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 『가흥대장경』 편찬
일찍이 명나라는 한경창을 설치하여 많은 백성을 교화시키고자 홍무제 영락제로부터 어제서문을 지어 불경을 소중히 다루었다. 궁궐이나 제왕의 분봉지, 학문하는 사대부에 이르기까지, 가까이는 촌리村里로부터 멀리는 변방 지역까지 불력에 의지했다.
명나라에 들어서도 대장경 조인 사업은 4회에 걸쳐 시행되었다. 1회는 1372년에 남경 장산사에서 조판이 개시되어 1398년에 완성된 『남장』과, 2회로 1419년에 북경에서 기획되어 1440년에 완성된 『북장』이 있다. 이들 모두 관아에서 조판한 대장경으로 『북장』은 한경창에 보관하여 황제의 허락이 없으면 인쇄할 수가 없었다. 또한 『남장』은 장판의 오류도 많고 훼손도 심했을 뿐만 아니라 인쇄비용이 많이 들어 불경의 배포가 원활하지 않았다.
3회는 가정(1522~1566) 연간에 조판된 『무림장』으로 소실되어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이는 민간에서 처음 조판한 대장경으로 일반에게 보급이 편리하도록 방책형으로 만들어진 데 특징이 있다.
4회는 4대 고승의 한 명인 자백진가와 그의 제자 밀장도개 등이 주관하고 강남의 많은 거사들이 참여해 만든 『가흥대장경』이다. 『가흥대장경』은 『능엄장』 · 『가흥장』 · 『경산장』 등으로 불린다. 판각 기간이 1589년부터 1707년까지 약 118년의 긴 기간에 걸쳐 조판된 대장경으로 명 · 청 시대 불교 사료의 보고라 일컬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