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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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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8 08:50:45, 조회 : 1,049,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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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강
쟁사무위실상문
爭似無爲實相門 에
어찌 아무런 작위가 없는 실상의 도리에서
일초직입여래지
一超直入如來地리요
한 번 뛰어 여래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만 하겠는가
단득본막수말
但得本莫愁末하라
다만 근본을 얻고 지말적인 것을 근심하지 말라
여정유리함보월
如淨流璃含寶月이로다
마치 깨끗한 유리구슬 안에 보배의 달을 머금고 있는 것과 같도다
아금해차여의주
我今解此如意珠하니
내가 지금 이 여의주를 풀어놓았으니
자리이타종불갈
自利利他終不竭이라
자신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함에 마침내 다함이 없도다
강월조송풍취
江月照松風吹 한데
강에 달은 비치고 소나무에 바람은 부는데
영야청소하소위
永夜淸霄何所爲하
긴 밤 맑은 하늘에 무엇을 할 바인가
쟁사무위실상문
爭似無爲實相門에
어찌 아무런 작위가 없는 실상의 도리에서
만들어진 것, 조작(造作)된 것은 끝없이 변화하고 언젠가는 파괴됩니다. 그것을 유위법(有爲法)이라 합니다. 끝없이 변화하고 언젠가는 파괴되는 것에는 고정된 성품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시간의 흐름에도 변하지 않는 '무엇'이 있다고 여기고, 그 무엇이 '어떻다'고 여기면 그것을 허상(虛相)이라 합니다. 실제로 고정된 성품을 가진 무엇은 없습니다. 이것이 실상(實相)입니다. '무엇'이 없는데 생성이 어디에 있고, 소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만들어지는 것도, 변화하는 것도 없습니다. 항상 고요합니다. 이것을 일컬어 조작이 없는 법, 항상 적멸한 열반이라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유위의 복락은 생멸 변화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추구하는 한 기쁨과 슬픔의 굴레에서 끝내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실상을 깨달으면 망상 따라 일어났던 번뇌들은 저절로 소멸합니다. 번뇌사 소멸함으로 인해 찾아드는 그 고요함과 평온함은 생멸 변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유위의 복락이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생멸이 본래 없는 무위의 복락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리요
한번 뛰어 여래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만 하겠는가.
'여래의 경지로 들어간다'고 표현했다 해서 어떤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아득한 경지를 상상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승불교권에서는 부처님을 만행과 만덕을 구족하신 위대하고 거룩하신 분, 온갖 지혜와 신통력을 빠짐없이 갖추신 완벽하고 절대적 존재로 인격화시켜 신앙의 대상으로삼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하나의 훌륭한 방편입니다. 하지만 사실 '여래(如來)'란 진리 그 자체이고, 진리 그 자체란 현재의 우리와 격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대로의 실상을 의미합니다.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번뇌망상의 실상이 곧 진리이고, 그 진리를 깨달으면 여래인 것입니다.
그러니 여래를 현재의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로 가정하거나 지금 눈앞에는 없는 특정한 모습으로 상상할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것 의 실상, 실다운 모습이 바로 여래입니다. '여래의 경지로 들어간다'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 세계와는 다른 어떤 세계로 가는 것처럼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번뇌망상에 사로잡힌 지금 이 상태에서 그 번뇌 망상의 실상을 깨달아 진리의 세계, 본래 마음자리로 들어가면 그것이 곧 여래의 경지입니다.
이렇게 여래의 경지에서, 실상을 깨달은 상태에서 사무량심을 행하고 육바라밀을 행하는 자가 진짜 보살입니다. 이런 보살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육바라밀과 사무량심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그냥 그들의 삶입니다. 진실한 이치를 깨달았다고, 도를 통했다고, 견성했다고 해서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삶은 지속되기 마련입니다. 진실에 계합한 사람들이 삶을 지속하는 방법이 바로 육바라밀이고 사무량심인 것입니다. 진실을 알면 저절로 그런 행위들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신청곡 : 산사 아리랑(심진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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