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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에 관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물음 20
법광(法光) 2020-01-24 23:25:35, 조회 : 1,069, 추천 : 0



20 '본래 부처' 라면서 왜 수행을 계속하나?


불교는 종교만이 아니라 철학으로서도 유효하다. 지금껏 불교계에 몸담고 있는 이유의 핵심이다. 일전에 뒤늦게 불교를 공부하게 된 어느 지인이 물었다. 다음은 “불교는 이율배반적” 이라며 내놓은 그의 질문 이다. “조사선祖師禪에 따르면 삼라만상이 원래부터 청정하고 완전한 존재, 즉 '본래 부처' 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이미 부처인데 부처가 되기 위해 수행을 해야 한다는 말은 모순이지 않은가?"

귀담아 들을 만한 논리다. 있는 그대로가 부처임을 알았다면, 있는 그대로 살면 그만이다. 살아있다면, 살아내는 게 모든 생명의 소명이다. 또 다른 무엇이 되기 위해 고민하거나 땀 흘릴 필요는 없어 보인다. 곧 신분과 환경에 굴하지 않고 주어진 삶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그것이야말로 보살행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깨달음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바르고 지속적인 수행을 독려하는게 불교의 전통이다.

사실 깨달음과 수행의 불편한 관계는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돈 오돈수頓悟頓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 논쟁이 그것이다. 갑론을박의 핵심은 ‘깨달은 후에도 수행이 필요한가' 라는 문제였다. 돈오돈수는 필요 없다는 쪽이고 돈오점수는 필요하다는 쪽이다. 논란은 불교학계의 보편적인 이론으로 자리한 고려시대 보조 지눌 스님의 돈오점수를, 전 조계종 종정 성철 스님이 지해知解, 곧 불완전한 깨달음이라고 비판하면서 촉발됐다.

물론 최초의 돈점 논쟁은 이보다 훨씬 앞선 1,300여 년 전의 일이다. 중국 선종의 5조 홍인弘忍 대사의 수제자였던 신수神秀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스승에게 지어 바쳤다. “부처의 마음은 깨끗한 거울과 같으니 매일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 는 게 골자였다. 이때 허드렛일이나 하던 행자 신세였던 혜능이 신수의 게송을 보고는 “마음이란 것 자체가 헛 것인데 거울이 웬 말이냐” 며 반박했다. 홍인 대사는 혜능의 손을 들어 줬고 그는 6조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본래 부처이므로 더 이상 닦을 것이 없다는 통찰을 높이 산 것이다.

신수가 점수의 상징이라면 혜능은 돈수를 대변한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돈점 논쟁을 자세히 살펴보면, 깨달음에 대한 시각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돈수를 옹호하는 측은 깨달은 후에도 수행이 필요하다면 그 깨달음은 진정한 깨달음이 아니다' 라고 주장한다. 반면 이치를 깨달았다손 과거 오랜 세월의 습기習氣를 없애야만 깨달음이 완성되는 것이고 그래서 수행이 필요하다' 는 게 점수주의자들의 입장이다. 요컨대 돈수의 깨달음이 최고의 깨달음인 증오를 지향한다면, 점수의 깨달음은 해오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똑같이 '오' 라는 표현을 쓰지만 그 등급이 서로 다른 셈이다. 해오의 '오'가 통찰이라면, 증오의 '오'는 통찰과 통찰을 거듭한 최종적 통찰쯤 되겠다.

한편 훗날 혜능 스님은 중국불교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지식에 등극 했다. 그런데 혜능이 신수를 제압한 사연은 하택 신회荷澤神會 선사의 조작이란 설이 있다. 신회는 당초 신수의 문하였으나, 신수가 인정해주지 않자 혜능 쪽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자신만이 혜능의 후계자(7조)라고 강변하는 동시에, 신수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얄궂은 건 혜능의 적통을 자임한 신회가, 당대의 선사들로부터 점수를 일컫는 ‘지해종도知解宗徒'로 낙인찍혀 몰락했다는 사실이다.

깨달았다고 사람이 갑자기 달라지는 건 아니라는 게, 개인적인 경험이다. 깨달음의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깨달음의 실천이다. 본래 부처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독선을 부추긴다. '내가 부처이니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 는 방일은 금물이다. 본래 부처의 진의 가운데 하나는 내가 부처인 만큼 남도 부처' 라는 윤리의식이다. 조계종 원로회의 사무처장 광전 스님은 “점수에 치우쳐 시비를 일삼는 사람에겐 돈을 이야기해 분별을 없애고, 본래 부처이거늘 무슨 수행이 더 필요할 것인가 하는 사람에겐 점을 이야기해 아만을 없애야 한다” 고 강조했다. “중생을 제도하는 방편으로 돈과 점을 이야기할 뿐, 법法 자체에 따로 돈점이 정해져 있지 않다” 는 게 요지다. 꼬치꼬치 따지는 사람에겐 돈이, 잘났다며 나태한 사람에겐 점이 필요한 것이다.





법광(法光) [2020-01-24] : 학장님, 스님, 법우님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과 행복을 누리시길 기도드립니다.
眞虛性宗 [2020-01-25] : 법광 거사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경전의 말씀은 내일(일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감사드리며 새해 선업공덕 많이 쌓으시고 복 많이 받으십시오.
성등 현수언 [2020-01-26] : 법광거사님 그동안도 수고 많았습니다 새해도 부처님 닮아가는 삶으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성등 현수언 두손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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