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 오대산 불교
산서성 동북부에 자리한 오대산은 옛적부터 영적인 장소였다. 주봉은 다섯으로 그중 북쪽에 3천 미터 급의 봉우리 네 개가 이어져 있다. 조금 떨어진 남쪽 봉우리 계곡에는 당나라 때 100곳이 넘는 사찰이 조영되어 있었다.
오대산에 불교가 언제 들어왔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북위 효문제가 시작이라고 한다. 북위 후반에는 지혜를 담당하는 문수보살의 성지라는 인식이 정착되어 갔다. 『화엄경』에 의하면, 동북방의 청량산에 문수가 거처한다는데 오대산을 이 청량산에 비유했던 것이다.
오대산 문수신앙은 수나라 · 당나라 시대의 불교 융성과 보조를 맞추면서 확대되었다. 특히 현종 연간에 이르러 불교계의 실력자로 군림한 밀교의 불공(혹은 不空三藏)이 이곳에 금각사를 건립하여 문수신앙과 밀교를 결합시킨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 금각사 건립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불공은 오대산 불교를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는 데 이용했다, 한편 문수신앙은 각지의 주요 사찰에 조영된 문수각을 통해 전국에 보급되었다.
⑦ 사문불배왕자
남북조 시대 이래로 사문은 왕자에게 배례해야 한다는 논쟁이 당나라에 들어서도 문제가 되었다. 631 년에 조칙을 내려 승려는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고 했지만, 2년 뒤에는 이를 부정했다. 다음 고종 때에도 승도가 군주와 부모에게 배례해야 한다는 문제로 다시 조야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측천무후 시기의 과도한 불교 신봉은 폐해를 숙정하려는 현종의 억불정책으로 이어졌다. 현종은 정치적 지배자에게 예를 표하지 않는다는 승려의 사문불배왕자라는 전통 입장을 부정하여 부모에게 배례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733년 조서에서 승니에 대해 신자 臣子의 예를 표할 것을 명했다. 761년에 가서야 이 조치는 폐해졌다. 그러나 그 중간에도 현종이 몸소 『어주금강경御注金剛經』을 지어 천하에 반포 하는 등 불교의 권위는 지켜졌다.
819년 한유(768~824)는 법문사의 불사리 신앙으로 인해 백성들이 재물을 탕진하고 광분하는 모습을 보고 『논불골표論佛骨表』를 지어, 불교의 무용을 논했다. 그는 『원도原道」에서 도교와 불교를 통렬히 비판하고는 승니와 도사를 환속시키고 전적을 소각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한유는 도리어 헌종(재위 805~820)의 격노를 사서 광동성 조주로 유배당했다.
부처님 법 안에서-정행스님
眞虛性宗
[2020-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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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광 거사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세계불교사는 내일(토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