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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7 23:13:34, 조회 : 1,121,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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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이야기로써 대변하고 있는데
부처가 아니라면 누구인가?
淸談對面 非佛而誰
청담대면 비불이수
-대주 혜해
이 말은 비록 간단하지만 불교의 근본 종지를 다 드러내어 보인 말이다. 근본 종지란 무엇인가? 사람이 부처님이라는 것이다.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하는 사람들의 이 모습이 그대로 완전한 부처님이라는 뜻이다. 대주 스님의 이 한마디 말씀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다. ‘그대와 내가 이렇게 만나 청담(淸談)을 나누고 있는 이 사실이 그대로 부처가 아니고 어디에 따로 부처가 있는가?’ ‘우리가 부처가 아니라면 누가 또 부처인가?’라는 뜻이다.
앞에서 “신령스런 환약 한 덩어리가 쇠에 닿으면 모두 금이 되고, 지극한 이치의 말 한마디가 범부를 전환하여 성인을 만든다.”는 말을 언급하였는데, 대주 스님의 이 한마디말씀은 그야말로 모든 쇳덩어리를 황금으로 변화시키는 신령스런 환약이다. 또한 모든 범부들을 전부 성인으로 만드는 지극한 한마디 말씀이다.
대주 혜해 스님은 건주(建州)사람인데 처음에는 월주 대운사의 도지(道智)화상을 의지하여 수업하였다. 그 후 마조 스님에게 가서 깨달음을 이루고 숨어 살았으나 사람들이 찾아왔다. 스님이 소문을 듣고 모여드는 수행자들에게 이르기를 “나는 선(禪)을 알지도 못하고 아울러 한 법도 사람들에게 보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오래 머물려고 하지 말고 다만 스스로 쉬어가라.”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때 학도들이 점점 더 많이 모여들어 밤낮없이 물어 오므로 부득이 물음에 따라 답을 하였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맑은 이야기로써 대면하고 있는데 우리가 부처가 아니라면 누가 또 부처인가[淸談對面 非佛而誰]?”
이 말씀에 대중들이 모두 망연하였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어떤 스님이 또 물었다.
“스님은 무슨 법으로써 사람들을 제도합니까?”
“빈도(貧道)는 일찍이 한 법도 사람을 제도한 적이 없습니다.”
“선사의 가풍이 이와 같습니까?”
대주 스님이 도리어 물었다.
“대덕은 무슨 법을 설해서 사람들을 제도합니까?”
“금강반야경을 강의합니다.”
“몇 번이나 강의 하였습니까?”
“스무 번쯤 했습니다.”
“이 경은 누가 설했습니까?”
그 스님이 화를 내고 소리를 질러 말하기를,
“선사는 사람을 희롱하는가? 어찌 부처님이 설하신 것을 모르는가?”
“경에 말씀하시기를, ‘만약에 여래가 설한바 법이 있다고 하면 곧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고, 만약 이 경을 부처님이 설하지 않았다고 하면 이것은 곧 경전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하였으니 대덕은 한번 이야기해 보십시오.”
그 스님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대주 스님이 잠깐 있다가 또 물었다.
“경에 말씀하시기를, ‘만약 색(色)으로써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하면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라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한다’라고 하였으니 대덕은 말씀하십시오. 누가 여래입니까?”
불교는 어떤 경전을 보더라도 ‘모두가 궁극에는 부처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봉착한다. 경전이란 이야기의 순서를 밟아 가면서 장황하게 늘어 놓아서 그렇지 내용은 실은 간단하다. 대주 스님을 찾아와서 질문을 한 사람도 ‘무엇이 부처인가?’하는 문제며, 『금강경』을 강의하는 사람과의 대화도 결국은 부처를 밝히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맑은 이야기로써 대면하고 있는데 부처가 아니라면 누구인가?”라는 이 한마디는 불교의 처음이자 끝이다. 불교의 천 가지 만 가지의 질문에 이것이 답이다. 모든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 종지(宗旨)를 높이 세워 더 이상 흔들림이 없어야 사도를 행하지 않는다.
초파일 아리랑 /박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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