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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8 21:43:16, 조회 : 1,215,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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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천도제인가, 천도재인가?
유교문화권에 속한 한국인은 제사에 익숙하다. 그래서인지 불교 고유의 의식인 재齋와 혼동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사찰에서 고인 故人의 극락왕생을 빌어주는 천도재를 천도제라 표기하는 실수를 범한다. ‘재齋’와 ‘제祭'는 한끝 차이지만, 엄밀히 다른 차원의 개념이다. 일단 돌아가신 분에 대한 자세부터 다르다. 전자가 ‘영원히 떠나시오’라면, 후자는 ‘언제든 오시오’라는 상반된 특징을 갖는다.
‘제'라는 한자는 月+又+示의 조합이다. 여기서 '月'은 하늘의 달이 아니라 고기를 일컫는 육달월이다. 육달월에 '또 우’와 ‘보일 시'가 들붙었으니, 종합하면 고기를 겹겹이 쌓아 내보인다는 의미다.
곧 돌아가신 혼령을 위해 진수성찬을 대접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유교가 끔찍이 여기는 효孝의 산물인 제사의 핵심은 ‘정성껏 음식을 준비했으니 어서 오셔서 맛있게 드시고 후손들을 음덕蔭德으로 보살펴달라는 청원이다. 죽은 자들을 위한 봉양과 추모의 성격도 적지는 않으나 요점은 살아있는 자들의 이익과 행복에 맞춰져 있는 셈이다.
반면 ‘재齋’는 ‘가지런할 제’에 ‘보일 시'를 합친 것이다. 제사와 마 찬가지로 음식을 만들어 내보인다는 행위는 비슷하다. 그러나 그 전에 ‘가지런한 마음’을 보여야 한다고, 음식을 바치는 정성이 반듯하고 가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의식의 규모보다는 의식을 치르는 정신을 중시한다는 점이 특색이다. 그런 맥락에서 재齋는 계戒와 통한다. 내가 깨끗하고 간곡한 심정으로 올곧게 기도해야만, 영가가 사바세계를 벗어나 극락세계에서 영영토록 편안히 잠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욕되고 억울했던 이승일랑은 빨리 잊으라'는 권고도 담겼다. 제사와는 달리 죽은자들을 향한 위로와 자비가 재齋의 진면목임을 알 수 있다.
‘재’의 어원은 산스크리트 ‘우파바사타upavasatha’. 이를 번역하여 ‘재'라 하였다.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 즉 몸과 입과 마음이 저지른 죄를 참회하고 부처님을 경건히 받들며 귀의하겠다는 의식이었다. 부처님을 대리하는 스님들의 식사를 가리키기도 했다. 이후 1차적 어의가 확장되면서 스님을 공양하는 의식 또는 그와 같은 의식을 중심으로 한 법회를 두루 뜻하게 됐다. 한편으론 상사喪事와 관련된 제의祭儀 전반을 칭하는 용어로도 전용한다.
무차회無遮會는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재였다. 죽은자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자들에게도 베풀었다. 부처님이 기원정사에 머물 때 장자長者 람달이 무차대회를 열고 5,000명의 출가자를 공양했다는 기록이 『법구경, 「술천품」에 나온다. 람달은 무려 5년 동안 옷과 약, 진기한 보물과 생필품을 공급하고 무차회 마지막 날에는 무려 8만4,000 가지의 물건을 무차별로 보시했다. 법회인 동시에 잔치였다. 아무리 그 교리가 심오하고 그 역사가 명멸하더라도, 불교의 이상理想은 끝내 모든 생명이 잘 먹고 잘 살다가 잘 죽는 것이다.
람달의 뻑적지근한 기부는 훗날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제3대 임금 아쇼카 왕이 계승했다. 인도 대륙을 무력으로 통일하고는 전쟁의 살육을 뉘우치며 독실한 불자가 된 인물이다. 그는 선지식善知識의 법문을 자주 청해 듣고 모든 백성에게 재물을 충분히 나눠주며 이웃 사랑을 실천했다. 아쇼카 왕이 인도의 전륜성왕轉輪聖王이었다면, 남북조시대 양무제는 중국의 불심천자였다. 14일간 계속된 동태사同泰寺 『반야심경』, 강설 법회에는 연인원 30만 명이 참여했다. 외국의 사신까지 끌어다 앉혔다. 다만 너무 잦은 무차회로 나라의 재정을 축내고 빠른 멸망을 재촉했다는 게 오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시대에 국가 차원의 재가 성행했다. 이때는 스님에게 밥을 해드린다는 의미로 반승飯僧이라고도 불렀다. 임금의 생일이나 사찰의 낙성 법회 때는 꼭 반승이 열렸다. 불교가 위축된 조선시대에는 민간을 중심으로 재가 명맥을 이었다. 여전히 재는 많고 자주 열린다. 육지와 바다의 온갖 고혼孤魂들을 달래는 수륙재水陸齋, 살아생전에 미리 공덕을 두둑이 쌓아두고 내생來生을 대비 하겠다는 '보험' 성격의 생전예수재生前預修齋, 49재의 또 다른 형태로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한 영산회 장면을 재연한 영산재가 대표적이다.
결론적으로 불교에는 ‘재’만 있지 ‘제’는 없다. 자세히 살펴보면 ‘제'는 조상의 보이지 않는 도움을 받고 싶다는 일종의 투자에 가깝다. 이와 반대로 재는 철저하게 나를 버리고 비우겠다는 다짐이 먼저다. 아울러 제사상은 여인들의 명절 증후군을 발판 삼아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리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잿밥은 맨밥이어도 괜찮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면, 눈물을 닦아줄 수만 있다면,
100일제 영가천도 - 태산보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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