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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 307
법광(法光) 2019-10-13 01:04:19, 조회 : 1,203, 추천 : 0



ㅇ 경장ᆞ율장ᆞ논장이 모두 체계적으로 쓰임

대 장로 비구들과 싱할라족의 지도자들은 불교의 미래가 위험에 빠졌음을 보았다. 불교의 존립 자체가 위협을 받고 있었다. [따밀족의 통치로] 불교를 지원해 줄 싱할라왕도 없었다.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 지금까지 구전으로 전승되어 온 삼장의 구전 전통이 이와 같은 [극심한 기근의] 불리한 상황 아래에서는 불가능하게 보였다. 이러한 비극의 기간 동안 승단의 중요한 관심사는 모든 것 중에 가장 값진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전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멀리 본 대 장로 비구들은 500명의 장로 비구들이 지방장관의 후원 아래 마딸레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바위승원인 알루위하라 승원에 모여서 참된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 가게 하기 위하여 전체 삼장[경장ᆞ율장ᆞ논장]과 주석서를 [체계적으로] 쓰게 되었다. 이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ㅇ 4차 결집은 삼장을 체계적으로 배열한 것

부처님 가르침이 쓰인 것이 이때(알루 위하라 결집)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믿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 위크리마싱게는 말하기를 세일론에 존재했던 쓰인 문헌은 알루 위하라 결집보다 적어도 일세기 전까지 거슬로 올라간다고 하면서 ‘쓰는 것’이 왓따가마니왕 때 훨씬 이전에 이미 보편적이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마하왕사로부터 일어난 많은 일들을 인용하고 있다. “책들이 가마니 통치 때에 기원전 150년만큼 일찍이 언급되어 있다. 마하왕사 소주석 [주석의 주석]에 자주 언급된 마하왕사의 싱할라어 [고대 스리랑카어] 주석은 쓰여진 문헌이었음에 틀림없다.”

다른 곳에서 위크리마싱게는 주장하기를, “웻사기리 각문(그는 161-137 BC로 정함)에 관하여 그때 싱할라어는 심지어는 산스끄리뜨어로 쓰기에도 충분한 형태로 브라흐미 알파벳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므로 왓따가마니 아바야왕 때까지 전체 불교경전이 구전으로 전승되어 왔다는 말은 과장이다.”

왓따가마니왕 때에는 아마도 그때까지도 경전들이 잘 배열되지도 못했고, 드물고, 완전치 못하고, 모두 정확하지 못했을 것이다. 알루위하라에서 경전들은 합송되었고 주석서들은 수정되고 분배되어졌다.

‘쓰는 것’은 부처님의 재세시에도 이미 알려진 것이다. 그렇지만 ‘쓰는 것’은 오랫동안 대중적이지 못했고 폭넓게 알려지거나 연마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적당한 쓰는 재료의 부족으로 그 사용이 무척 제한적이었다는 것은 타당한 이야기이다. 또한 진리의 가르침에 대한 드높은 ‘존엄성’에 대한 것 때문이었다. 그래서 [쓰여진 것 보다는] 스승의 입으로부터 직접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알루 위하라 결집에서 500명의 장로들이 한 것은 [빠알리] 대장경과 주석서들을 체계적으로 배열하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그때까지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알려졌던 것을 많은 사람들이 소유하도록 한 것이다.





회향(回向) - 범능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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