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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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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0 11:47:53, 조회 : 1,000,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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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즉업장본래공
了卽業障本來空이나
깨달으면 업장이 본래 공하지만
일체가 다 마음뿐이었음을 깨달으면 업장(業障)도 따로 업장이라 할 게 없는 것입니다. 그 낱낱의 업을 하나의 마음으로 관찰하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금을 가지고 불상을 만들고, 코끼리를 만들고, 물고기를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더라도 그것은 금입니다.
업장이 공하다고 해서 인과(因果)를 무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불상, 코끼리, 물고기를 각각으로 보아 어느 하나는 취하고 어느 하나는 버리려 드는 것도 문제지만 불상, 코끼리, 물고기를 몽땅 녹여 한 덩어리로 만들라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두 가지 모두 겉모양에 끌려 다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일컬어 "인과에 떨어졌다[落因果(낙인과)]"고 합니다.
겉모양에 사로잡힌 집착을 버리고 성품을 보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했건, 하고 있건, 하려고 하건 그것이 모두 우리의 마음 작용이고, 하나의 자성이란 사실을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의 성품이 인연 따라 갖가지 모양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인과에 어둡지 않다[不昧因果(불매인과)]" 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성을 밝힌 분들을 보면 보통 사람보다 더 정확하게 보고, 더 세밀하게 사유하고, 더 신중하게 말하고 행동합니다.
미료환수상숙채
未了還須償宿債라
깨닫지 못하면 모름지기 묵은 빚을 갚아야 한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조론(肇論)》이라는 희대의 명작을 남긴 승조법사는 "머리를 칼날 앞에 들이대도 봄바람을 베는 것과 같다" 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살림살이가 아니고야 어떻게 형장에서 이런 말들이 흘러나올 수 있겠습니까? 거짓으로는 이런 표현을 할 수 없습니다. 이미 '불견일법(不見一法)'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 승조법사에게는 삶도 죽음도 한 구비 출렁거리는 물결일 뿐입니다.
하지만 본래 평등한 성품자리를 깨닫지 못하고 차별상에 사로잡혀 살면 어떻게 되는가?
가사백천겁 소작업불망
假使百千劫 所作業不亡
인연회우시 과보환자수
因緣會遇時 果報還自受
백천 겁이 흐른다 해도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않아
인연이 맞아 떨어질 때
과보를 스스로 돌려받는다.
크게 깨달아 차별상에 사로잡히지 않고 나아가 삶과 죽음마저도 초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과거에 진 빚이라 여기면서 당연하게 받아들일 줄이라도 알아야 합니다. 한 세상 살아가자면 부당하고 억울한 일들이 좀 많습니까? 하지만 불교를 배운 사람이라면 절대 원망하며 한을 품거나 앙갚음을 하려고 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불교를 배운 보람이 있는 것입니다.
신청곡 : 천상으로 보내는 편지(권미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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