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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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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3 09:34:14, 조회 : 1,035,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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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강
是以禪門了却心(시이선문요각심)하고
그러므로 선문에서는 심. 의. 식을 떨쳐 버리고
頓入無生知見力(돈입무생지견력)이로다
생멸이 없는 지견의 힘에 몰록 들어가도다.
大丈夫秉慧劍(대장부병혜검)은
대장부가 지혜의 칼을 잡은 것은
般若鋒兮金剛焰(반야봉혜금강염)이로다
반야의 칼날이요 금강의 불꽃이로다.
非但能최外道心(비단능최외도심)이라
비단 능히 외도들의 마음을 꺾을 뿐만 아니라
早曾落却天魔膽(조증락각천마담)이도다
일찍이 천신과 마구니들의 간담을 떨어뜨리도다.
震法雷擊法鼓(진법뢰격법고)여
법의 우뢰를 떨치고 법의 북을 두드림이여
布慈雲兮灑甘露(포자운혜쇄감로)로다
자비의 구름을 펼치고 감로의 법비를 뿌림이로다.
시이선문요각심
是以禪門了却心하고
그러므로 선문에서는 심의식을 떨쳐버리고
여기서 ‘심(心)은 근본 마음이 아니라 앞 구절에서 말한 심의식을 지칭한 것입니다. 깨달음을 으뜸으로 삼는 선종에서는 심의식을 완전히 떨쳐 버린다는 것입니다. 사량 분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조 스님께서 “무념으로 종을 삼는다[無念爲宗(무념위종)]고 하시고, 선종에서 화두(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심의식의 활동을 벗어나는 데 화두보다 좋은 방편이 없습니다. 화두를 통해 심의식의 활동이 잦아들게 되면 차츰차츰 동정일여(動靜一如), 몽중일여(夢中一如) 나아가 오매일여(寤寐一如)의 깊은 경지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간화선(看話禪)입니다.
돈입무생지견력
頓入無生知見力 이로다
생멸이 없는 지견의 힘에 몰록 들어가도다.
간화선을 통해서 깊은 선정의 경지를 맛보고 체험하건, 육조 스님이나 영각 스님처럼 경전 한 구절에서 몰록 심의식이 미치지 못하는 차원에 계합하건 귀결점은 똑같습니다. 길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방법은 많습니다. 길도 여러 갈래고, 걸어갈 수도 있고, 케이블카를 타고 갈 수도 있습니다.
그 많은 길 가운데 선종의 길은 무엇인가? 사량 분별로 이리저리 꿰어 맞추고 계산하던 심·의·식을 훌러덩 던져 버리고 본래 생사가 없음을 꿰뚫어 보는 지견(知見)의 힘에 단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선문답(禪問答)을 살펴보면 이런 선종의 입장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조사께서 말이나 행동으로 법거량을 던졌는데 상대가 머뭇거리고 얼른 대답을 못하면 당장 고함을 치고 방망이가 날아옵니다. 머뭇거린다는 것은 심의식을 굴린다는 것이지요. 그건 선종에서 도적처럼 여기는 심의식의 활동이지 직관(直觀)이 아닙니다. 선(禪)에서 중요시하는 직관의 힘이 바로 영가 스님께서 말씀하신 ‘무생지견력’입니다.
신청곡 : 식은 차를 마신다(수안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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