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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으로 보는 세계 불교사 24
법광(法光) 2020-07-14 21:53:53, 조회 : 1,004, 추천 : 0



③ 근현대 시기의 불교
18~19세기에 앙코르 왕조는 친태국파와 친베트남파로 대립했고 씨엠 립siem Reap 지역을 포함한 북서쪽을 태국이 차지하면서 분쟁이 거듭되었다. 캄보디아에 대한 태국의 영향력이 더욱 거세지고 베트남이 병합을 시도하는 틈을 타서 프랑스는 보호의 명목으로 1884년에 캄보디아를 식민지로 삼았다.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중엽까지 태국을 제외한 인도차이나반도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된 상황에서 프랑스 는 불교를 탄압하여 캄보디아의 사원은 황폐해졌지만 앙코르 유적만은 귀중한 문화재로서 보호되었다. 1898년 프랑스는 하노이에 프랑스국립극동학원EFEO을 세워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유적들을 조직적으로 탐사하고 연구하면서 세계적인 문 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또한 프랑스는 1930년에 프놈펜불교연구소를 세우면서 캄보디아에 태국불교가 미치는 영향을 줄이고, 크메르 문명을 중심으로 불교 연구를 수행하면서 캄보디아 연구의 주도권을 잡고자 했다.

1941년 즉위한 시하누크N. Sihanouk 왕은 일본의 후원 아래 1945년 캄보디아의 독립을 선언했으나 실패하고, 1954년 완전한 독립을 이룬 후 친서구적 활동을 전개한다. 그는 대사파에서 3개월간 승려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불심이 깊은 인물로 자신의 정치 노선인 중립주의가 불교의 중도中道사상에 근거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 시하누크의 성향이 반미용공反美容共으로 기울면서 비판을 받는다.

1975년 인도차이나반도에 공산화 물결이 일면서 캄보디아의 폴포트Pol Pot(혹은 Saloth Sar, 1928~1998) 공산정권은 이상적인 공산 사회를 이룩한다는 명목하에 극단의 공포정치로 살육을 자행했고, 불교 사원과 가톨릭교회를 파괴했다. 이어 헹 삼린Heng Samrin 정권이 들어서면서 몇몇 불교 사원이 복구되기는 했지만, 1956년 이후 테라바다불교가 헌법으로 국교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교에 대한 캄보디아 정부의 태도는 여전히 우호적이지 않다.

현재 캄보디아 승가는 대사파Maha-nikaya, 그리고 1864년 태국에서 전래된 정법파Dhammayuttika-nikāya로 양분되어 있다. 1970년 통계에 따르면, 승려 수가 대사파는 5만 3,200명, 정법파는 1,300명으로 총 5만 4,500명이었다. 사찰 수는 대사파가 2,980개, 정법파가 110개로 총 3,090개다. 승단은 상가나요크sanghanayok 僧正라 불리는 두 명의 최고 지도자가 통솔하는데, 서로 독립되어 각자의 교단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 승려의 교육을 담당하는 초등 · 중등 과정이 있으며, 대학 과정으로는 프놈펜에 있는 왕립 시하누크 불교대학Preah Sihanouk Raja Buddhist University이 있다.





나를 깨워주신 부처님 - 황은희

眞虛性宗 [2020-07-15] : 법광 거사님, 올려주신 세계 불교사 24번째 내용은 내일(목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리며 오늘도 부처님 법 안에서 평안하시고 참 좋은 날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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