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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7 00:44:52, 조회 : 1,222,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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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인도불교의 부활
불교는 인도의 브라만교와 기타 종교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인도 문화가 아시아 전역으로 전파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종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12 세기를 끝으로 인도에서 자취를 감추었는데, 그 이유로는 힌두화의 급속한 진행으로 인한 반힌두적 영향력의 상실과 이슬람의 잔혹한 승려 및 사원 파괴 등이 거론될 수 있다.
인도에서 사라진 불교가 다시금 부흥하게 된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외국인들에 의해서이다. 18세기 영국 제국의 관리와 학자들에 의한 불교 관련 문화재 및 문헌의 발견은 서양에서 불교학이 발전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연구 결과물들의 출판은 인도불교 부활의 초석이 되었으며, 스리랑카에서 파견된 전도승들의 역할도 커다란 힘이 되었다.
인도불교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2001년도 인도 정부의 총인구조사 보고서를 보면, 불교는 비록 전체 종교인 수의 0.7퍼센트밖에 되지 않지만 8백만 명을 헤아리는 신도를 지닌 종교로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이미 자이나교도(0.4퍼센트, 4백만여 명)의 숫자를 넘어선 수치다. 이렇게 성장하기까지는 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다르마발라 스님과 암베드까르 박사를 빼놓을 수 없다.
① 다르마빨라 스님과 마하보디협회
불교가 다시 인도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게 된 것은 앞서 언급한 서양의 학문적 성과도 있지만, 특히 신지학회 Theosophical Society를 설립한 블라바츠키 여사와 올코트 대령의 도움이 컸다. 신지학회는 불교와 같은 고대 인도 종교의 부활이나 힌두교, 조로아스터교 등의 강화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 중 하나가 바로 인도불교의 부활을 위해 나타난 다르마빨라 Anagarika Dharmapala 스님이었다. 스님은 인도에 불교를 새롭게 전하기 위한 스리랑카 전도승 가운데 한 명이었지만, 신지학회의 적극적 도움을 받아 그 누구보다 활발하게 인도불교 부활에 힘쓴 인물이었다.
스님은 마하보디협회mahabodhi Society 를 설립하여 조직적으로 인도불교의 부흥운동에 앞장섰는데, 특히 중요한 불교 유적지를 중심으로 불교 사원을 건립 하고, 정간지를 발행해 포교에 일생을 바친 인물이었다. 마하보디협회를 처음 설립한 곳은 1891년 스리랑카에서 였지만, 이듬해 캘커타로 협회를 옮겨 본격적인 인도불교 부활을 위한 활동에 들어간다. 1893년 7월에는 테라바다불교도를 대표해서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종교회의'에 참석하여 강연을 했는데, 스와미 비베까난다 swami Vivekanandia의 강연에 비견할 만한 명강연으로 회자되었다. 귀국 길에 호놀룰루의 부유한 부인인 에리자베스 포스터 Mary E. Foster를 알게 되었는데, 이후 그녀는 다르마발라 스님의 가장 든든한 재정적 후원자가 되었다.
1899년에는 4개월간 북인도의 25개 도시를 순회하면서 법회를 열었고, 1900년에는 마드라스에 마하보디협회 지부를 설립하고 남인도에서 불교 부활의 초석을 다졌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영국 정부는 실론 정부에 요청하여 다르마발라를 5년간 감금하기도 했는데, 이 기간 동안 그는 마하보디협회의 정간물을 통해 불교 전도 활동에 매진했다.
이후 1920년에는 벵골 지방에 자리한 캘커타에 인도 정부가 기증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다르마지까Dharmarajika 사원을 개원했고, 1931년에는 물라간다꾸띠 Mulagandha Kuti 사원을 지어 존 마샬 john Marshall 경140이 탁실라에서 발견한 부처님의 사리를 안치했다.
또한 그는 펀자브와 카슈미르 지역에 포교 여행을 떠나기도 했으며, 런던에 마하보디협회 지부를 설립하기도 했다. 1933년 병이 들어 입적하였는데, 그의 마지막 희망은 인도에 태어나서 불교를 다시 살리는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었다고 전한다.
② 인도불교의 아버지 암베드까르
다르마빨라 스님의 뜻을 이은 스리랑카 스님들의 전법 활동은 스님의 열반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하지만 실제 인도 사회에서 불교도의 증가는 거의 미미했다. 이러한 답보 상태를 획기적으로 전환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인도 초대 법무장관을 역임하고 인도 헌법의 아버지라 추앙받는 암베드까르Bhimrao Ramji Ambedkar(1891~1956) 박사였다.
암베드까르는 1891년 중인도 인도르 Indore 부근의 작은 마을 모우Mhow에서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인도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1913년에는 바로다 왕국의 통치자인 마하라자의 장학금을 받아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 입학하여 경제학과 화폐정책을 공부했다. 1961년에는 컬럼비아대학의 셀리그만Edwin Seligman의 추천으로 영국의 런던경제대학 London School of Econimics에 입학하고 동시에 변호사 자격시험도 준비한다. 1921년에 석사학위를, 1922년에는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1923년에는 루피화 문제를 테마로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학위를 취득한 후 인도에 귀국한 그는 간디를 도와 인도 독립에 헌신한다. 하지만 불가촉천민에 대한 견해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간디와 결별하고 만다. 이후 그는 불가촉천민을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그의 활동 신조는 교육하라, 조직하라, 선동하라!' 였다. 때문에 그는 불가촉천민이 스스로 자각하도록 교육하고 그들을 조직으로 묶는 데 주력하였다. 동시에 공식적으로 1927년에 “나는 힌두로 태어났지만 힌두로 죽지 않을 것이다."라는 유명한 연설을 하면서 탈힌두를 선언한다.
그가 처음부터 힌두교를 버리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가 처음 사회 개혁운동을 시작할 때에는 힌두교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함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이후 그는 변호사를 개업하고 20여 년간 정치활동과 헌법 제정 등에 전념한다. 물론 불가촉천민의 삶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사회활동 또한 활발하게 전개한다. 그러던 중 1950년경부터 본격적으로 불교활동을 개시한다. 그는 1953년에 '인도불교협회'를 창설하여 대중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데 노력했으며, 협회는 지역의 신자들이 사원을 건립하고 공부 모임을 만드는 활동을 지원했다. 그리고 그는 1956년에 이르러 불교로 개종하는 의식을 치렀다. 서인도 마하르쉬뜨라Maharashtra 주의 나그뿌르 Nagpur 시에서 암베드까르뿐만 아니라 그를 따르는 불가촉천민 60만여 명이 집단으로 개종하게 된다.
암베드까르는 왜 불교로 개종했을까? 우선 그는 힌두교의 신분제와 낡은 권위에 대항하는 이념이 필요했다. 그는 개종을 염두에 두고 각 종교들을 면밀히 고찰했다. 불교뿐 아니라 이슬람교, 기독교, 시크교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이슬람교와 기독교는 세계종교이자, 구성원 간의 평등과 형제애를 가르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고, 시크교 역시 카스트제도를 부정하고 사회 개혁적 사상을 담고 있는 종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인도 내에서 기독교는 교회의 좌석이 카스트별로 구분되어 있고, 이슬람교와 시크교도 개종 전의 카스트에 따라서 교단 내에서의 신분이 좌우되고 있는 현실이었다. 이에 비해 불교는 인도에서 거의 소멸했기에 기존의 사회악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이는 과거의 카스트제도나 온갖 불평등과 절연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적합한 조건이었다. 더군다나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했고, 고대 인도의 황금기에 널리 퍼져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종교였다. 이러한 점들이 그가 불교를 선택한 이유였다.
하지만 암베드까르 박사 사후에는 인도불교 부활의 움직임도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실질적으로 불교도들이 된 사람들은 힌두의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불교로의 개종이 주춤하던 시기를 지나, 2000년도를 들어서면서 대규모 집단 개종이 심심치 않게 보고되었다. 예를 들어 2002년에 델리에서 100만 명이 집단 개종 의식을 가졌으며, 2006년도에는 타이완 포광산사의 포교 사업으로 20만 명이 개종하기도 했다.
오늘날 암베드까르 박사를 이어 불가촉천민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앞장서며 불교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우디뜨 라즈udit Raj 라는 인물이다. 그는 1958년 웃따르 쁘라데쉬Uttar Pradesh에서 불가촉천민에 속하는 카스트로 태어났지만, 대학 졸업 후 1988년 인도국세청에서 근무를 시작한 엘리트였다. 하지만 2001년 불교로 전향하고 2003년에는 직장을 사직한 후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그는 불가촉천민을 뜻하는 달리뜨Dalit의 권익 보호를 위해 활동하면서, 달리뜨불교도운동Dalit Buddhist movement을 선도하고 있다.
또한 암베드까르 박사의 정신을 계승하여 신불교운동이나 불가촉천민 해방운동을 지원하는 국제 NGO단체인 'TBMSG' 의 활발한 활동도 주목받고 있다.
그 밖에도 인도 다람살라에 티베트 망명정부가 들어선 것도 인도불교의 재도약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인도 정부는 레-라닥Leh-Ladalkh 에 있는 불교학중앙연구원The Central Institute of Buddhist Studies을 설립하여 불교학 관련 연구를 진행함으로써 인도불교 부흥에 기여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요인들을 배경으로 2001년 현재 불교는 자이나교보다 많은 약 8백만의 신도를 갖고 있다. 물론 13억 인도 인구를 생각하면 미미하기 그지없는 상황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대 불교가 반힌두의 대표 세력을 형성함으로써 인도 사회의 정신문명을 주도했듯이, 현재의 불교 역시 힌두교에 대항하여 여러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제도를 개혁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종교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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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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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광 거사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세계불교사 아홉번째 내용은 내일(월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리며 오늘도 부처님 법 안에서 평안하시길 기원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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