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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으로 보는 세계 불교사 65
법광(法光) 2020-12-03 19:48:53, 조회 : 1,015, 추천 : 0



② 황제들의 숭불
명 태조는 견식이 뛰어난 법수선사를 위해 1387년에 공부우시랑 황립공에게 명해 반야사를 건립했다. 영락제(재위 1403~1424)는 티베트의 승려 반적달을 위해 정각사를 건립 했다. 그는 북경 천도를 단행하고 대흥륭사(후에는 대응선사)를 건립하여 승록사 아문을 설치했다. 또 한 원나라 지배하에 있던 티베트를 통치하기 위해서 널리 승려와 주민을 초유하려는 목적으로 티베트 승려를 우대했다.

선덕제(재위 1426~1435)는 천천연공 선사에게 불교 교단을 총괄하는 승록사를 담당하게 했다. 선사는 1434년에 좌각의가 되어 황제의 칙령에 따라 대공덕사를 건립하고 주지를 맡았다.

명나라 중기 이후 환관들의 정치적 위세가 대단해지는 상황에서 사찰의 건립과 중수 그리고 사액을 빈번하게 남발하는 현상이 대두되었다. 1436년에 이현은 “태학은 폐해지는데 반해, 새로이 건립되는 것은 불사다."라고 할 정도로 사찰의 건립 · 중수는 증가하였다.

경태제(재위 1450~1457) 시기에는 불교가 성행하여 경사에 만연하고 군 · 현에 횡행하여 향촌에 널리 퍼졌다. 도첩승의 증가도 날로 심해졌다. 경태제가 대융복사를 건립하고 행차하자 태학생들은 “황제가 즉위 초에는 태학에 행차하더니 후에는 유술을 버리고 불교를 숭상했다."고 비판했다.

천순제(재위 1457~1464)를 이은 성화제(재위 1465~1487)는 호불의 군주였다. 성화제는 예부에 명을 내려 경성 내외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내외관원은 사관과 묘우를 중수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금지시켰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조치에 지나지 않았다. 성화제는 모친인 효숙주태후의 탄신일에 승려와 도사로 하여금 재를 지내게 하자, 예부상서 요기(1414~1473)가 군신을 이끌고 참배할 정도였다고 한다.

명나라 중흥의 군주라 칭해지는 홍치제(재위 1488~1505)는 불교를 통제하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 불교는 중궁과 환관이 신봉하여 홍치제도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가정제(재위 1522~1566)는 도교를 신봉하여, 불교의 수계 의식과 계를 설하는 단장을 금지했다. 그러나 만력제(1573~1620) 시기가 되면 황후들이 불교를 더욱 신봉하여 사찰을 조영하거나 중수하는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 특히 만력제의 생모인 효정이태후, 즉 자성황태후는 구련보살이라고 칭할 정도로 불교를 신앙했다. 공부랑중을 역임한 사조제(1567~1624)는 “위로는 왕공 · 귀인으로부터 아래로 부인 여자에 이르기까지 항상 선을 담론하고, 부처를 예배하여 대단히 기뻐했다."라고 하여, 명말 상류층의 인사들이 불교에 심취해 있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명나라 말기에는 4대 선사인 운서주굉(1535~1615) · 자백진가(1543 ~ 1604) · 감산덕청(1546~1623) · 우익지욱(1599~1655)이 등장했다. 이들은 각 종파를 융합하는 불교만이 아니라 유 · 불 · 도 삼교일치를 강설했다. 운서주굉은 종래의 불교의례를 집대성한 『수륙의궤』를 저술했다. 자백진가는 감산덕청과 함께 만력 연간에 가흥 『대장경』을 조인했다. 우익지욱은 주로 천태교학을 퍼뜨리는 데 공헌했다.


③ 승록사의 편성
태조는 1368년에 불교를 통할하는 선세원을 설치했는데, 그 관위는 종2품에 해당했다. 1381 년에는 남경에 새로이 선세원의 기능을 대신할 승록사를, 부 · 주 · 현에는 승강 · 승정 · 승회사를 설치하여 천하의 사찰과 승려를 관할하게 했다.

승록사는 중앙은 정6품의 좌선세 · 우선세 각 1명, 종6품의 좌천교 · 우천교 각 1명, 정8품의 좌강경 · 우강경 각 1명, 종8품의 좌각의 · 우각의 각 1명으로 편성했다. 지방은 각 부에 종9품의 도강과 부도강 각 1명, 각 주에 승정사 승정 1명, 각 현에 승회사 승회 1명을 두었다. 영락 연간에는 변경의 주 · 현에도 승강사와 승회사를 설치하여 지방의 인심 수습에도 커다란 역할을 수행했다.

승록사는 예부의 통할 아래 놓여 있었다. 남경에 천계사를 건립하여 이곳에 관아를 설치했으나, 1388년에는 승록사를 천희사로 옮겨 도첩 발급 등을 담당하게 했다. 그러나 영락제가 북경 천도를 단행하자 북경에 대흥륭사를 건립하여 승록사 아문을 이곳에 두었다.

승관은 경전에 정통하며 계율을 지키고 불도를 수행하는 승려 중에서 단아하고 청렴한 자를 임명했다. 승관의 임무는 천하 승려들의 계율과 청규를 지키도록 단속하는 일이었다.

승관 외에 각 사찰의 주지는 계행에 뛰어나야 임명될 수 있었다. 혹 주지에 결원이 생기면 소재지의 아문이 계행이 깊고 경전에 정통한 자를 보증하여 천거했다. 그러면 관할하는 아문이 승록사에 보고하여 시험에 통과한 승려를 예부에 보고하고, 최종적으로 예부가 황제에 상주하여 임명했다.





연꽃에 물들다 - 박희진

법광(法光) [2020-12-04] : 거룩한 삼보에 귀의합니다. 스님 보내주신 달력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眞虛性宗 [2020-12-04] : 법광 거사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세계불교사는 내일(토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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