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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비스님의 증도가 강의-063
普德華 2020-12-07 10:10:38, 조회 : 997, 추천 : 0
제 16 강

棄有着空病亦然(기유착공변역연)이니
있음을 버리고 없는데 집착하면 그 병도 또한 같으니

還如避溺而投火(환여피익이투화)라
물에 빠지는 것을 피해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도다.

捨杗心取眞理(사망심취진리)여
망심을 버리고 진리를 취하는 것이여

取捨之心成巧僞(취사지심성교위)로다
취하고 버리는 마음이 교묘한 거짓을 이루는구나.

學人不了用修行(학인불료용수행)하니
공부하는 사람이 그러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수행을 하니

眞成認賊將爲子(진성인적장위자)로다
참으로 도적을 오인해서 아들을 삼음이로다.

損法財滅功德(손법재멸공덕)은
법의 재산을 손상시키고 공덕을 소멸하게 하는 것은

莫不由斯心意識(막불유사심의식)이니
이런 심.의.식을 말미함지 아니함이 없으니


기유착공병역연
棄有着空病亦然이니
있음을 버리고 없는데 집착하면 그 병도 또한 같으니

부처님의 가르침은 열반의 세계로 가는 길입니다. 그 길을 걸으면 저절로 번민과 고통이 사라지고 평온한 기쁨이 솟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어떤 길을 걷는데, 번민과 고통이 여전하거나 더욱 심해진다면 그것은 부처님께서 일러 주신 바른 길, 즉 정도(正道)가 아닙니다. 공(空)이란 ‘있다’고 집착하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부처님께서 쓰신 약입니다. 그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고, ‘없다’고 집착하면 앓던 병이 낫기는커녕 없던 병까지 하나 더 생긴 꼴입니다. 그건 고통을 소멸하라고 일러 주신 부처님의 바른 길이 아닙니다.

또 마치 소금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아 갔는데, 그 집 음식이 기가 막힌 겁니다. 잘 살펴보니 자기는 먹어 본 적이 없는 소금이란 것을 넣더랍니다. 그래서 소금을 잔뜩 얻어서 집으로 돌아와 소금을 한 숟가락 퍼먹었답니다. 조금만 넣어도 맛있으니 많이 먹어 더 맛있었을까요? 그렇게 먹다간 맛은커녕 독이 됩니다. ‘공’은 쾌락주의자, 탐욕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약입니다. 하지만 공에 집착하면 허무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환 여 피 익 이 투 화
還 如 避 溺 而 投 火 라
물에 빠지는 것을 피해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도다
  
이 얼마나 어이없는 짓입니까? 그래서 실상을 깨달은 분들은 ‘있다’는 주장도 부정하고, ‘없다’는 주장도 부정하고,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주장도 부정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는 주장도 부정합니다. 이런 사유 방식에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 이야기가 알쏭달쏭하게 들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공연히 궤변을 늘어놓는 것이 아닙니다. 실상, 사실 그대로에 바탕을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경전이나 조사 스님 어록에서 끊임없이 중도(中道)를 말씀하신 까닭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연기한 모든 법은 ‘있다’고 단정할 수도 없고, ‘없다’고도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실상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입니다. 살면서 누적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관점을 세우고는 그 견해를 고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고의 틀에 갇혀 자신만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세상만사를 제단하려 드는 것이 바로 중생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견해의 정당성을 한 치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예를 들자면 물은 몇 도에 끓습니까? 100도에 끓는다고들 합니다. 만약 누군가 “그렇지 않다”고 하면 “상식도 없다”며 무시합니다. 하지만 물이 정말 100도에 끓습니까? 저 고산지대에서도, 저 우주정거장에서도, 저 심해 잠수함에서도 100도에 끓을까요? 아니지요. 100도에 끓는 것은 보편적 현상이 아니라 지표면이라는 가정 하에 일어나는 특수한 현상입니다.

이런 사실을 망각하고 언제 어디서나 100도에 끓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고집한다면 그것을 편견이라 하고 그릇된 집착이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험은 매우 한정적입니다. 그런 불완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립한 견해를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적용될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독단이고 오만입니다. 독단과 오만은 필연적으로 스스로에게 좌절을 가져다주고, 타인에겐 폭력이 됩니다.

물에 빠져서도 안 되고, 불에 타서도 안 됩니다. 인생은 소중한 것입니다. 이런 소중한 시간을 스스로 고통스럽고 남을 고통스럽게 하면서 보내서야 되겠습니까? 모쪼록 치우친 견해와 집착에서 벗어나 실상을 바로 보고, 중도의 원리에 따라 여래의 삶을 살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신청곡 : 고행의 열매(도신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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