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방송게시판
|
|
|
|
![]()
|
|
2021-03-08 17:09:51, 조회 : 1,008, 추천 : 0 |
|
|
|
제 29강
불견일법즉여래(不見一法卽如來)니
한 법도 보지 않는 것이 곧 여래이니
방득명위관자재(方得名爲觀自在)라
바야흐로 이름을 관자재라고 한다.
요즉업정본래공(了卽業障本來空)이나
깨달으면 업장이 본래 공하지만
미료환수상숙채(未了還須償宿債)라
깨닫지 못하면 호흡지기 묵은 빚을 갚아야 한다.
기봉왕선불능손(飢逢王饍不能飡)하니
배는 고픈데 왕의 음식을 만났으나 먹지를 않으니
병우의왕쟁득차(病遇醫王爭得差)아
병든 사람이 의왕을 만난들 어찌 아을 수 있으랴.
재욕행선지견력(在欲行禪知見力)하니
욕심의 상태에 있으면서 선정을 닦는 것은 지견의 힘이니
화중생련종불괴(火中生蓮終不壞)로다
비유컨대 불 속에서 연꽃이 피는 것과 같아서 마침내 파괴되지 않도다.
불견일법즉여래
不見一法卽如來니
한 법도 보지 않는 것이 곧 여래이니
불교에서는 심외무물(心外無物), 마음 밖에 사물이 없다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 눈에는 온갖 차별상이 가득합니다. 이 차별상이 모든 마음으로 지어진 것일 뿐, 자체의 성품이 없습니다. 즉 자성(自性)자리에서 보면 일체 차별상(差別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 한 법도 보지 않는다〔不見一法(불견일법)〕’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 ‘한 법도 보지 않는다’고 해서 자기 눈을 감아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거나 전체를 싹 쓸어 버려 텅 비게 만들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안목(眼目)이 바뀌는 것입니다. 실상을 보는 눈이 열리면 지금 있는 이대로 본래 한 물건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도안무물(道眼無物)이라고도 합니다. 그 경지가 바로 여래라는 것입니다.
방득명위관자재
方得名爲觀自在라
바야흐로 이름을 관자재라고 한다.
‘관자재(觀自在)’는 보는 것이 자유자재하다. 자유자재로 관찰한다는 뜻이고, 관세음보살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한 법도 보지 않아야 관이 자유자재하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차별상에 사로 잡히면 이것과 저것이 영 다른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물은 물로만 보고, 구름은 구름으로만 봅니다.
구름과 물 사이에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있는 것처럼, 구름은 물이 아니고 물은 구름이 아니라 여깁니다. 이것이 관이 자유자재하지 못한 것입니다. 구름과 물의 차이는 모양의 차이일 뿐 성품은 동일하다는 것을 알 때, 비로소 구름과 물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그 물을 구름이라 부르고, 때로는 그 구름을 물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관이 자재한 것이라 합니다.
신청곡 :구름이 되어(도신스님) |
|
|
|
|
|
|
|
|
|
|
|
|
ⓒ 2001-2004 by Passkorea Co., Ltd. All rights reserved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