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head9.jpg
Home 방송안내 신행생활 음악수필 불교강좌
 
  운영자인사
  운영자소개
  방송시간표
  생방송듣기
  방송대화방
  윈앰프설치
  사이버연등
  후원금보시

무창포불교대학


  방송게시판

 불교에 관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물음 47
법광(法光) 2020-03-15 20:08:51, 조회 : 1,165, 추천 : 0



47 부처님의 고향 인도에는 왜 불교 신자가 없을까?


2009년 인도에 다녀온 적이 있다. 불교 8대 성지를 순례했다. 부처님이 탄생한 룸비니만 인접 국가 네팔의 영토다. 당신이 깨달은 부다가야, 열반한 쿠시나가르, 처음으로 설법한 사르나트, 최초의 사찰 죽림정사가 세워진 라즈기르(왕사정), 금강경을 가르친 기원정사가 있는 스라바스티, 마지막 안거를 지낸 바이살리, 부처님의 핏줄인 석가족이 거주하는 상카시아는 인도 동북부 우타르프라데시 주에 속한 땅이다. 2월이었는데도 무척이나 더웠다. 곳곳에서 소똥 냄새를 맡으며 거지들의 떼 지은 구걸을 묵묵히 견뎌야 했다. 무엇보다 거대한 대탑이 인상적인 부다가야 말고는 사실상 버려진 유적들이었다. 잔해와 폐허 속에서 성지聖地는 이름과 추억으로만 떠돌았다.

알다시피 인도는 부처님의 본거지이자 불교의 시원始原이다. 기원전 3세기 인도 전역을 통일하고 불교를 국교로 지정한 아쇼카 왕의 치세가 불교의 극성기였다. 중국 당나라 현장 스님은 『대당서역기』에 “인도에 불교 사원이 1,000개가 넘고 출가수행자는 5만이 넘는다”고 적었다. 7세기 초중반의 상황이다. 그러나 지금은 흔적만 남았다. 독자적인 교단도 스님도 신도도 없다. 국민의 절대다수는 힌두교 신자다. 공식적으로는 13세기 이슬람의 침공으로 인해 불교가 멸망했다고 본다. 근본 주의와 폭력성으로 무장한 무슬림의 난동에, 비폭력을 지향하는 불자들이 속절없이 무너졌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부자는 망해도 삼대를 가는 게 사바세계의 이치다. 전쟁의 승패는 끝내 동원된 인력과 물량의 크기로 좌우되는 법이다. 타종교에 허무하게 당했다면, 그만큼 내실이 빈약했으리란 이야기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소멸이란 견해도 있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인도의 제2대 대통령을 지낸 철학자 라다크리슈난은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 근본 원인은 당시에 유행하던 힌두교의 여러 종파들과 불교 사이에 어떠한 차이점도 찾을 수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힌두교는 국민 개개인이 각자 다른 신을 숭배한다고 할 만큼 다신교적 특성을 띤다. 부처님도 허다한 신들 가운데 하나로 도태됐다.

밀교密敎는 인도불교의 마지막 종파다. 이슬람에 의한 절멸 직전까지 700년간 성행했다. 비밀스러운 제의祭儀를 중시하는 밀교는 인도의 전통 종교인 브라만교의 의례와 주술을 통째로 흡수했다. 토속신들은 불교 안에 유입돼 각종 불佛과 보살菩薩과 명왕冥王과 범천梵天으로 부활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피장파장은 가속화됐다. 궁극적으로 브라만교가 힌두교로 재편되면서 불교는 점차 힌두화됐고 급기야 서로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불교는 초기만 해도 철저하게 이성理性과 사유思惟의 종교였다. 부처님은 초지일관 겉보기에 그럴싸하거나 남들이 그렇다고 하는 게 아니라. 객관적 사실만을 믿을 것을 강조했다. 충분히 생각하고 마침내 검증이 됐다고 확신하는 것만 진리로 여기기를 신신당부했다. 그리고 그것이 차별화된 생명력이었다. 인간의 운명은 자기가 만드는 것이지 신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며 신분제를 부정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결국 브라만교와의 합병은 교조敎祖인 부처님이 그토록 경계했던, 미신과 악습과의 결탁이었다. 곧 불교가 망한 본질적 원인은 합리성의 상실이다.

유명무실해진 계율도 한몫했다. 『대당서역기』에는 “수행승들이 처 자식을 거느리고 가축을 기르고 살생을 일삼는다”는 탄식이 나타난다. 대처승은 어느 시대에나 화근이다. 교단 내에 교육받지 못한 하층민의 비중이 커지면서 지성知性의 힘이 서서히 위축됐다는 데서도 연원을 찾는다. 그저 부처님을 무작정 믿으면 복을 받는다 류의 옹졸한 신앙이 판치게 됐다는 분석이다. 수많은 분파의 대립이 결정타였다는 시각도 보인다. 학승들 간의 치열한 논쟁은 학문적 발전과 함께 원한과 절교를 남겼다.

우뚝 선 건물은 필연적으로 그림자를 갖는다. 5세기에 설립된 세계 최대 규모의 불교대학이었던 '나란다'의 영광은, 민심과 유리된 성직자들의 먹물 자욱한 자기만족으로 읽을 수도 있다. 요컨대 스님이 좀체 스님 같지 않고, 스님들끼리 싸우고, 스님과 신도가 따로 노는 형국이었던 격이다. 결정적으로 철학이 작동하지 않았다. 적전분열의 풍경은 이토록 어수선했다. 백성들과 함께 호흡하지 않고 희망을 제시해주지 못하는 종교는, 상조회사에 불과하다.





가난한 마음 - 한정일, 박소림



  이전글 대보적경 제32권-11. 출현광명회 ③ 법성화 2020-03-15
  다음글 무비스님이 가려 뽑은 불교명구 365-270 普德華 2020-03-15

목록으로 수정하기 삭제하기 추천하기
ⓒ 2001-2004 by Passkorea Co., Ltd. All rights reserved   

후원금보시함

신행상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