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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불교계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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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02 11:35:12, 조회 : 2,182,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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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4720060201_22381595.jpg (80kb) 다운 :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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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글을 새겨넣는 나무판자야말로 함께 수행할 가장 가까운 도반임을 느낍니다.”서각가이자 국내 선(禪) 판화의 대가로 알려진 혜안(46) 스님이 최근 에세이집 ‘그래, 떠나 보거라’(열린박물관)을 펴낸 데 이어 오는 9∼18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불일미술관에서 특별초대전을 갖는다. 수행자로서 기본에 충실하면서 서각 활동에 두각을 나타낸 그의 진면목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강원 강릉에서 태어난 혜안 스님은 1973년 월정사로 출가해 조계종 총무원 문화국장, 칠곡 송림사 주지 등을 지냈다.
월정사 행자 시절 가난한 때라 노스님들이 다짐을 두던 “신도들의 주머닛돈 뺏지 말고 혼자 살 수 있도록 생산적인 기술을 익히라”는 말을 늘 가슴에 새겼다. 스님은 언제부턴가 절에 걸린 현판과 주련에 마음이 끌리면서 생산적인 일 하나를 서각(書刻)으로 삼았다. 때마침 법장 노스님으로부터 서각을 배우면서 목판에 글을 새긴다는 것이 그렇게 의미 있는 줄 몰랐다. 서각은 판자를 만드는 데도 엄청나게 손이 가고 나뭇결 하나라도 거스르면 글자가 어긋나는 고된 작업이지만, 작품으로 탄생했을 때의 기쁨은 그 어떤 감로수에 비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너무 서각에 빠져 있을 때는 노스님이 크게 나무라곤 했다.
“노스님이 어찌나 엄하게 꾸중하시던지 끌과 망치를 던져 버린 것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 15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흔들림이 없어졌지요.”서각에 손댄 지 어언 20여년. 혜안 스님은 이제 서각을 통해 부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며 수행에 매진하고 있다. 서각은 그의 수행을 더욱 정진시켰고 중생을 돕는 데도 긴요하게 쓰였다. 그는 서각에 입문한 이래 8회의 개인전, 3회의 단체전, 태국왕실 특별초대전(2002년 방콕) 등을 가졌다. 이러한 그의 열정은 ‘문화포교’, ‘생산불교’라는 이름으로 국내외에서 속속 열매를 맺기도 했다.
그가 최근 펴낸 에세이집 ‘그래…’는 수행하거나 작품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들이 그대로 녹아 있다. 출가 이후 숱하게 들어온 큰스님들의 법문은 바로 ‘마음’의 문제였다. 책은 맑디맑은 그의 심성을 거울처럼 비춰준다. 그는 “경전에서 마음에 관한 법문을 찾아 부끄러운 내 소견을 달아 본 것”이라고 겸손해 하지만, 오히려 그의 삶에서 배어나온 다양한 깨달음을 경전이 오롯이 받쳐주고 있다. 에세이에 등장하는 소주제들이 시와 수필처럼 담백한 절제미에 흠뻑 빠져들게 한다.
‘일획일각(一劃一刻)’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불일미술관 특별초대전에서는 불교경전 서각작품과 선화적 느낌을 주는 목판화 150여점을 선보인다. 해인사 장경각에 보관된 ‘금강경’ 경판을 본떠 만든 ‘금강경 경판’이 특히 주목된다. 3년 동안 매달린 끝에 금강경 1∼20편 6700자를 병풍처럼 서각했지만, 마무리할 무렵 두 글자가 빠진 것을 발견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소중한 작품이다. 이 밖에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서각한 ‘반야심경 8폭 병풍’과 주먹만한 염주알에 반야심경과 ‘옴 마니 반메 훔’을 새긴 15m 길이의 ‘108 염주’도 눈여겨볼 작품들이다. “불교는 경전 구절을 외워 남에게 전파하는 종교가 아니라 수행으로 체득한 삶의 지혜를 실천함으로써 다른 이들을 감화하여 따르게 하는 것이지요.”혜안 스님은 불교 서각의 전통을 계승하고 미래의 방향성을 개척하는 일에도 힘을 쏟을 각오다.
세계일보&세계닷컴, 정성수 기자 hulk@segye.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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