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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비스님의 증도가 강의-043
普德華 2020-11-02 08:47:22, 조회 : 996, 추천 : 0
종우봉도상탄탄  
縱遇鋒刀常坦坦이요
비록 창과 칼을 만난다 하더라도 항상 태연하며

인생살이란 게 얼마나 기구하고 험난합니까? 수없이 난관에 봉착하는 것이 삶입니다. 그럴 때, 피할 수도 없고 돌아갈 수도 없는 좁은 길에서 강도를 만난 것처럼 다들 어찌할 바를 몰라 두려워하고 번민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합니다. 이것이 삶의 고통입니다.

불교 공부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 한계상황 속에서 겪는 삶의 고통들을 이겨낼 힘을 얻는 것입니다. 교리를 배우건, 기도를 하건, 절을 하건, 사경을 하건, 염불을 하건, 독경을 하건, 참선을 하건, 나름대로 열심히 배우고 실천하다 보면 많건 적건 간에 저절로 힘이 생깁니다. 두려움과 번민이 조금씩 잦아들면서 감내하고 수용하는 힘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힘을 법력(法力), 즉 불교 공부를 통해서 얻는 힘이라 합니다.

지금 영가 스님의 법력은 우리 보통 사람들과는 비교도 힘들 만큼 대단합니다. 영가 스님은 좁은 길에서 칼과 창을 들이대는 강도와 맞닥뜨린 것처럼 곤란한 상황에서도 탄탄대로 걷는 것처럼 몸과 마음이 항상 편안하다고 했습니다. 한계상황 중에서도 죽음에 봉착했을 때 겪는 공포와 고통이 가장 심합니다. 작은 이익과 명예 앞에서도 잃어버리면 어쩌나 조마조마한 게 사람인데, 죽음 앞에서마저 그 마음이 평온하다는 건 보통 사람에겐 실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도 영가 스님만큼은 아니라도 나름대로 열심히 수행해 법력을 얻어야 합니다. 그 법력으로 영가 스님만큼은 아니라도 일상생활 속에서 나름대로 평안함을 맛보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을 만나건 저런 사람을 만나건, 이런 일을 겪건 저런 일을 겪건, 감내하고 수용하면서 평온한 기쁨이 조금씩 샘솟아야 합니다. 우리 불교인들이 다들 겸손해서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수양도 되지 않았다”고 말들 하지만, 불교를 열심히 공부하신 분들이라면 이미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법의 향기가 스미고 법의 힘이 생겼으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가요독약야한한
假饒毒藥也閑閑이라
가령 독약을 먹더라도 또한 동요 없이 편안하도다

영가 스님이 공연히 큰소리치자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게 아닙니다. 옛 조사들의 행적을 살펴 보면 실제로 그랬던 분들이 많습니다. 달마 스님도 여섯 번이나 독약을 마셨다는 이야기가 있고, 또 승조법사(僧肇法師)도 그랬습니다.

승조법사는 구마라집(鳩摩羅什)의 제자인데, 그분이 워낙 출중하다 보니 요진(姚秦)의 임금이 그를 환속시켜 재상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차례 명을 내렸지만 승조법사가 모두 거부합니다. 옛날엔 좋은 뜻에서건 나쁜 뜻에서건 왕명을 어긴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렇게 승조법사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게송이 한 수 있습니다.

사대원무주 오온본래공
四大元無主 五蘊本來空

장두임백인 유여참춘풍
狀頭臨白刃 猶如斬春風

사대는 원래 주인이 없고
오온도 본래 공한 것
머리를 칼날 앞에 들이대니
봄바람 베는 것과 같구나.

우리가 ‘나’, ‘내 생명’, ‘내 육신’이라 부르고 있는 것을 분석해 보면 지(地) · 수(水) · 화(火) · 풍(風)의 사대(四大)와 색(色) · 수(受) · 상(想) · 행(行) · 식(識)의 오온일 뿐입니다. 세밀히 관찰해 보면 사실 그 가운데 ‘나’라고 할 만한 것은 없고, 그것은 무상하고 텅 비어 공한 것입니다. 우리가 늘 염송하는 『반야심경』에서 하시는 말씀과 동일합니다.

그런 말이야 승조법사뿐 아니라 우리도 알고 있겠지만 그 이해의 깊이가 다른 것입니다. 승조법사 같은 분들은 그런 도리를 백 퍼센트 체득해 이미 자기 살림살이가 되신 분들이죠. 그래서 죽음 앞에서마저 아무런 동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나, 내 몸, 내 생명이라는 잘못된 견해와 집착이 완전히 떨어졌기 때문에 칼로 봄바람을 베는 것처럼 여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실제 생활 속 갖가지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자신이 그런 상황을 얼마나 잘 수용하고 소화해 내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좋은 시절에는 누구나 성인이고 군자입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 마음이 태연자약하고 동요가 없어야 그런 사람이 진짜 불교를 공부한 사람입니다. 혹 ‘여전히 비난에 발끈하고 죽음이 두려우니, 나는 불교를 배운 보람이 없구나’ 하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도 영가 스님처럼 비방과 비난을 감로수로 여기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선지식으로 여기고, 설령 죽음에 봉착한다 해도 아무런 동요가 없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당장에 그렇지 못하다 해서 실망할 것은 아닙니다. 사실 영가 스님처럼 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너무 높은 목표와 현재의 자신을 비교하다 보면 물러서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보다는 어제의 자신과 비교해 보는 것이 훨씬 바람직한 것입니다. 성인의 가르침을 자주 접하고 사유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저절로 그 가르침이 젖어들어 자신의 살림살이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노력하기 전인 어제의 자신과 노력하고 난 후 오늘의 자신을 비교해 보면 아주 미세하다 할지라도 분명 나아진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 주목하면 불교 공부를 한 효과와 보람을 스스로 발견하게 되고, 더욱 열심히 정진하려는 마음도 새롭게 솟아날 것입니다. 또한 어제보다 한 치도 나아진 바가 없다 하더라도 물러서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꾸준히 노력하는 길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신청곡 : 홀로 피는 연꽃(김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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