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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0 00:52:56, 조회 : 1,127,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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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무소유, 정말 아무것도 갖지 말아야 하나?
불교계 최고의 베스트셀러를 꼽으라면 아마도 법정 스님의 『무소유』 일 것이다.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이 1위 자리를 갈아 치운 것도 같지만. 아무튼 숨어 사는 산승이 풀어낸 청빈과 절욕의 법문은 수많은 독자에게 축복이고 귀감이었다. 담백한 문체도 주효했다. 알다시피 법정 스님은 유언으로 “더 이상 말 빚을 지기 싫다”며 자신의 저작에 대한 절판을 지시했다. 무소유마저도 소유하려는 장사꾼들을 향한 일침으로 읽힌다.
무소유無所有는 문자 그대로 옮기면 소유하지 말라는 의미다. 물론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스님 역시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명시했다. 당신은 자족과 절제로 얻어지는 심리적 상태를 맑은 가난 또는 텅 빈 충만이라고 바꿔 부르기도 했다. ‘무소유’라는 제목은 출판사의 과장일 공산이 큰데, 여하튼 인간의 형이상학적 욕구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매혹적인 말이다.
혹자들은 1급 청정수에 비견될 가르침에 감동하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가르침이라고 투덜댄다. 무소유에 대한 이중적 감정이 배인 어느 블로거의 글을 그대로 싣는다.
“백번 옳은 말이고 공감이 가지만 현실에서는 하나마나한 말인 것 같다. 우리 같은 속인에게는 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식구들과 편안히 살려면 좋은 집, 좋은 차가 필요하고 ᆞᆞᆞ 노후 대비를 위해 임대 놓아 먹고 살 수 있는 작은 강가 건물 하나라도 있어야 하고 ᆞᆞᆞ 또 자식 결혼시킬 때, 어느 정도 품위 유지가 되려면 적당한 감투도 하나 필요하고 ᆞᆞᆞ 나이가 들면, 돈 좀 들여서 고상해 보이는 작은 단체라도 하나 말들어 놓아야 심심하지 않고 ᆞᆞᆞ.”
『무소유』 독자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이런 심정일 것이다. 얄궂게도 『무소유』가 본격 흥행한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은 한국 경제의 최대 호황기였다.
귀족들의 소일거리로 출발한 게 서양철학이다. 마찬가지로 무소유란 어느 정도 소유를 축적한 부류에게만 가능한 미덕이자 여유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한편으로 무소유의 유행은 불교는 부자를 부정하는 종교라는 인식을 심어줄 만하다. 소극적이고 염세적인 종교라는 이미지를 부추기는 빌미도 된다. 그러나 사실 부처님은 출가수행자에게는 철저한 무소유를 요구했으나 재가불자에게는 일절 그러지 않았다. 외려 치부致富를 권장했다.
부처님은 가난을 죄로 여기지는 않았다. 빈자일등이 적절한 예화가 될 것이다. 여자 거지가 구걸로 기름을 사서 희미하게나마 밝힌 등불에 감동해 비구니로 받아들였다. 다만 가난을 위로했을 뿐 긍정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괴로움을 일으키는 최대 주범은 가난이라고 봤다.
“어떤 괴로움이 가장 무서운가 하면, 빈궁의 괴로움이다. 죽는 괴로움과 가난한 괴로움 두 가지가 모두 다름이 없으나 차라리 죽는 괴로움을 받을지언정 빈궁하게 살지는 않겠다.(금색왕경)“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빈곤이라는 부처님의 침통한 말투는, 아무거나 빌어먹고 아무데나 떠돌아다니며 가난을 자청한 당신의 행적을 감안하면 뜻밖이다.
더구나 부처님은 부자들과 친했다. 『금강경』의 배경인 기원정사를 보시한 수닷타 장자를 비롯해 경전에는 부처님을 따르고 섬기는 장자들이 적잖이 등장한다. 장자란 대상隊商 무역으로 막대한 자본을 축적한 이들로, 이즈막의 재벌에 가깝다. 당대의 기득권이었던 브라만교를 믿는 농경사회의 대지주들에 맞서 새로운 지배 계급으로 성장했다. 부처님은 장자들에게 “재물을 현재에 가지면 한량없는 복을 얻을 것(증일아함경)” 이라며 적극적인 영업과 이윤 추구를 재촉했다.
이와 같은 친재벌적 입장은 일단 갓 걸음마를 뗀 교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해석이다. 『불교자본주의』를 집필한 윤성식 고려대 교수는 “불교는 도시에서 포교를 시작했고 당시에 새롭게 등장한 신흥 상공업자들이 대거 불교를 신봉하게 된다”며 상인들의 상업 활동은 불교의 포교예 많은 도움을 주었고, 상인들의 활동 범위에 따라 불교도 교세를 확장해 갔다”고 설명했다.
사마천은 『사기事記』에서 “줄곧 가난과 천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입으로 인의를 운운하는 것만큼 한심한 일도 없다”며 무능한 선비들의 위선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부처님 역시 철저한 리얼리스트였고 냉철한 합리주의자였다. 돈이 없음에서 비롯된 불행은 오직 돈으로만 해결될 따름이지, 값싼 격려는 궁극적인 해법이 될 수 없음을 직시하고 있었다.
부처님은 수닷타를 예뻐하면서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어진 재물은 자신과 부모와 자식과 친구와 하인들을 행복하게 하는 데에 쓰여야 한다”고 말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동시에, 부의 창출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알맞은 보상을 하라는 설법으로 들린다. 돈을 벌기도 잘 벌되 쓰기도 잘 써야 한다는게, 축재蓄財를 재우친 본뜻이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인간다움의 근본은 돈인 듯하다. 그래서 돈을 여럿이 나누면, 보다 많은 이들이 인간다워질 것이다.
불두화(佛頭花) - 해조음(海潮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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