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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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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6 21:55:45, 조회 : 1,172,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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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불립문자不立文字, 말을 하지 말라는 뜻인가?
말은 약이면서 독이다. 위로는 힘이 되는 반면 비난은 칼끝과 같다. 막말과 뒷말은 귀에 거슬리고 험담과 잡담은 피곤하다. 말 한마디 잘못해서 신세를 망치는 경우도 여럿이다. 말본새가 그 사람의 인격과 동일시되는 게 인간사이니, 입조심만 해도 중간은 가는 게 이치다. 또한 더럽고 치졸한 말을 내 뱉는 사람과는 아예 말을 섞지 않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 언어는 생각의 그릇이라지만, 그릇된 생각을 담은 언어라면 그냥 엎어 버리는 게 낫다.
묵언은 가장 간단한 수행법이다. 쉽게 말해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독선을 꾸짖고 화합을 권하는 불교에서는 말을 아끼는 게 미덕이다. 마음이 탁하고 뒤가 구릴수록 말이 많아지는 법이니까. 그래서 ‘개구즉착開口卽錯'이라고도 했다. '말하는 순간 틀린 말이 된다'는 뜻이다. 언어의 숙명은 분절이어서, ‘이것’을 말하는 동시에 이것 아닌 것이 갈라져 나오고 만다. 이것에 아무리 해박하더라도 이것 아닌 것에는 무지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모르니까 외면하고 차별하고 멸시한다.
한걸음 나아가 선사들은 동념즉괴動念卽乖도 가르쳤다.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전하는 말로 생각은 일어나는 순간 어그러진다'는 의미다. 마녀사냥이나 인종청소에서 보듯 '바름'이라는 소신은 ‘삿됨'보다 더 악랄한 삿됨으로 변질되기 일쑤다. 문자를 세우지 말라는 불립문자不立文字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도불가설道不可說이다. 언어로 표현된 진리는 왜곡된 진리요 말뿐인 진리다. “일체의 모든 법은 오직 망념에 의해서 차별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법은 본래부터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승 기신론』.”
하지만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닌 것이 '불립문자'라는 가르침도 결국은 말이라는 것이다. 중국 선종의 6조인 혜능은 조사선의 완성자로, 불립문자의 근간을 다진 인물이다. 그러나 그조차 『육조단경』에서 문자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드러낸다. “불립문자를 말하지만, '불립'이라는 두 글자도 문자”라고 전제하면서 “이미 문자를 쓰지 않는다고 했으면 문자를 아예 사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요컨대 사람에게 입이 있는 이상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데, 억지로 말을 하지 않는다면 이 역시 본성에 위배되는 일인 셈이다.
이렇듯 인간은 언어를 떠날 수 없다. 그래서 혜능도 시인한 불리不離 문자의 질곡을 외려 양성화하는 움직임이 훗날 선가에 나타난다. 송대宋代에 이르러 새로운 조류로 형성된 문자선文字禪이다. 아름답고 신비로 운문장으로 선의 궁극을 표현하겠다는 게 문자선주의자들의 목표였다. 문자선은 인쇄 기술의 발달과 함께 시문詩文에 능한 사대부와 선사들 간의 왕성한 교류에 힘입 어 흥행했다. 다만 문약文弱이 약점이었다. 글솜씨에만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선 특유의 일상성과 생명력을 잃었다는 반발을 샀다. 그리하여 등장한 것이 오늘날 대한불교조계종의 정통 수행법으로 자리한 간화선看話禪이다.
간화선은 화두를 글재주에나 써먹으려 드는 문자선, '본래 부처이니 수행할 필요가 없다는 무사선無事禪, 좌선한답시고 조용한 장소만 찾아다니는 묵조선默照禪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양평 상원사 용문선원장 의정 스님은 “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 곧 앉아서만이 아니라 서서도 걸으 면서도 심지어 누워서도 화두를 놓지 않는 게 간화선의 진짜 모습”이라며 “번잡하고 경박한 세상 속에서도 인생에 대한 진지한 관점과 성찰을 놓지 않는 것이 화두 정진”이라고 말했다.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는 조주 종심 선사의 화두는 유명하다. 하지만 『종용록從容錄』에서 조주는 불성이 있다고도 했다. 없다면 “(스스로를 개만도 못한 존재로 여기는) 업식이 있어서”이고, 있다면 “알면서도 일부러 부처가 되지 않은 것”이라고 했는데, 자못 애매한 대답이다. 고매한 선승의 '오리발’ 작전은 있다 없다 또는 옳으네 그르네, 아니면 내편입네 네편입네 분별에 얽매여 고집을 피우거나 번뇌를 자초하거나 상처를 입히지 말라는 당부로 읽힌다. 혜능은 『법화경』을 3,000번 읽었다고 뻐기는 법달法達을 다음과 같이 힐책했다. “마음이 바르면 『법화경』을 굴리고,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법화경』에 굴려지는 법이다.”
찬란한 미소 - 도신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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