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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 301
법광(法光) 2019-10-01 22:29:10, 조회 : 1,156, 추천 : 0



ㅇ 3차 결집 후 담마 사절단의 외국 파견(아홉 지역)

〔3차 결집이 끝난 후〕 예리한 통찰력으로 불법의 전파를 내다 본 목갈리뿟따 띳사 장로는 이웃하고 있는 나라들에 맛잔띠까 장로와 다른 장로들과 각 그룹에 각각 네 명의 동료를 보냈다. 이것은 외국에 믿음을 심기 위함이며 그리고 사람들을 일깨우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함께 중생을 위한 자비심에서 외국에 가장 훌륭한 불법을 힘차게 전하시오!”

훌륭한 성인 맛잔띠까 장로는 간다라국으로 갔다. 거기서 그는 많은 사람들을 번뇌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큰 영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마하데와 장로는 마히사 지방으로 가서 속박에서 벗어나는 길을 설법하였다. 락기따 장로는 아나마딱기야 경을 설법하였다. 지혜로운 요나까 담마락기따 장로는 악긱간도빠마 경을 가르쳐서 아빠란따끼국을 개종 시켰다. 마하담마락카따 장로는 나라다깟사빠자따까를 설법하여 마하랏티국을 개종시켰다. 마하락카따 장로는 깔라끼라마 경을 설법하여 야와나 지방을 개종시켰다. 맛지마 장로, 두라비사라 장로, 사하데와 장로, 물라까데와 장로는 담마짝깝빠왓따나 경을 설법하여 히말라야 지방에서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다. 소나 장로와 웃따라 장로는 수완나부미로 가서 많은 사람들을 속박에서 해방시겼다. 마힌다 장로는 네 명의 동료와 함께 가장 훌륭한 섬 랑까〔스리랑카〕로 가서 그곳에 믿음을 굳건히 뿌리내리게 하고, 많은사람들을 번뇌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이와 같이 아소까왕의 강력한 담마사절단의 외국 파견 정책으로 목갈리뿟띠 띳사 장로는 3자 결집이 끝난 후 바로 아홉 개의 방향으로 각 그룹에 다섯 명씩의 담마사절단을 파견하였다. 이 역사서에 기록된 파견된 장로 비구의 이름이 사실이라는 것이 다음과 같이 고고학자들의 발굴로 산찌탑과 소나리탑의 사리함 각문에서 발견되었다.〕*

히말라야 지방에서 담마를 전하도록 파견된 맛지마(Majjhima) 장로와 깟사빠고따 장로의 사리가 마댜 뿌라데쉬(Madhya Pradesh)의 산찌(sanei)와 소나리(sonari)에서 발견되있다. 10명의 성인의 사리가 산찌의 제2탑의 사암으로 된 사리함에서 1851년 커닝햄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사리함의 동쪽 면에 새기기를,

“savina vinayakana aram kasapagotam upadaya aram Cha Vachhisuvijayitam vinayaka" : (아라한 까사빠고따와 아라한 와치-수위자이따 스승을 포함한 모든 스승의 사리들).

이 사리함의 속에는 네 개의 작은 얼룩진 사리함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10명의 성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까사빠고따, 맛지마, 하리띠뿟따, 와챠-수위자야따, 마하와나야, 아빠기라, 꼬디니뿟따, 꼬시 끼뿟따, 고띠니뿟따, 목갈리뿟따.

여기 산찌 [사리함] 각문에 언급된 성인의 사리들은 같은 지역에 위치한 소나리(sonarl)의 사리함 각문에서도 발견되었다. 예를들면 고띠뿟따, 맛지마, 꼬시끼뿟따의 이름이 소나리 사리함에 새겨져 있다.

소나리 제2탑의 세 개의 사리함의 각문은 맛지마, 까사빠곳따, 다다빗사라 장로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다.

*〔“맛지마 장로, 두라빗사라 장로가 히말라야 지방에서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다.” 라고 한 디빠왕사의 이름과 이들 사리함에 있는 이름이 동일함을 알 수 있다. 왜 스리랑카로 간 장로들의 이름은 없을까? 그런데 사리가 있다는 것은 인도에서 죽어서 화장을 했기 때문에 사리를 넣고 탑을 세웠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서 담마를 전하다가 다시 인도에 돌아가서 죽었기 때문이며 스리랑카에 간 사람들은 스리랑카에서 죽었기 때문에 여기에 사리가 없다.〕*

〔마댜 쁘라데쉬에 있는〕 빌사 또쁘스의 이 담마사절단의 사리들은 스리랑카 초기 역사서의 또 하나의 정보를 증명하고 있다. 그것은 담마사절단들은 영구적으로 파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원래의 승원으로 돌아왔고 분명히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디빠왕사와 사만따빠사디까는 기록하기를 마힌다 장로와 동료들은 여러 개의 승원을 완성하고, 계를 주고, 56명의 스리랑카 비구에게 가르치고 수련을 시켰다. [이들은 모두 아라한이라고 기록됨] 그래서 장로는 그의 동료들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말하였다. 그런데 스리랑카 왕이 투빠라마 (Thüpäräma: 승원이름) 건설을 시작했기 때문에 이들은 돌아갈 생각을 버리고 섬에 머물렀다.

ᆞᆞᆞᆞᆞᆞ구족계를 받은 지 12년(32세)에 이곳에 와서 구족계 받은 지 60년말에(80세) 마힌다 장로는 열반에 들었다.





진리의 빛 - 김경녀 불교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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