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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비스님의 증도가 강의-057
普德華 2020-11-23 11:02:16, 조회 : 1,062, 추천 : 0
항용발해호석(降龍鉢解虎錫)
용을 항복받은 발우와 호랑이의 싸움을 말린 석장으로

스님들이 사용하는 밥그릇을 발우(鉢盂)라 합니다. 발우도 부처님 당시에는 하나만 사용했습니다. 지금도 남방불교에서는 탁발을 나가는데, 그분들이 사용하는 발우를 보면 상당히 큽니다. 그 큰 발우 하나에 밥도 담고 반찬도 담습니다. 하지만 우리 북방불교에서는 생활 습관에 맞춰 물 담는 그릇, 반찬 담는 그릇, 국 담는 그릇, 밥 담는 그릇 총 네게의 그릇을 사용합니다.

'항용발(降龍鉢)'이란 그냥 발우가 아니라 용을 항복받은 발우라는 것입니다. 스님들이 사용하는 발우는 단순한 식기가 아니라 불법을 상징하는 하나의 방편이란 것입니다. 여기에 얽힌 고사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섭(迦葉) 삼 형제를 제도할 때 이야기입니다.

가섭 삼 형제는 화룡외도 (火龍外道), 즉 불을 섬기는 외도였습니다. 부처님께서 그들 중 첫째 우루빌라 가섭을 찾아가 하룻밤 묵어갈 것을 청하자, 가섭이 "이곳에는 빈방이 없고, 화룡의 석굴(石窟)만 있는데 그곳에서라도 자겠냐?" 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그 동굴에서 주무시게 되었는데, 한밤중에 비늘에서 불길이 이글거리고 코에서 연기를 내뿜는 화룡(火龍)이 나타나 부처님에게 불을 뿜으면서 해치려 하였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화광삼매에 들어가셨답니다. 그랬더니 삼매의 불길에 도리어 용이 타죽을 지경이 되었답니다. 그래서 용이 겨우 부처님의 발우 속으로 기어들어가 불길을 피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용을 항복받은 발우'라고 한 것입니다.

또 발우를 응량기(應量器)라 합니다. 크기가 넉넉하다 보니 많이 잡수시는 분은 많이 담을 수 있고, 적게 잡수시는 분은 적게 담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응량기 즉 양에 알맞은 그릇, 자기 영만큼 적당하게 덜어 먹을 수 있는 그릇이라 합니다. 스님들의 발우공양이 뷔페의 원조라 할 수 있습니다.

'해호석(解虎錫)'은 호랑이의 싸움을 말린 석장이란 뜻입니다. '석(錫)'은 옛날에 스님들이 짚고 다니던 석장, 지팡이, 즉 주장자를 말 합니다.

이 주장자 역시도 단순한 지팡이가 아니라 불법을 상징하는 하나의 도구라는 것입니다. 옛날에 중국 회주(懷州)의 왕옥산(王屋山)에서 선정을 닦던 승조(僧稠) 스님이란 분이 계셨습니다. 그 스님이 어느 날 호랑이 두마리가 서로 뒤엉켜 물어뜯고 싸우는 것을 보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승조스님이 주장자를 들고 가 호랑이를 뜯어말리자 두 호랑이가 물러나 각자 제 길로 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처럼 스님들이 항상 지니는 발우와 주장자는 불법을 상징한 방편이고 법력(法力)을 드러내는 도구이지, 무슨 모양새를 내기 위해서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양고금환명역력
兩고金환鳴歷歷은
두 고리에 달린 여섯 고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것은

스님들이 사용하는 지팡이를 육환장(六環杖)이라 합니다. 요즘은 사용하는 분이 거의 없습니다. 그 주장자가 어떻게 생겼는가? 중앙이 부도(浮屠)처럼 올라와 있고, 그 양쪽에 ‘고(詁)’즉 금강저(金剛杵) 모양의 걸이가 있습니다. 그 걸이에 세 개씩, 총 여섯 개의 쇠고리가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걸음을 옮기면서 지팡이를 짚을 때마다 그 쇠고리가 서로 부딪쳐 짜랑짜랑 소리가 울립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두 개의 금강저는 진제(眞諦)와 속제(俗諦), 즉 출세간(出世間)의 이치와 세간(世間)의 이치를 의미합니다. 불교란 무엇인가? 양쪽의 걸이를 한 몸에 지닌 주장자처럼 진제와 속제를 아우르는 중도(中道)입니다. 주장자를 짚고 다니면서 이런 불교의 가르침, 즉 중도의 삶을 한 순간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양쪽에 세 개씩, 총 여섯 개의 고리는 육바라밀을 상징합니다. 육바라밀은 우리 불교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실천해야 할 덕목입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육바라밀을 실천하는 것이 아닙니다. 육바라밀 자체가 청정한 삶이고, 진리에 순응하는 삶이고, 행복한 삶입니다. 그러니 불교인들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삶이 이 육환장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입니다.


불시표형허사지
不是標形虛事持라.
모양을 나타내자고 헛되이 가진 것이 아니라

모양새를 나타내자고 헛되이 가진 것이 아니라 했습니다. “스님입네”하며 표 내기 위해서 공연히 발우를 들고 다니고 육환장을 짚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 하자면 폼 잡으려고 괜히 들고 다니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한 걸음 한 걸음에 진제와 속제를 아우르는 중도의 삶을 실천하고, 일거수일투족에 육바라밀을 실천하는 진리의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 참된 삶을 스스로 항상 되새기고, 또 타인에게 널리 권하기 위해서 그 표상으로 발우와 육환장을 지닌다는 것입니다.


여래보장친종적
如來寶仗親蹤跡이로다.
여래의 보배 주장자를 친히 본받음이로다.

여래의 보배 주장자를 친히 본받기 위함이란 것입니다. 육환장, 주장자는 부처님께서 몸소 본보기를 보이신 보배로운 물건입니다. 부처님을 본받아 육환장을 사용한다는 것은 부처님의 삶을 본받아 중도와 육바라밀을 실천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영가 스님께서 중도와 육바라밀을 실천하는 불교적 사람을 주장자 하나로 멋들어지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이야 먼 길을 걸어 다닐 일이 없다 보니 육환장을 사용할 일도 따라서 없어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런 깊은 의미를 되새긴다면, 다시 복원해 방이나 마루에 항상 걸어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청곡 : 내 안의 소리(정행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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