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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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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8 22:24:54, 조회 : 1,242,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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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부처님은 원래부터 곱슬머리였나?
알다시피 스님들은 삭발을 한다. 불교에서는 머리카락을 무명초라 하여 번뇌의 상징으로 여긴다. 자기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들불처럼 떠오르는 잡념을 머리카락에 대입한 것이다. 곧 스님들이 말끔히 깍는 머리는, 생명으로서의 본능과 세속적 명리名利에 대한 관심을 끊고 오직 수행에만 몰입하겠다는 다짐의 표현이다. 『비니모경』에는 “머리를 깍는 이유는 교만을 제거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믿기 위함이다”라고 적혔다.
수행자의 삭발은 보편적이다. 불교를 창시한 부처님 역시 출가를 하면서 맨 먼저 칼로 머리카락과 수염을 잘랐다. 이어 사냥꾼과 옷을 바꿔 입으면서 왕자로서의 권위와 기득권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퍽이나 이상한 것은 부처님의 모습을 형상화한 불상의 두부頭部에는 머리카락이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아주 풍성한 곱슬머리다. 불상의 ‘나발螺髮’은 불상이 처음으로 조성되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연관이 깊다.
부처님이 열반한 직후 예경禮敬의 대상은 불상이 아니라 불탑이었다. 부처님의 시신을 다비하자 수많은 사리가 나왔다. 제자들이 사리를 땅에 묻고 그 위에 조성한 탑은 부처님의 육신을 대체했다. 부처님의 몸이 남아 있으니 굳이 다른 몸을 만들 필요가 없었던 셈이다. 그즈음엔 부처님의 발자국, 곧 불족적佛足跡 앞에서 기도하는 이도 많았다.
부처님의 몸에서는 무려 8섬 4말(약 700킬로그램)의 사리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흩어지고 유실되고 빼돌려졌을 것이다. 결국 탑 안에 묻을 사리가 부족해졌을 테고 더군다나 그리워 마지않는 부처님의 얼굴도 가물가물해졌을 터이다. 불상이 등장한 때는 부처님이 입멸한 후 500여 년이 지나서다. 최초의 불사은 인도 서북부 간다라 지방과 북구 마투라 지방에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다.
마투라 불상은 전형적인 인도인의 모습을 띠고있다. 반면 간다마 불상의 외양은 유러피언에 가깝다.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으로 아테네 신전의 신상을 본떠 제작했다는 게 정설이다. 그리스의 변방 마케도니아 출신으로 그리스를 통일한 알렉산더 대왕은 내쳐 동쪽의 페르시아까지 점령하며 대제국을 건설했다. 헬레니즘은 그의 동방 원정 이후 발생한 문명융합 현상이다. 통일로든 정복으로든 두 나라가 합쳐지면 쌍방 국민의 삶도 뒤섞이게 마련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의 석고상처럼, 불상도 본의 아니게 ‘파마머리’를 갖게 됐다는 추측이다.
그렇다면 왜 유독 간다라 지방에서 서구화된 불상이 나타난 것일까. 답은 간명하다. 이곳이 한때 그리스인의 영토였기 때문이다. 기원전 3세기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북쪽에 박트리아 왕국이 성립됐다. 아시아로 이주한 그리스인이 만든 나라다. 100여년 뒤 박트리아 왕국은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간다라를 침공했다. 이렇게 간다라를 차지한 이가 메난드로스 왕인데, 바로 불교 경전에도 나오는 ‘밀린다 왕’이다. 그는 훗날 중인도의 나가세나 스님을 접견하고 불교 신자가 되었다. 『밀린다왕문경』은 예리한 질문으로 스님들을 당황케 하던 메난드로스 왕이 나가세나의 완벽한 논리에 마침내 설득당하는 내용이다.
메난드로스의 불교 귀의는 사실 대단한 사건이다. 인도나 아시아가 아닌, 유렵의 그리스 출신 임금이 불자가 된 것이니까. 게다가 독실했다. 그의 얼글을 조각한 주화에는 불교의 삼보三寶도 함께 새겨졌다. 죽은 뒤에는 나라 곳곳에 자신을 위한 탑을 건립해, 자신의 뼈를 나눠 보관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한다. 플루타르코스가 저술한 『영웅전』에 소개된 이야기다. 한편으로는 탑의 조성이 불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당대 권력자들의 취미였음을 미루어 헤아릴 수 있는 대목이다. 살아서는 왕 죽어서는 신이 도고 싶었던.
간다라 지역은 오늘날 파키스탄의 라왈핀디와 페샤와르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수도인 카불을 포함한 인도의 펀자브 지방 일대를 가리킨다. 준나르 석굴에는 펀자브에서 온 그리스인 무역상이 불상을 모신 흔적이 있다. 나시크 굴에도 부모를 위해 모든 부처에게 공양한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데, 그리스식 이름이 보인다는 전언이다. 메난드로스뿐만 아니라 박트리아 국민들도 불교를 믿었던 모양이다. 결국 간다라 불상에는 서양인과의 형태적 유사성을 넘어 그리스인의 신심도 깃들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달마가 동쪽으로 올 때, 불교의 모든 것도 동쪽으로 왔다. 경주 불국사 석굴암의 본존불상은 간다라 불상의 한국적 변용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간다라 불상이 동아시아에서 자리를 잡게 된 데에는 뚜어난 조형미가 한몫했다. 인체를 매우 섬세하게 표현하면서 현실감을 살려낸 기술이 압도적이다. 간다라 불상은 동북아시아의 중국과 한국, 일본으로 전래되면서 불상의 일반적인 형태로 정착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가장 아름다운 부처님이 최고의 부처님으로 간택된 것 아닐까 싶다.
부처님이여 - 야운(Yawo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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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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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광 거사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경전의 말씀은 내일(월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리며 추워지는 날씨에 가족 모두 건강하시길 기원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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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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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광 거사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말씀은 모레(수요일) 새해 첫 날 아침방송에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경자년 새해 복 많이 지으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지난 한 해 동안 소중한 말씀을 올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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