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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에 관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물음 49
법광(法光) 2020-03-19 23:50:14, 조회 : 1,245, 추천 : 0



49 108번뇌라는데, 번뇌가 정말 108 가지나 되나?


‘108'은 불교를 대표하는 숫자다. 많은 불자가 휴대폰 뒷자리 번호로 ‘0108'이나 '1080'을 쓰고 싶어 한다. 108번뇌의 108이다. 그만큼 인간의 번뇌가 수없이 많다는 뜻이다. 얼핏 108가지 희로애락을 가리키는 듯하다. 사실 108번뇌는 인간의 감각에서 비롯되는 고민의 총합이다. 우울, 불안, 근심, 공황 등등 잡다한 감정이 108개라는 뜻이 아니다. 여섯개의 감각을 6의 배수로 층층이 쌓아 올린 결과다.

'육근六根'이란 감각기관과 '육진六塵’이란 감각대상이 서로 마주칠 때, '육식'이 발생한다. 육근은 눈·귀·코·혀·피부·생각(안이비설신의). 육진은 색깔·소리·냄새·맛·촉감·생각 즉 대상(색성향미촉법)이다. 남성이 젊고 아름다운 여인을 맞닥뜨리면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한다. 반면 꼴불견 앞에서는 잽싸게 고개를 돌리게 마련이다. 또한 길가의 돌멩이를 보면 아무렇지도 않다. 곧 육근이 육진을 만나면 먼저 좋다·나쁘다·그저 그렇다는 세 가지 인식 작용(느낌)을 일으킨다.

다시 좋은 것은 즐겁게 받아들이고, 나쁜 것은 괴롭게 받아들이며, 그저 그런 것은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게 방치하는 마음이 생긴다. 미녀는 어떻게든 안고 싶고, 원수는 죽이거나 최소한 피하게 되며, 길가의 돌멩이는 누가 가져가든 말든 개의치 않는다. 육근과 육진의 하나하나가 부딪칠 때 좋고 ·나쁘고·평등하고·괴롭고·즐겁고·버리는 여섯 가지 감정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렇게 6x6=36, 즉 서른여섯 가지의 번뇌가 생겨나게 된다. 이와 함께 36번뇌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끊임없이 유전한다. 마침내 36에 과거 현재 미래의 3을 곱하여 108번뇌가 만들어지는 얼개다.

또 하나의 셈법은 이보다 난이도가 더 심하다. 견혹見惑인 88개의 번뇌와 수혹修惑인 십혹十惑, 부수적인 번뇌인 십전十總을 합한 것이라는 설이다. 견혹이란 잘못된 사고·지식·인식 작용에 혹해서 생겨나는 번뇌를 뜻한다. '나' 또는 '내 것'이 실재한다고 여기는 신견身見, 사물을 한쪽만 보는 변견邊見,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인과因果의 이치를 믿지 않는 사견邪見,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에 집착하는 견취견見取見, 싫은 것은 무조건 싫다는 계금취견成禁取見 등이다. 사실 견혹은 비교적 끊기가 쉽다. 지금 가진 소견이 잘못된 것인 줄만 깨달으면 이내 없어진다.

반면 오랜 수행을 통해서만 결별이 가능한 번뇌가 수혹이다. 태어남과 동시에 따라오는 정서적 의지적·충동적 번뇌다. 탐욕·분노·어리석음·나태·의심 등 다섯 가지다. 이러한 감정이 현상세계와 만나면서 10개의 수혹을 야기한다. 삶이란 동서고금과 왕후장상을 막론하고 싸구려 광대놀이인지 모른다. 끊임없이 욕망하고 성질내고 속고 속이고 찔러보고 찍히고 어물쩍거리고 어슬렁 거리다가 끝내는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마는.

생명의 근본적인 한계에 값하는 십전은 다음과 같다.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무참無慘, 죄를 저지르고도 당당한 무괴無愧, 질투하고 시기하는 질嫉, 남에게 인색한 간燦, 그러고서 후회할 회梅, 꾸벅꾸벅 조는 수면睡眠 , 마음이 들뜨고 혼란스러운 도거, 혼미하고 침울한 혼침昏沈, 분노하는 분忿, 이익과 명예를 잃을까봐 자신의 죄를 감추는 부, 십전은 정말로 끊기 어렵다. 평생을 몸에 얽매여 사람을 얽어매야만, 끼니라도 때울 수 있는 게 인간의 숙명이니까.

불교에서는 108번뇌에 특별한 의미를 둔다. 108개의 나무 알을 꿰어 108염주를 만들고, 이를 부지런히 돌리면서 번뇌를 가라앉히고 해탈을 꿈꾼다. 그래서 108배도 한다. 하지만 108개 하나하나의 번뇌를 세어 보는 일은 일견 무의미해 보인다. 번뇌를 세어 보는 일 자체가 번뇌이고, 생각한 만큼이 고통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앞서 살펴본 것처럼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감정마저 번뇌의 씨앗인 법이다. 그럼에도 살아 있다면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게 이치다. 이윤을 추구하든 위기를 모면하든, 생각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어쩌면 번뇌를 회피하기보다 기꺼이 받아들이는 게 해법이 될 수도 있다. 경기도 안성 활인선원장 대효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지닌 가장 뛰어난 장점은 바로 생각이다. 충분히 생각하고 생각하다 보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분명하게 나뉜다. 생각이 막힐 때 기어이 그 생각을 뛰어넘는 생각을 해냄으로써 더욱 위대한 사람으로 거듭난다.” 다들 생각하기가 귀찮으니까 부질없고 말초적인 욕망을 좇거나, 어설프게 생각하니까 상대를 오해하고 비난하는 것이다. 6조 혜능은 “번뇌가 곧 보리(깨달음)”라고 했다. 걸림돌과 디딤돌의 모양은 같다. 인생의 성장은 결국 생각의 성장이다.





참회 - 야운

법광(法光) [2020-03-19] : 감사합니다. _()_
오도행 [2020-03-20] : 법광 법우님 49가지 궁금한 사항 올려주심에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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