설하느니라. 여래는 끝없는 청정과 최고[究竟] 청정의 자연 지견(自然智見)에 머물러서 집착함이 없고 건립할 바 없는 데서 광대 심심(甚深)한 법을 흘러 내느니라. 무변장엄아, 여래가 일찍이 온갖 법이 다 불법이라고 말하였나니 모든 법에 능히 잘 깨달아 알면 불법이라 이름하리라. 모든 법의 본성이 불법과 같으니라. 이러므로 모든 법이 다 이 불법이라고 하느니라. 능히 법과 법 아닌 것을 깨달아 앎으로써 능히 온갖 법을 깨달아 앎이니라. 이것은 다라니문으로서 능히 온갖 법에 널리 들어가나니 말하자면 언어·연설·담론(談論)이다. 일체의 언어·연설·담론이 다 문자(文字)로서 표시하여 연설하느니라.

이 가운데서 문자는 아자(阿字)를 머리로 하고 하자(何字)로 끝을 삼나니, 마치 태(胎)에 들어 태를 받고 태를 지니는 것이 어머니를 근본으로 삼는 것과 같으며, 또는 종자가 자라나게 됨을 아버지를 머리로 삼는 것과 같으며, 또는 5온(蘊)이 쌓여 모이어 남[生]으로 머리를 삼고 다음에 나머지의 각기 다른 여섯 감관이 차례로 이룩되듯이 자모(子母)가 머리가 되어 일체 문자의 차별상(差別相)이 어울려서 이룩되듯이 자모가 머리가 되어 자라나나니, 말하자면 '아'자가 머리가 되고 '하'자가 끝이 되어 나머지 모든 글자가 그 중간에 있어서 자모에 따라 서로 응하고 어울려서 이룩되나니, 이것이 곧 능히 연설·언어·다라니문에 들어가게 됨이니라.

또 마땅히 일체 행법(行法)이 다 무너져 없어지듯이 저 문자 서학(書學)이 이룩되었다가 곧 없어지는 줄을 깨달아 알지니라. 이와 같이 일체의 유지(有支:有爲)가 되었다가 곧 없어지는 줄을 깨달아 알지니라. 이와 같이 모든 법이 화합하므로 이것과 저것이 화합치 않으면 무너져 없어지느니라. 이와 같이 두 가지가 서로 화합하여 일체 생명계(生命界)의 애결(愛結)을 건립하느니라. 또한 이 두 가지가 화합하므로 일체 유위(有爲)의 모든 법을 건립하느니라.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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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산사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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