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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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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5 23:01:19, 조회 : 1,012,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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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대장경의 간각
청나라 때도 대장경 간행 사업은 계속되었다. 명나라 만력제 말부터 시작된 『가흥대장경」이 1707년이 되어서야 완료되었다. 강희 연간에는 『속장경』 및 『우속장경』이 간행되었다. 이어 1735년에 장경관을 열어 대장경 조각 준비를 마치고 4년여의 시간을 들여 1738년에 완성된 『용장』 혹은 『청장』이 있다. 이 대장경은 명조의 『북장』을 기초로 고승의 찬술과 어록을 조금 증각했는데 합계 1,672부, 7,247권이었다.
『용장』과 함께 건륭제의 사업으로 『만주어역대장경』이 있다. 건륭제는 만주어로 된 대장경 간행을 염두에 두고 1757년에 『번장목록』을 끄집어내어 티베트 경전을 조사했다. 그로부터 2 년 후에 만주어 몽골어 · 한어 · 티베트어 네 언어로 번역해 대조한 『대장전주』를 편찬했다.
이윽고 1773년에는 한문대장경을 만문으로 번역하는 작업을 실시하여 1790년에 이르기까지 18년의 세월을 걸쳐 699부, 2,466권을 완성했다.
④ 거사불교
중국불교사에서 세력이 가장 쇠미했던 시대는 청나라 때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지식인이자 유력한 관직을 가지고 있던 자들은 불교를 새롭게 인식했다. 승려가 아니면서도 승려 이상으로 이론에 통달하고, 학해신행 면에서 뛰어난, 소위 거사에 의해 불교가 움직여지는 거사 불교의 성립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었다.
거사란 사회적으로 상당한 지위와 교양을 지닌 우바새, 즉 불교의 심오한 뜻에 정통하고 경전에 대해서도 전문적인 교양과 이해를 가지며, 불교 교단의 호지에도 노력하는 돈독하고 신실한 자를 가리킨다. 거사 불교는 송나라 때부터 점차적으로 발달하여 명 · 청 시대에 발전을 이루었다. 이후 불교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유자에 의해 유지되어 갔다. 이는 유교 · 불교의 일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청나라 불교를 거사 불교, 즉 재가 불교라 칭하게 된 까닭이다.
거사 불교 발흥은 명나라 말에 출현한 운서주굉 · 자백진가 · 감산덕청 · 우익지욱 대사의 영향이었다. 특히 운서주굉의 사상적 배경은 화엄종으로 참구염불을 극력 주장했다. 명나라 말기의 거사들은 염불을 주요 수행 방법으로 삼았다. 거사의 배출은 장강 유역을 중심으로 하는 선종제가인 종풍숙정 · 행의엄정의 공헌 덕분이었다. 거사 불교의 대표적인 존재인 소주 장주 출신의 팽 소승( 1740~1796)은 자행화타 · 염불행에 생애를 바쳐 원왕생인의 숙망을 달성 했다. 이는 이전 시대에 유례를 볼 수 없는 일로 전수정토의 발전을 이루어 중국 거사 불교사에 부동의 족적을 남겼다.
청나라 말 청일전쟁의 패배로 열강의 침략이 격화되어 재정은 고갈되고 경제는 침체했다. 서양 세력은 영토 할양을 요구하여 양무자강 운동만으로는 서구의 압력과 국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인식했다.
서구 근대사상에 진화론과 불교를 보강한 개혁사상, 즉 대동의 정치철학을 구축한 캉유웨이(1858~1927) 등은 변법유신을 추진했다. 정치 · 경제 · 사회 · 교육 · 군사 · 가치관을 개혁하자는 변법을 주장하던 인사들의 많은 이가 불교에 끌렸다. 량치차오(1873~1929)는 “청나라 말 사상가들에게 하나의 저류는 불교였다."라고 서술했다.
불교 부흥의 직접적 계기를 만든 이는 양원후이(1837~1911)였다. 그는 1866년 난징에 금릉각경처를 창설하여 불서를 연구하고 수집하여 간행했다. 또한 동서사상의 융합을 시도한 담사동(1865~1898) 등과 함께 변법 활동도 함께했고, 불교 진흥과 서양에 불교 전파를 지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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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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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광 거사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세계불교사는 내일(목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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