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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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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7 00:51:47, 조회 : 1,063,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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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본 점령 시기
1895년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청으로부터 타이완을 할양받았다. 각 지역에서 무력 저항이 일어났지만 오래지 않아 진압되었다. 타이완 주요 지역에 군대가 주둔하면서 일본불교도 함께 전파되었다. 초기에 일본불교는 종군 포교의 성격을 띠며 군인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삼았다. 일본에 대한 저항이 줄어들면서 이들은 점차 포교 활동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의 정토종, 진종 본원사파, 조동종, 임제종, 진종 대곡사파, 진언종 등 각 종파들은 교세 확장을 위해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었다.
1905년 일본은 타이완불교의 종파, 사원 종류, 법회 의식, 신도 현황, 재산 등 개괄적인 상황을 이미 파 악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신앙 활동까지 간섭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의원이나 일본어 강습소 등 공익시설을 운영하면서 점차 포교 활동을 전개했다. 1900년을 전후하여 일본의 각 종파 본산에서 경제적인 문제로 포교 비용을 줄이거나 중지하자 타이완의 포교소들은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 일본인 관리나 상인에게 집중하면서 타이완인을 대상으로 한 포교 활동은 위축되었다. 그러나 각 종파의 종지나 의례가 다르다는 점 때문에 일본 본산에서는 다시 타이완에서 종교 활동을 전개 했다.
1900년대 초기, 대륙 불교의 영향을 받고 있던 타이완불교는 특정 도량을 중심으로 나름대로의 전통을 형성하고 있었다. 북부 지역에는 지룽 웨메이산 링취안선사파, 타이베이 관인산 링윈선사파, 마오리 다후 파윈선사파가 중심을 이루고 있었고, 남부에는 가오슝 다강산 차오펑사파가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이들 사대법맥은 비슷한 시기에 형성되어 점차 다른 지역으로 영향을 확대시켜 나갔다.
지룽의 링취안사는 산즈(1852~1906)와 산후이(1881~ 1945)가 창건했다. 이들은 재교 출신으로 후에 푸젠성 구산 용취안사에서 계를 받고 타이완에 사찰을 건립하려고 했다. 1908년, 산즈의 뜻을 이 어받은 산후이가 사찰을 건립하고 주지를 맡았다.
산후이는 이미 1907년에 일본 조동종 승적에 가입되어 일본 본산의 임명을 받아 조동종의 포교사로도 활약하고 있었다. 따라서 일제 통치 기간에도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고 교육과 홍법 활동을 전개할 수 있 었다. 그의 제자인 더룽(1884~1977)은 타이완 승려로는 처음으로 일본에 유학했으며, 귀국 후에 타이완 과 일본의 불교 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산후이는 1910년, 단기학원을 개설하여 젊은 승려들을 교육시켰다. 1917년에는 조동종 별원의 신위안(1881~1970) 등과 함께 불교 청년회를 조직하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인 불교중학림을 설립했다. 중학림은 초기에 모금으로 운영되었으나 후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일본 조동종의 보조를 받았다. 이후 이름은 '사립 조동종중학림’으로 바뀌었다.
관인산 링윈선사는 1909년 바오하이가 설립하여 번위안(1883~1946)이 이어받아 발전시켰다. 번위안은 1917년에 일본 임제종 묘심사파에 가입했으며 타이완 포교사로 임명되었다. 그는 산 후이와 함께 공진회, 불교중학림 등의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또한 '전난학림'을 창립하여 승려와 재우들을 교육시켰고 '타이완불교도우회'를 조직했다. 1915년 타이완 총독부가 타이완 불교계 전체를 포괄하는 조직을 구성하려고 하자, 산후이와 함께 회의에 참여하여 '난잉불교회'를 조직하게 된다.
연등축제 - 안수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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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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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광 거사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세계불교사는 내일(월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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