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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으로 보는 세계 불교사 3
법광(法光) 2020-04-23 23:37:21, 조회 : 1,205, 추천 : 0



3 마가다 시대
기원전 6세기 무렵은 농업과 상공업의 발달로 도시국가의 발달이 촉진되었으며, 국가 간의 전쟁도 빈번하게 일어난 시기였다. 이 시기에 끄샤뜨리야 계급과 바이샤 계급은 사회의 중심 역할을 담당하게 되면서, 브라만 계급의 사회질서에 불만을 품는다. 동시에 브라만교를 비판하는 자유사상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끄샤뜨리야와 바이샤 계급은 이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해 새로운 사회질서를 구축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당시 북인도는 16개국이 각축을 벌이던 시기였다. 부처님 시기에 존재했던 이들 도시국가들은 앙가Anga, 마가다. Magadha, 까시Kasi, 꼬살라 Kosala, 말라Malla, 쩨띠Ceti, 왓지vaiji, 왐사 Vamsa, 꾸루Kuru, 반짤라 Panicala, 맛차 Maccha, 수라세나 surasena, 앗싸까Assaka, 아완띠 Avanti, 간다라 Grandhara, 깜모자Kammoja였다. 이 가운데 부처님 당시에는 마가다와 꼬살라, 왐사와 아완띠가 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이들 4대국은 초기 불교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데, 그중에서도 마가다와 꼬살라가 주요한 무대였다. 특히 두 나라의 수도인 라자가하(왕사성)와 사왓띠 (사위성)는 초기 경전분만 아니라 후대 대승 경전에서도 자주 등장할 만큼 많은 설법이 행해 진 장소이다. 마가다국의 빔비사라 왕은 출가 전 부처님과 만난 적이 있으며, 정각을 성취한 뒤에도 어느 누구보다 먼저 부처님을 만난 왕이었다. 빔비사라는 죽림정사를 기증하는 등 부처님과 제자들이 수행과 교화에 불편함이 없도록 후원하였다. 꼬살라국에서는 아나타삔디까Anathapindka(급고독) 장자가 제따 왕자에게 기원정사Jetavana를 지어 부처님께 기증했다. 죽림정사와 기원정사는 불전에 매우 빈번히 등장하는 설법 장소이다.
한편 빔비사라 왕은 마가다국의 기틀을 다진 왕이다. 앙가국을 정복하여 동방 지역의 지배권을 강화함과 동시에, 꼬살라국 · 리챠비족과 혼인 정책을 통해 왕국을 안정시키는 데 노력했다. 그는 탁월한 외교정책을 추진하는 한편으로, 행정 · 징세 · 군사의 각 방면에 걸쳐 내정 개혁에도 착수하여 나라의 기초를 다졌다. 하지만 만년에 야심가였던 아들 아자따삿뚜에 의해서 유폐되어 살해당했다고 전한다.
아자따삿뚜Ajatasattu(B.C. 494~B.C. 462년경)는 부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 뒤에 우선 정복의 칼자루를 북방의 강적인 리챠비족과 꼬살라국으로 돌렸다. 꼬살라 국과는 브라세나짓 왕과 일진일퇴 거듭하는 전쟁을 벌였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하지만 브라세나짓의 아들 윗두다하의 시대에 결국 꿈에 그리던 꼬살라국을 병합 하기에 이른다. 또 리챠비족에 대항하기 위해 빠딸리촌(나중의 빠딸리뿟따)에 요새를 구축하고, 나아가 전장에서는 커다란 투석기와 창을 단 전차 같은 신병기를 사용 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리챠비족은 내부 교란이 벌어져 결국 마가다국에 항복하고 만다. 이로써 마가다는 북인도 일대를 통일하게 된다. 빔비사라와 아자따삿뚜는 둘 다 강력한 지지자였으며, 불교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었다. 그만큼 인도불교의 초기 교단사에서 마가다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우선 부처님이 출가하여 수행한 곳도 마가다 지역이며, 깨달음을 얻어 법을 설하기 시작한 곳도 마가다 지역이다. 즉 불교 교단의 출발점이라고 할 만하다. 게다가 제1차 결집과 제2차 결집 등 불교사의 커다란 획을 그은 대사건이 마가다 시대에 일어난다. 결국 마가다 시대 200년 동안 불교는 결집을 통해 성전의 기초를 닦고, 승단을 조직화함으로써 불교 발달의 토대를 구축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마가다국의 통치자들을 언급하는 문헌들 사이에는 다소의 불일치를 보이지만, 대체로 빔비사라 왕을 시작으로 하는 하리왕까 왕조, 수수나가 왕조, 난다 왕조까지 약 200여 년간 지속했다고 본다.

① 제1차 결집
결집은 불교의 경전을 승단의 구성원들이 서로 확인, 추인하여 후세에 전하는 수단이었다. 최초의 결집에서 오늘날 전해지는 삼장이 결집된 것은 아니지만, 부 처님의 가르침과 승단의 계율이 공식적으로 확정되어 전승의 기틀이 마련된 것은 일반적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
불교사에서 결집은 여러 차례 이루어지는데, 그중에서 불멸 후 바로 개최된 최초의 결집을 제1차 결집이라고 부른다. 결집이 이루어진 장소의 이름을 붙여 라자가하 결집이라고도 한다. 라자가하의 칠엽굴 sattapannaguha에서, 아자따삿뚜 왕의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이 결집은 까싸빠 존자를 상수로 하여 500명의 아라한이 모여 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제1차 결집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계율의 내 용이 결집되었다고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 즉 경Sutta은 아난다ananda 존자가 25년간 부처님을 시봉하면서 듣고 기억한 내용을 499명의 아라한들 앞에서 낭송하 면, 아라한들이 내용을 확인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공인하는 형식을 거쳐 이루어졌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계율은 우빨리 Upāli 존자가 각 조목들을 먼저 읊고, 다른 499명의 아라한들이 이를 확인하고 부처님께서 제정한 계율로 공인하는 절차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때 아난다 존자는 '나는 이와 같이 들었습니다 evam me suttam 如是我聞'라는 말로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우리들이 보는 모든 경전(후대에 제작된 대승 경전을 포함하여)은 이 전통에 따라 '나는 이와 같이 들었습니다.’ 로 시작한다. 제1차 결집에 대한 기록은 다양한 형태로 전해진다. 특히 장소와 참가자 수는 문헌들마다 다르게 기록되어 있어 혼란케 한다. 문헌에 따라서는 부처님의 열반지인 꾸시나라에서 결집이 행해졌다고도 하고, 라자가하라고 해도 구체적인 장소는 죽림정사나 영축산Gijihakuta 등을 언급하기도 한다. 꾸시나라를 제외하고는 모두 마가다국에 속한 장소들이다. 결집에 참가한 아라한의 수도 『대지도론』은 1000명을, 『불반니원경』은 3000명이라고 하여 문헌에 따라 각기 다르다. 이때 이미 까싸빠를 위시한 아라한들이 결집한 상좌부와 그 밖의 소외된 일반 승려들과 아라한이 모여 결집한 대중부가 행해졌음을 전하는 현장의 『대당서역기 大唐西域記』 등의 기록도 있다. 개최 장소 및 참가자 수를 달리 기록한 문헌들의 내용을 그대로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긴 하지만,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설은 라자가하의 칠엽굴에서 500명의 아라한이 중심이 되어 결집이 이루어졌다는 전승이다.

② 제2차 결집
제2차 결집은 불멸 후 100년에 이루어진다. 이 결집은 현재 네팔 지역에 해당하는 웨살리에 거주하는 왓지족 승려들이 독자적으로 정한 열 가지의 계율(十事] 에서 비롯했다. 일반적으로 이 일을 계기로 근본분열이 일어났다고 알려져 있다. 『도사島史 Dipavamsa』, 및 『대사大史 Mahavamsa』와 같은 빨리 연대기에 따르면 제2차 결집은 마가다국의 두 번째 왕조인 수수나가 왕조 두 번째 통치자인 까라소까Kalasoka 왕의 후원 아래 이루어졌다고 전한다. 왓지족 승려들이 정한 열 가지 계율의 시비를 판단하기 위해 각지에 머물고 있던 8명의 장로들을 중심으로 700명의 장로들이 결집을 하였기에 700 결집이라고도 하고, 웨살리에서 이루어졌기에 웨살리 결집이라고도 한다. 대표는 레와따Revata 장로가 맡았으며, 십사에 대한 항목의 시비는 싸르와가민 Sarvagamin 장로가 대답했다고 한다.
이 내용을 전하는 주요 문헌은 상좌부계의 율장 『칠백건도』와 법장부의 『사분율』, 화지부의 『오분율』, 대중부의 『마하승기율』, 그리고 『빨리 연대기』를 들 수 있다. 문헌이 전하는 내용은 모두 다른데, 예를 들어 『칠백건도』에서는 십사를 둘러싼 쟁론이 있었음을 언급할 뿐, 분열에 대한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 『마하승기율』은 십사가 아닌, 금과 은을 공양물로 받는 것을 들고 있다. 이 전승의 특징은 제1차 결집에서 편집된 율의 재결집이라고 하는 점에 있다. 그리고 『빨리 연대기』에서는 십사를 계기로 엄격하게 율을 지키고자 한 장로들과 왓지 비구들 사이에 근본분열이 일어났다고 전한다.
제2차 결집으로 알려진 웨살리 결집은 제1차 결집과는 성격을 달리했다. 즉 웨살리 결집의 주요 내용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경의 내용에 대한 해석 차이가 아닌, 율 조목의 차이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다.




닮아보세요 - 위금자

眞虛性宗 [2020-04-24] : 법광 거사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세계불교사 세번째 내용은 내일(토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리며, 특히 코로나 19에 각별히 유의하시어 건강하시길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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