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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9 20:28:41, 조회 : 1,131,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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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삼국시대
장기간에 걸친 외척과 환관의 투쟁 등으로 모든 분야에서의 발생한 모순은 184년에 황건의 난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후한 왕조의 통치 능력의 결여가 명백해지자 조정의 관료들도 등을 돌리게 되었다.
황제를 폐하고 독살하는 정치적 혼란 속에서 호족豪族들은 자위를 위해 농민들을 조직했다. 220년 후한은 위(220~265) · 촉 (221~263) · 오(222~280)로 분열되었다.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재위 190~219)는 제위를 조조(155~ 220)의 아들 조비, 즉 문제 (재위 220~226)에게 넘겼다. 이로써 고조 유방이 왕조를 건국한 이래 400년간 지속되어 온 한 왕조는 운명을 고했다.
불교가 사람들 사이에 퍼진 것은 후한 말부터 삼국시대로, 위·촉·오 삼국이 정립한 시기에는 서역 출신의 많은 승려가 중국에 들어와 역경·포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시대에는 후한 시대를 뛰어넘어 많은 불전의 번역이 이뤄졌다.
① 위나라
후한의 붕괴로 사상적인 면에서 한나라 때의 경학 經學이 한계를 노출하자, 노장사상은 새로운 전개를 보였다. 아울러 인도로부터 내륙과 해로를 거쳐 중국에 들어온 불교가 역경승의 활동과 사탑의 건립을 통해 중국 사회에서 정착해 갔다. 그리고 노장사상을 매 개로 중국사상과 융합해 불전을 해석하는 이른바 격의불교格義佛敎가 성장하면서, 중국 문화의 구성 요소로 점차 변질되어 갔다. 이렇게 유·불· 도가 정립되어 서로 교섭하는 사상 세계가 형성되었다.
위나라는 귀족층이 정계를 지배한 시대였다. 하지만 황제의 전제적 권력 아래서는 귀족층이라고 하더라도 결코 지위가 안정적이지 못했다. 삼국시대는 권력투쟁도 격렬했고 자주 정변이 일어나 비명에 죽은 귀족들도 출현하였다. 이에 귀족들의 사상에 현실 도피의 경향이 농후하게 배어났다. 현실 생활에서의 심각한 불안으로 인해 도교가 광범위하게 수용되었고, 아울러 불교가 사인士人 의 관심에 깊게 영향을 끼쳤다. 불교의 『반야경』과 『유마경』의 공空사상은 노자나 장자의 무無사상과 유사한 것이라 인식되어 받아들여졌다.
이 시대에도 서역과의 교통은 빈번하였고 언기(현재의 카라샤르 동투르키스탄에 존재한 오아시스 국가) · 우전(현재의 신강 위구르자치구 호탄 지역) · 선선(현재의 위구르자치구 투르판 지구) · 쿠차(현재의 위구르자치구 아커스 지구) 등의 나라가 사신을 파견해 조공하였다. 위 나라와 쿠샨 왕조의 교류로 서역 인도승은 쉽게 중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고, 중천축의 담가가라, 강거국의 강승개 등이 낙양으로 들어왔다. 강승개는 『무량수경』을 번역했는데, 이는 후세 정토교학의 중심을 이루는 경전이 되었다.
위나라에서도 불전 번역은 성행하여 많은 역경승이 활약하였다. 인도 승려로 249년 에서 254년 사이에 낙양으로 들어온 담가가라는 『승기계심』을 번역하여, 중국에 처음으로 불교 계율을 전했다. 이전까지는 출가자가 있다고 해도 계율을 알지 못해 정식 절차를 밟았던 것은 아니었다. 수계에 의해 정식으로 승려가 되는 기초를 담가가라가 마련한 것이다.
조조의 아들 조식(192~232)은 『변도론』을 저술한 불교 신봉자로 일찍이 산동성 어산을 유람할 때 공중에 울리는 범음 梵音(산스끄리뜨 음악)을 듣고 여기에 소리를 맞추어 처음으로 범패를 지었다고 한다. 중국불교사에서 범패는 조식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최초의 구법 여행자)
후한 이래 역경사업은 모두 인도 및 서역에서 은 외국인 및 그 자손이 주도했다. 삼국시대가 되면 마침내 중국에서 서방으로 구법 여행을 떠나는 자가 나타났다. 바로 반야경, 연구에 생애를 바친 주사행(203~282)이다. 그는 『담무덕갈마』를 번역한 안식국 담제의 수계 작법을 따라 처음으로 출가했다. 낙양에서 반야사상을 설하는 『도행반야경』을 배웠으나 불완전하다고 느끼고, 보다 완전한 경전을 구하려고 260년에 서역 우전으로 갔다. 그곳에서 『방광반야경放光般若經』 원본을 손에 넣어 282년에 제자 불여단을 시켜 중국으로 가지고 가도록 했다. 주사행은 우전에서 죽었고, 제자가 가지고 온 『방광반야경』은 서진시대에 중국에 들어온 우전의 사문 무라차와 축숙란이 번역했다. 이후 서방으로 구법 여행을 떠난 승려로 법현과 현장(602~664) 등 셀 수 없는 고승들이 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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