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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으로 보는 세계 불교사 99
법광(法光) 2021-03-07 01:34:57, 조회 : 958, 추천 : 0



2. 헤이안 시대의 불교

헤이안 불교는 9세기 초엽 사이쵸(767~822)와 쿠카이(774~835)에 의한 천태종과 진언종의 성립으로부터 12세기 말 가마쿠라 신불교가 출현할 때까지 약 4백 년간의 시기를 말한다. 천태종과 진언종은 나라 말기 강조된 산림 수행과 국가불교의 그늘을 벗어난 민간 포교의 토양 위에 관대사 불교에 대한 비판의식으로부터 형성되었다.

불교가 국가에 포섭된 남도 불교와는 달리 불교와 국가는 별도의 차원에 있으면서도 성속 이원론에 입각한 왕법불법상의론王法佛法相依論의 국가불교 이념을 확립했다. 또한 종래의 종을 중심으로 한 학단 불교와는 달리 실천적 구제론에 바탕을 둔 대승적 불교를 지향했다. 사이쵸가 “논論은 경經의 말末, 경은 논의 본"이라는 입장을 주장한 것처럼 천태종과 진언종은 각지의 지식 집단과 연대하여 불법의 대중화에 성공했다.

수도를 교토로 옮긴 칸무(재위 781~806) 천왕 대의 불교정책은 율령제를 재건하려는 일환으로 세워졌다. 불교의 문란을 엄하게 다스리고자 승니령 조문을 사회의 실정에 맞게 현실적으로 적용시켰다. 나라 말기에는 묘당과 유착하는 등 불교계의 세속화가 두드러졌다. 이에 조정은 코닌 일왕이 허락했던 신성한 산림에서 수행한 지계 청정한 승려들이 국가를 지키고 민중에게 이익을 줄 것으로 보았다. 사이쵸와 쿠카이는 시대의 추이에 맞추어 『법화경』과 진언다라니의 의미를 각각 새롭게 해석하고, 보편적인 구제 종교로서 천태종과 진언종을 입종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엔도 오즈노를 창시자로 하는 수험도의 출현으로 전통적인 산악 영장과 불교사상이 자연신앙의 한 갈래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사이쵸는 9개월간 중국의 천태산 등을 역방하며 원선계밀圓禪戒密이라고 하는 소위 4종상승을 받고 귀국한 후, 수도 교토의 동편인 히에이산에 천태법화종을 세운다. 현재 일본 천태종의 총본산인 엔략 쿠지는 그때 사이쵸가 세운 이치죠시칸인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보가 순탄치만은 않았다. 시련은 남도 육종의 대표 주자였던 법상종 토쿠이치 의 논쟁으로 시작되었다. 토쿠이치는 인간의 능력은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어 있는바 삼승으로 구별되고, 누구라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법화경』의 방편일 뿐이라는 5성 각별설에 근거하여 사이쵸를 비판했다. 토쿠이치의 주장에 대해 사이쵸는 『조권실경』 · 『수호국계장』 · 『법화수구』 등의 저술을 통해 『법화경』에 나온 삼승의 구별이야말로 방편이며, 오히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는 일승을 설한다고 반론했다.

법상 교학을 혁파한 그가 다음으로 부딪힌 현실적인 장애는 계단 설립에 관한 문제였다. 당시에 정식으로 계를 받아 승려가 되기 위해서는 나라가 설립한 계단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산가학생식』을 조정에 제출하여 독립된 계단의 획득을 목표로, 그것도 기존의 소승계가 아닌 대승계 수여를 목표로 교리와 실천의 양면에서 대승불교의 실질적인 확립을 주장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현계론』을 저술하여 승관을 두어 승려를 국왕이 통제하는 것은 정도에 어긋난다고 하는 반론을 제기하기까지 했다.

독립 계단의 숙원은 그의 생애에 실현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사후 7일이 지나 마침내 칙허를 받았다. 이에 따라 다음 해부터 새 수계 제도가 시작되고, 5년 뒤에 마침내 히에이산에 천태계단원이 만들어졌다. 사이쵸는 대승불교의 최고봉인 천태, 선, 화엄, 정토, 밀교 등의 사상을 총망라하는 법화일승의 통일불교 를 일본에 완성시킨 것이다.

쿠카이는 당나라에 들어가기 전부터 유불도 삼교의 우열을 논한 『삼교지귀』를 찬술할 정도로 불교에 해박한 지식을 자랑했다. 2년 동안 중국의 여러 사원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특히, 불공과 선무외의 제자인 현초에게 각각 금강계와 태장계의 밀교를 배운 청룡사의 혜과로부터 진언밀교를 전수받았다. 귀국 후에는 왕실과의 관계가 깊어졌으며, 이를 통해 나라 토다이지에 관정 도량을 만들고 고야산에 진언종의 총본산인 콘고부지를 건립했다. 더불어 교토에 토지를 부여받고 이를 진언밀교의 전문도량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서민을 위한 종합 교육 학교인 슈게슈치인을 세웠다.





인연설(因緣說) - 하이런

眞虛性宗 [2021-03-07] : 법광 거사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세계불교사는 내일(월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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