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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으로 보는 세계 불교사 21
법광(法光) 2020-07-07 23:45:04, 조회 : 1,079, 추천 : 0



④ 식민통치와 근대 불교 부흥운동
미얀마는 영국과 세 차례의 전쟁을 치른 후 1885년 인도의 한 주로 편입되며 공식적인 식민지가 되었다. 영국은 기독교 선교를 위해 미얀마의 민족종교인 불교를 탄압하며 승가 내의 학교를 폐지하고 공립학교와 미션스쿨을 창설했지만 미얀마인들은 전통과 불교를 지키려는 노력들을 지속했다.

19세기 말부터 여러 협회가 생기면서 활발한 활동이 전개되었다. 1906년에는 우 옷따마 Ottama 스님의 지도 아래 양곤의 대학생이 주축이 되어 YMCA에 대항하기 위한 불교청년회 YMBA (Young Men's Buddhist Association)가 결성되었다. 이 불교청년회는 순수한 불교운동보다는 민족운동과 반영反英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해 나갔다. 옷따마 스님의 부흥운동은 반식민주의의 이데올로기를 형상화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불교이며, 종교가 민족적 의식과 동질감을 제공해 줄 수 있는 하나의 상징으로서 기능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 협회 회원 이었던 우 위자라 Wisara 스님은 반정부 설법으로 수차례 투옥되었다가 단식투쟁 중에 옥사하였다. 이후 1930년에는 사야 산saya San 스님이 주도한 농민들의 총궐기가 전국에 파급되어 1932년 진압되기까지 1만 명이 죽고 8천 명이 체포되었으며, 사야 산 스님은 북부에서 체포되어 1937년 처형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에 점령된 미얀마는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식민지를 다시 경험한다. 이때 인도로 건너간 우 짠드라마니 Chandramani 장로는 이후 40여 년간 인도의 불교 성지에 머무르면서 유적 보호와 복원 사업을 지원한다. 그의 활동은 인도 신불교 운동을 이끈 암베드까르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면서 그가 불교로 개종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⑤ 현대의 불교
독립 후 미얀마의 초대 수상이 된 우 누U Nu는 불교 승단과 진흥을 위한 개혁을 시행한다. 불교를 통해 민족을 대동단결시킬 수 있다고 판단하여, 헌법에 “국가는 연방 공민의 최대 다수가 받드는 신앙으로서 불교의 특수적 지위를 인정한다.”고 규정했다. 1950년에 종교성과 불교대학을 설립하고 교사 양성 등을 지원했으며, 1951년에는 불교평의회 Buddha sasana council 를 결성하여 전도 센터, 연구 시설의 설립, 불전의 연찬 장려 등을 규정하고 불교를 국가 통치의 영향 아래 두고자 했다. 이듬해인 1952년에는 국제 포교사 양성기관인 국립승가대학교The State Pariyatti Sasana University 를 설립한다.

같은 해에 불멸 2,500년 기념 및 진흥 사업의 하나로 제6차 결집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빨리 삼장의 필사筆寫 과정에서 생긴 오류를 수정·보완하고 세계에 테라바다불교를 알리기 위한 결집으로, 1954년 5월 17일에 개최되어 1956년까지 거행되었다. 이 결집에서 기존의 미얀마판 빨리어 성전을 저본으로 하여 초고를 만들고 이를 스리랑카판, 태국판, 캄보디아판 등과 대조하면서 수정하고 보완한 후 그 텍스트를 가지고 초청된 인사들과 2년에 걸쳐 합송하였다. 이것을 총 40권으로 정리해서 미얀마 문자로 출판했는데, 이때 주석, 복주, 학생용 교재 등 빨리어 서적 123권도 함께 출간되었다.

제6차 결집이 완료된 후 이전부터 논의되어 왔던 불교의 국교화國敎化 운동이 본격화되어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힌두교, 가톨릭, 이슬람 등 타종교 신앙의 자유 문제를 위한 개정안을 둘러싼 정치권의 분규와 이로 인한 군사 쿠데타가 발발하여 1962년 네 윈Ne Win 장군을 주축으로 한 혁명평의회가 집권하게 된다. 네 윈의 군사정부는 1962년 '미얀마식 사회주의'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정교분리 정책을 시행하면서도 빨리어 국가시험 실시, 불탑 보수 등의 불교 진흥을 위한 사업은 지속했다. 네 윈이 표방한 '미얀마식 사회주의'는 불교와 마르크시즘의 기본 요소를 결합한 것으로, 불교와 사회주의가 서로에게 상호 보완적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는 실질적인 지도자 역할은 사회주의 군대가 주도하며 승려들은 실제로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논란의 소지가 있다.

1980년에는 5월 24일부터 27일까지 미얀마불교 각 종파의 지도자들이 모인 승가회의가 개최되어 종교와 정치, 종교와 사회 문제를 해 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그 결과 미얀마의 아홉 종파를 총괄하는 조직 설치, 종교 분쟁의 해결, 출가자의 등록제와 신분 규정의 확립이라는 세 가지 사항을 입법화하였다. 하지만 이로 인해 국가가 불교와 승단을 통제하면서 네 윈 정부 26년의 집권기 동안 발생한 민주화 투쟁에서 승려 11명이 희생되고 1천여 명이 투옥되었다. 이후 쿠데타와 민주화 투쟁으로 얼룩진 미얀마 현대사에서 군사정부는 쉐다 곤 파고다 복구와 같은 대형 불사佛事와 전시 행정으로 대외적으로는 친불교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지만, 실제로는 승려와 사원을 사찰査察 하고 억압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승려 단체가 민주화 투쟁을 선도하고 있으며, 군부는 2007년 9월 사원에 침입하여 승려와 민간인을 살상하는 등 참혹한 탄압을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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