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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 211
법광(法光) 2019-02-21 23:55:34, 조회 : 1,171, 추천 : 0



ㅇ 사문에 합당한 길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앙가 사람들이 사는 곳에 계셨는데 앙가의 마을인 앗사뿌라에 계셨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사람들은 그대들을 ‘사문’이라고 부른다. 또한 사람들이 그대들에게 ‘누구냐’고 물었을 때 그대들은 ‘사문’이라고 대답한다. 그처럼 사람들이 말하고 또 그대들이 그처럼 대답하기 때문에 그대들은 이와 같이 수행하여야 한다. ‘우리는 사문에 합당한 길을 수행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에 대한 사람들의 호칭이 참되고 우리의 대답이 사실이 될 것이며, 우리가 사용하는 법복이나, 탁발음식, 거처, 음식, 거처, 필수의약품을 보시한 사람들에게 큰 결실과 이익을 가져올 것이며, 우리가 출가한 것이 헛되지 않고 알찬 열매를 맺을 것이다.’

[사문에게 합당하지 않은 길]
그러면 어떤 것이 사문에게 합당한 길을 수행하지 않는 것인가?

탐욕스러운 사람이 탐욕을 버리지 않는 한, 악의를 품은 사람이 악의를 버리지 않는 한, 분노, 원한, 경멸, 질투, 인색, 기만, 사기, 악한 욕망,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이런 나쁜 성향을 버리지 않는 한, 사문에게 합당한 수행을 하지 않는다고 나는 말한다.

• 사문 : 다른 교단의 고행자, 수행자들도ㅗ 사문이라고 부름,, 출가 수행자에 대한 명칭임.
- 가사를 입은 자에게 그가 다만 가사를 입었다고 해서 사문이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 나체 고행자에게 그가 다만 나체라고 해서 사문이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고행하는] 자에게 그가 다만 흙먼지를 뒤집어쓴다고 해서 사문이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 목욕 예식을 하는 자에게 그가 다만 목욕 예식을 한다고 해서 사문이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 나무 밑에서 사는 자에게 그가 다만 나무 밑에서ㅓ 산다고 해서 사문이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 노천에서 사는 자에게 그가 다만 노천에서 산다고 해서 사문이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 서서 고행하는 자에게 그가 다만 서서 고행한다고 해서 사문이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 일정한 간격에 먹는자에게 그가 다만 일정한 간격에 먹는다고 해서 사문ㅇ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 진언을 외우는 자에게 그가 다만 진언을 외운다고 해서 사문이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 결발 고행자에게 그가 다만 결발 고행자라고 해서 사문이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 탐욕이 있는 자가 단지 가사를 입었기 때문에 탐욕이 버려진다면,
- 악의가 있는 자가 단지 가사를 입었기 때문에 악의가 버려진다면,
- 분노가 있는 자가 단지 가사를 입었기 때문에 분노가 버려진다면,
- 원한이 있는 자가 단지 가사를 입었기 때문에 원한이 버려진다면,
- 질투가 있는 자가 단지 가사를 입었기 때문에 질투가 버려딘다면,
- 인색한 자가 단지 가사를 입었기 때문에 인색함이 버려진다면,
- 남을 기만하는 자가 단지 가사를 입었기 때문에 기만심이 버려진다면,
- 남을 사기치는 자가 단지 가사를 입었기 때문에 사기심이 버려진다면,
- 악한 욕망이 있는 자가 단지 가사를 입었기 때문에 악한 욕망이 버려진다면,
- 잘못된 생각을 가진 자가 단지 가사를 입었기 때문에 잘못된 생각이 버려진다면,
그렇다면 그의 친척들이 그가 태어난 바로 그날 가사를 입힐 것이다.
가사를 입는 사람 가운데서도 탐욕, 성냄, 원한, 경멸, 질투, 인색함, 기만, 사기, 악한 욕망,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본다. 그렇기 때문에 가사 입은 자에게 그가 다만 가사를 입었다고 해서 사문이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사문에게 합당한 길]
그러면 어떤 것이 사문에게 합당한 길을 수행하는 것인가? 어떤 사람이든지 탐욕스러운 비구가 탐욕을 버릴 때, 악의를 품고 있는 사람이 악의를 버릴 때, 성내는 사람이 성냄을 버릴 때, 원한에 찬 사람이 원한을 버릴 때, 경멸하는 사람이 경멸을 버릴 때, 질투하는 사람이 질투를 버릴 때, 인색한 사람이 인색함을 버릴 때, 기만하는 사람이 기만을 버릴 때, 속이는 사람이 속임을 버릴 때, 악한 욕망을 가진 사람이 악한 욕망을 버릴 때,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잘못된 생각을 버릴 때, 윤회의 근거가 되고 행복하지 않은 곳으로 가게 되는 사문의 이런 얼룩과, 결점과, 잘못을 버렸기 때문에 그는 사문에게 합당한 길을 수행한다고 나는 말한다. 그는 자신이 이런 악하고 불건전한 성향에서 깨끗하게 됨을 보며 해탈된 자신을 본다. 이런 것을 볼 때 기쁨이 솟아난다. 기쁨이 솟아나면 환희심이 일어난다. 환희심이 일어나면 육신은 고요해진다. 육신이 고요해지면 마음은 즐거워진다. 마음이 즐거우면 삼매에 든다.”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 인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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