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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으로 보는 세계 불교사 15
법광(法光) 2020-06-19 05:35:52, 조회 : 1,159, 추천 : 0



② 아유타야와 톤부리 시대
수코타이 왕국과 크메르 왕국 사이에 위치한 우텅 왕국이 1350년 독립하면서 아유타야 왕국을 세운다. 1767년 미얀마의 침공으로 멸망하기 전까지 아유타야 왕 국은 400여 년 동안 동남아시아의 중심 국가로 번성했다. 아유타야 왕조의 국왕들은 불교를 신앙하고 보호하면서 발전시켰기 때문에 이 왕조를 태국불교의 최대 전성기로 꼽는다. 아유타야 왕국은 크메르를 복속시키면서 크메르의 영향으로 대승불교와 힌두교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지만 대부분의 왕들은 테라바다불교를 신앙하면서 이를 진흥시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361년 라마티보디 Ramathibodi(1350~1369) 왕은 테라바다불교를 국교로 선포하고, 프라보롬라차띠랏 2세Phraboromrachatirat II (1424~1448)는 스님들을 스리랑카로 유학을 보내 구족계를 받아 오게 하였다. 이때 구족계를 받고 귀국한 이들이 빠깨우 Pakaeo라는 새로운 종파를 만들고 철저히 계율을 지켰다고 알려져 있다. 왕은 부처님의 일대기를 저술하기도 하고 왕족, 귀족들과 함께 출가하여 승려생활을 하기도 했다. 당시 국왕들은 국왕이 불교의 중심이며 왕궁은 그 교육의 중심이 되도록 노력했는데, 쏭탐Songtharm(1610~1628) 왕도 궁중에서의 불교 학습에 박차를 가했다. 나라이 Narai(1656~1688) 왕 때는 태국에서 처음으로 승려의 자격시험을 치렀다. 여기서 불합격한 이들에게선 승적을 박탈했고, 경율론 삼장을 모두 통과한 이들에게는 최고의 등급을 부여하는 등 승려 자격을 3등급으로 구분했다. 이 시험제는 19세기 초 라마 2세 때 좀 더 세분화하여 발달했다.

18세기 중반 버롬마꼿Borommakot(1733~1758) 왕은 네덜란드의 침략으로 쇠락한 스리랑카 승단의 재건을 돕기 위해서 우빨리 장로를 상수로 하는 16명의 승려를 캔디에 파견했다. 이들은 그곳에서 700명의 비구와 3,000명의 사미에게 수계를 내려 스리랑카 불교를 부흥시키면서 스리랑카 최대 종파인 시암파의 발생에 기여한다.

1767년 아유타야 왕조가 미얀마에 의해 멸망하고 6개월 후 탁신Taksin(1767~1782) 장군이 독립운동을 전개하여 아유타야를 탈환하며 톤부리 왕조를 열었다. 탁신은 국왕의 정통성을 얻기 위해 불교를 후원하면서 교학 연구를 장려했다. 재위 말기에는 불교적 명상을 통한 신비주의적 체험을 추구하고 자신이 예류과sotapanna를 경험한 불교 군주라며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인다. 이는 정의로운 왕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해야 정통성이 보장된다는 태국의 정치 이념을 저버리는 것 이었기 때문에 탁신 왕은 국민과 승가의 지탄을 받아 1782년 처형되었다.





천년불(千年佛) - 양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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