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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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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2 22:05:29, 조회 : 1,203,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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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입적’이란 표현은 스님에게만 쓸 수 있나?
죽지 않는 생명은 없다. 살아간다는 것은, 죽어간다는 것이다. 죽음은 모든 인간 앞에 놓인 최종적 숙명이자 난제다. 인류는 허다한 철학과 종교를 통해 죽음의 의미와 배후를 탐구하면서 값진 죽음을 모색해 왔다. 불교의 수행 역시 죽음을 향한 성찰이고 도전이다. 생사의 끝 없는 질곡을 벗어날 목적으로 수행자들은 염불을 외고 화두를 들며 죽기 직전까지 굶어 보기도 한다.
부처님은 6년간의 고행과 21일간의 명상 끝에 마침내 깨달았다. 엄밀히 말하면 명상만으로 깨달았다. 몸이 힘들면 마음도 거칠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부처님은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가혹하게 육신을 괴롭히는 일의 부질없음을 자각한 뒤, 편안한 상태에서 사유에 집중하는 명상으로 선회했다. 그렇게 해서 깨우친 것이 중도中道다. 중도란 고행과 쾌락이라는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길이다. 이것에도 저것에도 연연 하지 않는 ‘제3의 길'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어차피 인생유전人生流轉이고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니까. 부처님은 중도를 통찰함으로써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실제로 불교는 죽음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연기의 원리에 따라,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다. 자연의 질서이고 순리이므로, 거부할 수 없으며 애닮아 한다고 모면될 일도 아니다. 한걸음 나아가 죽음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편이다. 살아있다면 응당 겪어야 할 번민과 시련을 궁극적으로 해소해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부처님의 죽음을 뜻하는 '열반'이란 개념에서 죽음에 대한 불교의 열린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열반은 산스크리트 '니르바나nirvana'의 음차音다. 니르바나의 일차적 의미는 불길이 완전히 꺼져 재만 남은 상태를 일컫는다. 결국 죽음이란 더 이상 불같이 화를 낼 필요도 없고 세상으로부터 화를 입을 염려도 없는 완전한 평화의 상태라고 풀이할 수 있다. 본래 열반은 깨달음으로 이룩한 최고의 경지 혹은 지순한 행복을 가리킨다. 해탈이다. 이것이 죽음에 대한 긍정적 관점과 맞물리면서 열반은 ‘깨달은 자의 죽음'이란 이차적 어의 획득하게 됐다.
이즈막에 원로 스님들이 수명을 다했을 때에도 '열반'이란 단어를 왕왕 쓴다. 일관된 수행과 포교로 종단 발전에 크게 기여한 큰스님에 대한 예우의 표현이다. 알다시피 일반적으로 스님의 죽음을 지칭하는 표현은 입적入寂이다. 일체의 번뇌가 사라진 적멸寂滅의 세계로 회귀했다는 뜻으로, 열반과 별반 다르지 않다. 원적이나 귀적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하는데, 의미는 대동소이하다. 현생의 교화를 끝내고 내생의 교화를 위해 떠난다며 천화遷化라고도 한다. 특히 덕망이 높은 스님의 입적 소식은 크게 보도하게 마련인 불교계 언론에서는 원적이란 낱말을 애용하는 편이다. 부처님의 죽음을 뜻하는 열반은 너무 부담스럽고, 통상적으로 쓰는 입적은 너무 가벼워 보이는 데서 연유한다.
열반, 원적, 입적, 입멸 등등 스님의 죽음을 기리는 단어는 많다. 반면 재가불자의 죽음을 가리키는 단어는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생전에 아무리 도가 높기로 유명했다 해도, 어느 신문이든 그의 부음 앞에 입적이라고 기록할 엄두를 못 낸다. 결국은 출가자 중심으로 운영 되게 마련인 교단이니,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 수도 있겠다. 불교는 전통적으로 윤회를 받아들인다. 그래서 재가불자의 죽음을 가리키는 말로는 ‘다른 세상으로 갔다'는 타계他界라는 용어가 그나마 불교적이다. 일견 별세別世가 제일 깔끔하다. '영원히 잠들었다'는 영면永眠은 육신의 허망함을 강조하는 불교 교리에 맞지 않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소천召天, 가톨릭 신부의 죽음을 일컫는 선종善終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다.
흔히 재가자가 죽으면 극락왕생하라고 위로하는데, 사실 이것은 치열하게 수행하는 이들에 대한 모독이다. 극락이란 천상인데, 나머지 인간·축생·아귀 아수라 지옥을 포함해 중생이 윤회한다는 육도大道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아무리 휘황찬란하고 유유자적한 곳이라 해도, 필연적으로 말 많고 탈 많은 공간이다. 재벌에게도 재벌만이 갖는 스트레스가 있으리라 믿는다. 출가자나 재가자나 목표는 똑같이 열반인 것이다. 다음 생에 천국에 태어나고 싶어서 수행한다면, 그는 멍청이다.
방온(?~808)은 중국불교사에서 가장 추앙받는 속인이다. 남성 재가자를 뜻하는 거사居士를 붙여 보통 방거사라 한다. 본래 부유한 가문의 촉망받는 인재였다. 과거 시험을 보러 가던 도중 여관에 들렀는데, “관직에 오르는 게 부처가 되느니만 못하다”는 어느 객승의 충고에 그 길로 출세를 포기했다. 마조馬祖 선사의 문하에서 공부하며 크게 깨우쳤다. 전 재산을 강물에 던져버린 뒤, 바구니를 만들어 팔며 생계를 이었다. 세속의 명리를 초탈했던 방온의 법문과 행적을 모은 『방거사 어록』은 오늘날까지 면면히 전해진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묘사한 단락의 제목은 ‘입멸' 이라고, 당당하게 적혀 있다.
비록 출가는 하지 않았으나 세속에서 열심히 정진하는 유발 수행자들의 열정은 스님들의 그것과 같고 또한 그처럼 굳세다. 염불이든 참선이든, 경전을 읽는 경전을 베껴 쓰든, 산속의 토굴에 들어가 생식을 하든.... 삶의 달콤함과 죽음의 씁쓸함 사이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방황케 하는 쳇바퀴를 부숴버리겠다는 몸부림이다. 홍사성 『불교평론』 주간은 “정법에 입각해 투철하게 수행한 사람이라면 그의 죽음을 원적이라고 불러도 원칙적으로 문제가 없다”면서 “다만 승보를 공양하는 교단임을 고려해 먼저 대중의 광범위한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고 밝혔다.
학승으로 존경받는 스님도 동의했다. 스님들의 승급昇級 시험을 관장하는 조계종 고시위원장 지안 스님은 “열심히 수행하며 청정하게 살아가는 재가 수행자에 대한 존중은 수행문화의 확산에 기여할 수 있다”며 찬성했다. 결국 관건은 지위나 신분이 아니다. 살아가면서 얼마나 치열하게 수행했고, 기어코 어떠한 정신적 자산과 교훈을 남겼느냐의 여부일 것이다.
마음 - 강주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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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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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광 거사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경전의 말씀은 내일(토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리며, 특히 코로나 19에 각별히 유의하시어 건강하시길 기원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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