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head9.jpg
Home 방송안내 신행생활 음악수필 불교강좌
 
  운영자인사
  운영자소개
  방송시간표
  생방송듣기
  방송대화방
  윈앰프설치
  사이버연등
  후원금보시

무창포불교대학


  방송게시판

 한 권으로 보는 세계 불교사 68
법광(法光) 2020-12-10 07:21:31, 조회 : 1,030, 추천 : 0



15 청나라의 불교
① 이민족 황제의 불교관
건주여진 출신의 누르하치(태조, 재위 1616~1626)는 만주 전역을 거의 정복한 후인 1616년 정월에 칸위位에 올라 국호를 후금이라 칭했다. 그는 1626년에 명나라 군사를 공격하다 산해관 앞에 자리한 영원성에서 패전을 맛보고 같은 해 8월에 죽는다. 뒤를 이은 홍타이지, 즉 태종 (재위 1626~1643)은 국호를 대청국으로 개칭했다. 태종도 산해관을 돌파하지 못하고 죽자, 그의 뒤를 이은 6세의 어린 황제 순치제(재위 1644~1661)는 숙부인 섭정왕 도르곤(1612~1650)의 도움을 받아 북경에 들어와 자금성의 주인이 되었다.

여진족은 산해관을 넘어 명나라의 수도인 북경에 들어오는 소위 입관入關 전부터 이미 티베트불교와 접촉하고 있었다. 태조 누르하치는 라마교를 우대했고, 태종 홍타이지도 라마교를 신봉하는 몽골인을 통제하기 위해 달뢰가 파견한 사신을 우대했다. 더 나아가 라마교를 국교로 삼아 한민족 이외의 변경 민족을 회유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순치제는 북경에 입성해 실질적으로 한족을 통치하면서부터 회유와 공포라고 하는 상반된 두 정책을 교묘히 구사했다. 순치제는 라마 관계의 사찰을 조영하고 수리하기도 했다. 자도사는 쌍황사와 함께 라마가 거주하는 곳으로, 이 사찰 북쪽에 후흑사가 있는데 1645년에 찰한라마가 성경盛京으로부터 오자 자금을 모집하여 사찰을 창건했다. 순치제는 선학에 대한 지식이 상당히 깊었고 명각선사에게서 법을 구하고 청나라 일대의 고승이라고 칭송받은 옥림통수(1614∼1675) 및 그 제자 계림행삼(1614~1677)을 궁정에 불러들여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이민족 왕조였던 청조는 유교의 권위를 빌려 사회의 풍교風敎를 바로잡고 한민족의 민심을 지배자의 뜻대로 제어하려고 했다. 서민 교화를 위해 유교 도덕의 보급을 꾀한 것이었다.

청나라는 유교 국가 체제를 유지하는 한편, 명나라의 불교 통제정책을 계승했다. 청나라 황제들은 만주족의 라마교를 존경하고 신뢰하고 있었지만, 전통불교는 비난했으며 사찰과 승니를 민중으로부터 격리 시키는 정책을 펼쳤다.

만주인과 한인을 공평하게 다루려고 노력했던 강희제(재위 1662~1722)는 중국에서 옛적부터 불교를 신봉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왔으니 금혁할 필요는 없다고 보았고, 승니는 성규成規를 지키면 된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강희제는 흥경 · 성경과 북경 사찰의 승려와 도사는 황제의 지旨로 설치하는 외에 전 시대에 칙勅으로 세운 사찰은 승려 10명, 사적으로 건설한 대사찰은 8명, 그보다 작은 사찰은 6명, 더 작은 사찰은 4명, 아주 작은 사찰은 2명을 두도록 했다. 1667년 통계에 의하면 황제의 칙명으로 건립한 대사묘는 6,073곳, 소사묘는 6,409곳, 사적으로 건립한 대사묘는 8,458곳, 소사묘는 5만 8,682곳으로 합계 7만 9,622곳이다.

옹정제(재위 1723~1735)는 “이단을 물리치고 오로지 정학을 받들어라”라고 훈유를 내렸다. 그러나 부정적인 인식을 표출하고 있던 일면 뒤에는 불교에 대한 깊은 조예가 있었다. 문각선사를 신임하여 좌우에 두고 그의 정치적 의견을 받아들였다. 또한 선종의 종장임을 자처하고 스스로 원명거사라고 칭하며 불교 관련 저술을 편찬했다. 『어선어록』 19권을 편찬하여 역대 선종 종장들의 어록도 정리했다.

건륭제(재위 1736~1796)도 제도적으로는 옹정제처럼 불교를 통제하는 정책을 폈다. 도첩제 실시에 의한 불교 · 도교의 숙정정책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유교주의 중화황제'를 지향한 불교관을 표출했다. 그 결과 승니를 무용지물의 존재로 인식하여 엄격히 단속했다. 그러나 자신은 불법을 존중하여 신심이 굳고 근신한 황제였다. 대장경 및 국어장경 등을 간각하고 번역하는 데도 진력했고, 특히 만주어로도 대장경을 번역했다.

전반적으로는 청나라 불교가 명나라 불교보다 침체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명나라 말의 운서주 · 감산덕청 · 우익지욱 · 자백진가와 같은 고명한 승려가 청나라 때는 출현하지 않았다. 반면 유 · 불 · 도 삼교합일의 움직임은 더욱 강해졌다. 민간 사회에서는 불교가 유도를 포함하는지, 유도에 불교가 포함되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융합이 진행되고 있었다.





당신은 나의 부처님 - 비뮤티(홍범석)

眞虛性宗 [2020-12-10] : 법광 거사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세계불교사는 내일(금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이전글 무비스님의 증도가 강의-065 普德華 2020-12-10
  다음글 대보적경 제40권-12. 보살장회 ⑥/4) 여래... 법성화 2020-12-10

목록으로 수정하기 삭제하기 추천하기
ⓒ 2001-2004 by Passkorea Co., Ltd. All rights reserved   

후원금보시함

신행상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