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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보적경 제41권-12. 보살장회 ⑦/5) 사무량품(四無量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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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1 06:27:48, 조회 : 1,000,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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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자야, 다만 세속의 언설로써 임시로 보리라고 이름지었을 뿐 보리의 실다운 성품[實性]은 말할 수 없으며, 몸으로 얻을 수 없으며, 마음으로 얻을 수 없으며, 법으로 얻을 수 없으며, 법 아닌 것으로 얻을 수 없으며, 진실로써 얻을 수 없으며, 진실 아닌 것으로 얻을 수도 없으며,
진리[諦]로써 얻을 수 없으며, 거짓[妄]으로써 얻을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보리의 자성은 말을 여의었기 때문이며, 또한 일체 법의 형상을 여읜 까닭이니라. 또 보리의 형상은 말로 통달할 수 없나니 마치 허공이 형상 없는 것이므로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사리자야, 여실히 모든 법이 다 말이 없다고 관찰해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모든 법 가운데에는 말이 없으며 말 가운데 또한 모든 법이 없기 때문이니, 중생들이 이러한 모든 법의 이치[理趣]를 깨닫지 못하므로 여래는 그들에게 대비심을 일으켜 '내가 이제는 결정코 모든 법의 이치를 열어 보여 그들에게 이러한 진실한 뜻을 깨닫게 하리라'라고 한 것이니라.
다시 사리자야, 보리는 취할 것도 없고 가릴 것도 없느니라. 어떤 것을 취할 것도 없고 가릴 것도 없다고 하는가? 사리자야, 눈의 자성을 훤히 알므로 취할 것이 없고 빛깔의 경계를 보지 않으므로 가릴 것이 없다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여래가 이 보리의 취할 것도 없고 가릴 것도 없는 것을 증득하였으므로 눈에 취하지 아니하고 빛깔에 가리우지 아니하며 식(識)에 머물지 않느니라.
나아가 뜻에 취하지 아니하고 법에 가리우지 아니하며 식에 머물지 않느니라. 비록 식에 머물지 아니하나 능히 일체 중생의 마음의 머무는 것을 훤히 아느니라. 어떻게 훤히 아는가? 중생의 마음은 네 가지의 법에 머무나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일체 중생의 마음이 의식[識]에 머물고 마음이 느낌[受]에 머물며, 마음이 생각[想]에 머물고 마음이 지어감[行]에 머무르느니라.
여래는 이와 같이 여실히 머무름과 머물지 않음을 훤히 알거늘 중생들은 능히 머무름 없는 진실의 바닥을 깨닫지 못하므로 여래가 그들에게 대비심을 일으켜 '내가 이제 결정코 열어 보여 그들에게 머무름 없는 진실한 궁극의 법[實際法]을 깨닫게 하리라'라고 한 것이니라.
다시 사리자야, 보리라는 것은 공(空)의 다른 이름이니라. 공조차 빈 것이기 때문에[空空] 보리도 또한 비었으며, 보리가 비었으므로 모든 법도 또한 비었느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그 공성(空性)과 같이 모든 법을 깨닫나니 공으로 말미암아 법의 공성을 깨달은 것이 아니다. 하나의 묘한 이치를 사무친 지혜로 말미암아 법의 성품이 공함을 깨달은 것이니 공과 보리가 성품이 둘이 없으며 둘이 없으므로 '이것은 보리다, 이것은 공성이다'라고 말할 수 없나니
만일 둘이 있다면 '이것은 보리다, 이것은 공성이다'라고 말하겠지만, 법이 둘이 없으며 두 가지 모양이 없이 이름도 없고 형상도 없고 지어감[行]도 없으며 마침내 지어감도 아니며 또한 현재에 지어감[現行]도 아니니라. 공이란 것은 집착을 멀리 여의었고 승의제(勝義諦) 가운데는 아무 법도 얻을 것이 없나니 자성이 비었으므로 공이라고 이름함이니, 마치 텅 비인 공간[太虛]을 허공이라고 말하지만 텅 비인 공간의 자성은 말할 수 없느니라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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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아/구인사의 범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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