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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5 23:53:17, 조회 : 995,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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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수나라
서위 건국에 수훈을 세운 부친이 죽자 수국공의 작위를 계승한 양견, 즉 수나라 문제(581~604)는 북주 무제의 신임을 얻어 착실히 관계官界에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마침내 581년에 북주의 어린 황제 정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황위에 올라 국호를 수隋라고 하였다.
수나라부터 당나라 전기에 걸쳐 율령제에 의한 교학의 정비, 『오경정의 五經定義』 흠정을 통해 경학을 고정화한 결과, 사상의 자유로운 활동은 세속 간을 탈출하는 종교, 특히 불교계에서 화려하게 전개되었다.
폐불을 일으켰던 북주와 달리 불교 · 도교를 부흥한 문제는 처음에는 불교와 도교를 평등하게 대하려고 했으나 점차 불교에 의한 국가 운영을 지향하게 되었다. 예로부터 성스러운 산으로 인식된 오악(즉 중악 숭산 · 동악 태산 · 서악 화산 · 남악 형산 · 북악 항산)을 위시해 수나라와 관련이 깊은 호북성의 양양 · 수군 · 강릉, 산서성의 태원에 관사官寺를 조영하고, 45개 주에 흥국사를 건립하여 불교로 나라를 다스리는 정책을 시행했다. 아울러 민간인의 출가와 사경寫經을 허락하여 민간에 사경이 널리 보급 되었다.
또한 582년에 장안성에 국립 사찰로 대흥선사를 건립했다. 다음 해에는 매년 삼장재월, 즉 정월 · 5월 · 9월의 8일에서 15일 사이에 전국 관사에서 재회齋會를 열어 살생을 금지하고 죄수의 방면과 사형수에 대한 감형조치를 취하였다. 황제는 계율을 받고 스스로 '보살계제자菩薩戒弟子'라고 칭했다. 고승 담연 · 담천 · 법순 · 두순을 궁중에 불러들여 가르침을 받았으며, 매월 정기법회 를 개최하여 『일체경一切經』을 독송케 하였다.
문제의 부흥 정책이 착착 진행되어 불교는 급속히 발전하여 승니 23만 명에게 도첩을 주었고, 사찰은 3,792곳이나 되었다.
더욱이 601년부터는 3회에 걸쳐 인도 마우리야 왕조 제3대 아소카 왕이 석가의 사리를 팔방으로 나누어 8만 4천 개의 사리탑을 건립했다는 고사를 따라 전국에 인수사리탑을 건립했다. 그 결과 불사리 신앙이 유행하게 되었다.
문제는 불교를 국가의 지도 원리로 삼았지만 결코 왕법과 불법을 혼동하지 않았다. 그 뒤를 이은 양제(재위 604~617)는 폭군으로 악명이 높지만 진왕 시절 양주에 재임했을 때는 천태대사 지의와 교류하여 보살계를 받았다. 그는 전국의 사찰을 도량이라 개칭하고는 불교 · 도교계로부터 고덕한 자를 양주로 불러들여 네 도량에 거주케 했다. 불교 도량은 혜일과 법운이었다. 혜일 도량에 삼론종의 대성자인 길장(549~623)을 맞아들였다. 이처럼 수나라는 전국 통일에 의한 국력의 급속한 증강을 기초로 사찰 건립, 탑과 불상 조영이나 사경寫經 공양이 공전의 성황을 이루었다.
님을 따라 날고 싶어라 - 하윤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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