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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으로 보는 세계 불교사 7
법광(法光) 2020-05-10 01:52:39, 조회 : 1,240, 추천 : 0



7 대승불교의 흥기

석가모니 부처님 이래 불교가 질적·양적으로 급속히 성장할 수 있었던 까닭은 마우리야 제국의 아소카 왕 덕분이다. 아소카 왕의 적극적인 불교 장려 정책은 인도뿐만 아니라 주변국으로까지 불교가 확산 · 발전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한편 마우리야 제국이 붕괴된 후 인도는 슝가 왕조(B.C. 187~8.C. 75)와 깐바 왕조(B.C. 75~8.C. 30) 시대로 접어든다. 슝가 왕조는 마우리야 왕조에서 군사령관 으로 있던 뿌쉬야미뜨라Pusyamitra가 세운 나라이다. 뿌쉬야미뜨라는 브라만 계급 출신으로 마우리야 왕조를 무력으로 무너뜨리고 왕좌에 오른 뒤 브라만교와 결탁하여 불교를 박해하는 데 앞장선 인물이었다. 숨가 왕조에 이어 등장한 깐바 왕조 역시 브라만 계급 출신이 왕이 되었고, 불교 박해가 지속되었다.

불교는 마가다 왕국부터 마우리야 제국까지 지배 계층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으나, 왕조의 교체로 말미암아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시련 속에 놓이게 되었다. 또한 유신론에 입각한 브라만교의 적극적인 포교와, 박트리아 왕조를 통해 유입된 헬레니즘 문화와의 조우는 불교의 변화를 재촉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이는 결과적으로 브라만교의 유신론적 요소들이 몇몇 부파들 속에 나타남과 동시에 부처님의 상을 제작하는 결과를 낳았다. 바로 이러 한 측면이 대승불교의 등장을 가능케 한 토양을 제공했다. 이러한 기본적 토양 위에 쿠샨 제국의 등장과 더불어 대승불교는 크게 발전하게 된다.


① 대승불교의 특징
대승불교는 흔히 마하야나Mahayana라고 한다. 큰 수레라는 뜻으로 개인적 해탈만을 추구하는 아라한 중심의 부파불교를 비판하고, 모든 중생을 해탈로 인도하는 보살사상과 보살의 이타행을 강조한다. 또한 대승불교는 다불多佛사상을 내세웠는데, 그중에서도 아촉불, 아미타불, 약사여래 등이 널리 신앙되었다.

보살사상은 '중생 구제' 로 요약되며, 이타적 자비의 화신이자 구원자로서의 특징을 갖는다. 따라서 대승에서 보살은 초인적 능력을 지닌 구원자의 모습을 띠며, 부처님과 더불어 신앙의 대상으로 자리를 잡는다.

한편 대승의 중요한 사상적 특징으로는 보시와 공덕을 들 수 있다. 이는 기존의 부파불교에서 지난한 수행을 통해 성불을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보시와 공덕을 통해서 성불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바라밀의 하나인 보시바라밀의 완성은 성불의 길이자, 적어도 천상으로 이끄는 확실한 방법으로 당시 많은 이들을 불교로 이끄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또 다른 대승불교의 특징은 교화 방식에 있다. 앞서 언급한 불보살 신앙은 물론이거니와 특이한 것은 주문, 즉 다라니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이 것은 교화에 큰 성공을 거두지만 나중에 대승불교가 쇠퇴하는 요소로도 작용한다. 이러한 특징을 갖는 대승불교가 언제, 어디에서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간다라가 대승불교의 기원지라는 점에는 크게 이론이 없다.


② 쿠샨 왕조와 대승불교
쿠샨 왕조는 인도 유럽인들의 느슨한 동맹체인 월지月支, 月氏 동맹의 다섯 귀족 종족 가운데 하나인 쿠샨족이 세운 나라이다. 월지를 이루는 다섯 종족들은 중국사에서 휴밀, 귀상, 쌍미, 힐돈, 도밀로 기록되어 있는데, 귀상이 쿠샨의 번역어이다. 쿠샨족은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북인도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새로운 제국을 건설했다.

쿠샨족은 대부분 조로아스터교를 믿었으나, 나중에는 불교를 널리 신봉했다. 많은 쿠샨인이 인도에 침입한 다른 유목민들처럼 인도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 들이기 시작했으며, 헬레니즘 왕국의 그리스 문화도 흡수했다.

쿠샨 제국이 성립한 때는 로마와 후한 사이에서 실크로드 교역이 활기차게 이루어지던 시대였다. 그들은 실크로드의 교역로를 지배함으로써 막대한 부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바로 이러한 경제력이 불교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쿠샨 제국이 최전성기를 구가한 때는 제3대 황제 카니쉬카Kani-ska(78~127년경) 때이다. 그는 쿠샨 제국을 통치하기 위해 종교에 대한 관용 정책을 폈다. 즉 그는 모든 종교를 존중하여, 통치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 영토를 확대했던 것이다. 불교는 그러한 카니쉬카 왕의 지배하에서 크게 변화한다.

카니쉬카 왕은 처음에는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불교를 이용했지만, 불교를 깊게 이해하게 되면서 스스로 귀의하여 아소카 왕에 이어 대표적인 호불왕好佛王이 되었다.

하지만 카니쉬카 왕은 대승불교를 신봉한 사람이 아니었다. 카니쉬카 왕은 설일체유부의 협 존자에게 귀의한 인물이다. 그의 치세 기간에 해당하는 기원후 100년경에 간다라 Gandhara에서 행해진 제4차 결집3 또한 설일체유부의 결집이었으며, 결집을 주도한 와수미뜨라 Vasumitra와 아슈와고샤asvaghosa 와도 친밀 한 관계였다. 페샤와르 근처에 카니쉬카 대탑을 세웠다고도 전해지는데, 근처에 세워진 카니쉬카사Kaniska vihara가 설일체유부 소속이었으며, 불사리를 봉안한 탑을 설일체유부에 기증한 사실들이 비문을 통해 확인되었다. 따라서 카니쉬카는 설일체유부의 가르침을 신봉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는 별도로 간다라 지방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서 발견된 간다라 사본은 간다라 지방이 대승불교의 기원지였음을 증명한다. 미국 워싱턴대학의 리차드 솔로몬 교수는 간다라 지방에서 출토된 고문헌을 해독한 결과 기존에 간다라가 대승불교의 기원지일 가능성이 높다는 설이 확실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들 간다라 사본은 50~150년 사이에 필사된 것으로 여기에 ‘육바라밀’ 이나 ‘보시’, ‘공덕’ 등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대승불교의 핵심 사상을 특징짓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대승불교는 쿠샨족이 지배하는 간다라에서 탄생했음이 거의 확실하다.

간다라 지방에서 대승 경전이 활발하게 제작된 또 다른 이유는 국제 무역을 담당하던 대상大商 때문이었다. 이들은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가기 전, 간다라 지 방에 머물렀는데 그들을 위해 불교 승단은 새로운 경전을 서사하여 그들의 안녕을 기원해 주었다. 상인들은 이 경전을 갖고 인도 밖의 다른 나라에 전하는 역할도 담당했다. 대승불교 사상은 이렇게 인도를 넘어 주변국으로 확산되어 갔다.


③ 대승의 주요 학파와 논사
대승의 사상은 초기에는 독립된 세력을 갖고 전개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대승적 사상을 갖고 있었던 스님들이 자신의 확고한 신념과 신앙적 체험의 거대한 구상을 경전의 형식을 빌려 표현했을 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승에도 학파가 형성되었다. 대표적으로 중관학파와 유식학파가 있다.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유가행중관학파나 밀교가 등장한다.

중관학파는 나가르주나 Nagarjuna (150~250)를 개조로 성립한 학파이다. 그는 반야사상의 공과 연기緣起사상을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체계화했고, 그 사상을 공관 혹은 중관 등으로 불렀다. 이러한 이유로 나가르주나를 중관학파의 시조라고 한다. 중관학파의 가장 기본적인 논서는 나가르주나의 대표적 저술인 중론이다. 나가르주나의 제자로는 아리아데와aryadeva(제바, 170~270년경)가 있다. 그는 『백론』과 『사백론』을 저술하였다. 그 뒤 중관학파의 맥은 자립논증파의 개조인 붓다빨리따Buddhapalita(물호, 470~540년경), 귀류논증파의 개조인 바와위웨까 Bhavaviveka(청변, 490~570), 짠드라끼르띠 Candrakirti(월칭, 650년경) 등이 계보를 이었다.

유식학파는 4세기 후반에 활동한 아상가Asanga(무착, 310~390)가 교학을 체계화하고, 그의 동생인 와수반두Vasubandhu(세친, 320~400)가 대성한 학파이다. 『섭대승론』, 『유식이십송』, 『유식삼십송』 등이 이들의 저술이다. 와수반두의 제자로는 디그나가Dignaga(진나) 등이 있다. 그 뒤에 유식학파의 맥은 다르마빨라 Dharmapala(호법, 530~561)와 스티라마띠 Sthiramati(안혜, 510~570) 등으로 이어진다.

그 외에 샨따락쉬따Santaraksita(적호, 725~784년경)는 중관학파에 속하지만 유식 이론을 수용하여 유가행중관학파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리고 인도불교 논리 학을 집대성한 다르마끼르띠 Dharmakirti(법칭, 600~660년경)도 빼놓을 수 없다.

한편 유식학파의 심리분석에 영향을 받아 형성된 여래장사상도 대승의 중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이다. 비록 중관이나 유식과 같이 학파가 형성되지는 않았지만 동북아시아 불교에 크게 영향을 끼친 사상이다.





당신이 오시는 날에 - 김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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