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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승리하면, 30년간은 '개발'얘기 함부로 못할 것"
眞虛性宗 2006-01-05 09:25:31, 조회 : 2,065,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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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율 스님이 묵고 있는 경북 안동의 한 거처. ⓒ2006 오마이뉴스 윤성효


말문이 막혔다.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얼굴에 눈은 풀렸으며, 채 5분도 앉아 있지 못하고 이내 누워버렸다. 한참 동안 말이 나오지 않아 얼굴만 바라보고 있는데,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5일 새벽 0시 30분경 경북 안동의 한 거처에서 만난 '천성산 지킴이' 승려  지율 의 첫 모습이다. 기자는 수소문 끝에 하루 전날 경남 창원에 머물다가 안동으로 내달렸다. 밤 12시 넘어서 현장에 도착했다. 안동시내를 조금 벗어나니 한적한 시골마을이 나왔다.

도로 가에 승용차를 세워놓으니 마을의 모든 집들은 소등한 상태라 깜깜했다. 논두렁 건너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집이 한 채 보였다. 더듬거리며 집 앞에 섰다. '스님' 하고 불렀더니 기척이 없다. 서너번 불렀더니 문 여는 소리가 났다. 스님을 돌보고 있는 보살이 나와 문을 열어 주었다.

그 보살은 "방금 전까지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는데, 조계종 호법 스님들이 막았다"고 말했다. 지율의 거처가 알려진 뒤 4일 저녁까지 경찰은 물론, 안동시장까지 찾아와 안부를 물었고 언론사 기자들이 인터뷰를 위해 진을 치고 있었다는 것.

조심스럽게 방에 들어섰다. 방안 공기는 따뜻했다. 지율도, 기자도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서로 얼굴만 바라볼 뿐이었다. "왜 왔어요, 할 말도 없는데..."라며 운을 뗀 지율은 "그래도 천성산 문제에 대해 처음부터 취재해온 기자니까 반갑다"며 손을 내밀었다.

"혼자가 아니라 우리 식구들이 다 하는 싸움이다"
지율은 "이 싸움은 혼자 하는 게 아니고 우리 식구들이 다 하는 거다"고 말했다.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사람을 앞에 놓고 무슨 말을 물을 수가 없었다. 지율이 하는 말을 들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만약에 대법원에 계류 중인 도롱뇽 소송에서 승소한다면, 우리나라에서 30년 동안은 개발을 함부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중요한 의미가 있는 소송이다. '그까짓 도롱뇽이냐'고 했던 소송인데 지금은 대법관 전체회의에서 다루어질 정도가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시간이 조금 지나니 방 안의 물건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나무로 깎은 부처상이 지율의 맞은편에 있고, 방 바닥에는 무와 과실을 잘게 쓸어 놓고 말리고 있었다. 방바닥 그릇에는 큼지막한 무 3개가 담겨 있었다. 하반신은 마비되었지만, 손을 쓸 수 있어 기력을 되찾기 위해 운동 삼아 무와 과실을 잘게 쓸었다는 것이다.

지율은 "우리 사회는 여론과 확률로 움직이기보다는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율이 지난 해 9월부터 다시 단식에 들어간 이유이기도 한 말이다.

천성산 공동환경조사를 약속해 놓고 고속철도시설공단과 정부측에서 불공정행위를 계속했고, 정부와 몇몇 언론이 약속위반과 왜곡보도를 하는 데도 가만히 있는 우리 사회에 대해 지율만이라도 문제제기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5년간 하면서 한번도 두렵거나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처음에는 도롱뇽이 뭐냐고 하지 않았느냐. 소송 1심과 2심에서 졌을 때 변호사를 비롯해 모두 힘들어했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5년간 안해본 일이 없지 않느냐. 참 많은 일을 했다."

"오늘부터 묵언이다"
지율은 5일 오후 동국대 일산불교병원에 입원할 예정이다. 지율은 "오늘까지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래도 말은 했는데, 이제부터는 묵언이다"고 말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기자는 조심스럽게 사진을 찍자는 말을 꺼냈지만, 지율은 고개만 내저었다. 기자는 더 이상 요구하지 않고 일어났다.


지율은 천성산 공동환경조사위원에서 탈퇴한 뒤, 지난 해 9월부터 혼자서 단식을 시작했다. 경기도 신륵사에 머물던 지율은 지난 해 12월 9일경 언론에 거처가 노출되면서 이곳 안동의 한 거처로 옮겨왔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지율이 말했다. "나를 욕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그러나 그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 사람들도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 아니겠느냐. 우리 사회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기 바란다. 언론도 그렇게 해달라."


오마이뉴스 2006.01.05 윤성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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