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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으로 보는 세계 불교사 104
법광(法光) 2021-03-21 21:02:54, 조회 : 981, 추천 : 0



② 남북조 및 무로마치 시대의 불교
남북조는 무로마치 막부가 성립된 시기부터 전국(1336~1573) 시대까지를 말한다. 즉 막부 초대 장군 아시카가 타카우지(1305~1358)가 북조의 코묘 일왕을 옹호하면서 고다이고 일왕이 요시노로 옮겨 남북의 2조가 대립하던 시기를 시작으로 한다. 이에 따라 무장들이 전국의 패권을 놓고 할거하였다. 이러한 시대의 격변과 더불어 천태와 진언 계통은 신불교의 종파에 비해 발전이 정체되어 있었다.

이 시기 정토종은 앞에서 언급한 진서의에서 일어난 6파 가운데 백기파의 쇼게이(1341~1420)가 다른 파들을 압도했다. 그는 정토종의 종맥과 계맥의 상승을 강조하여 호넨의 저술로 전해지는 『왕생기』를 필두로 여러 조사들의 다섯 종류의 저술을 묶어 오중상전五重相傳의 제도를 확립했다. 이 제도는 우종寓宗으로 불리는 정토종의 독립을 위한 것이며, 재가신도들에게는 안심결정安心決定, 즉, 확실한 신심을 심어 주는 것이었다. 그는 승려의 학문 수행 도량인 단림에서 필독서가 된 『이장송의』를 남겼다. 제자 쇼소(1366~1440)는 포교와 저술에 힘을 쏟는 한편, 에도(현재의 동경)에 대본산 조죠지를 세워 뛰어난 제자들을 많이 배출했다. 무로마치 이후 이들 일파가 가장 번영하였다.

정토진종의 경우는 중흥조 렌뇨(1415~1499)의 활동으로 오늘날의 본원사 교단이 거대 교단으로 발전하는 기틀이 놓였다. 혼간지 7대 존뇨의 장남으로 태어나 대를 이은 그는 침체된 교단을 개혁했다. 또 교토에 야마시나 혼간지를 건립하여 포교의 근거지를 두고, 오사카에도 방사坊舍를 두는 등 전국에 걸쳐 교세를 확장시켰다. 특히 그는 신란의 『정신게』, 『삼첩화찬』을 개판하여 문도들에게 독송하도록 힘쓰는 한편, 서신인 오후미와 아미타불의 명호를 다량으로 써서 문도들에게 보내 가르침을 전파했다. 이러한 활동으로 모든 중생들이 아미타불 앞에서는 평등하다는 동붕同朋 의식으로 문도 간 동료의 연대를 강화하였다. 따라서 혼란한 사회 속에서 오히려 교단의 결집을 가져오고, 이것이 발전의 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종은 4대째의 돈카이(1265~1327)에 이르러 교토에 곤코지, 카나가와현에 쇼죠코지를 설립하여 교세의 발전을 도모했다. 그는 사후 왕생과 관련한 『시중과거장』과 조사 잇펜의 『회사전』 원본을 가지고 쇼죠코지가 시종의 중심임을 각인시켰다. 시종은 전란의 시대, 사자死者에 대한 장송 의례를 통해 서민층의 지지를 받았다. 또한 시종의 승려들이 승병으로 참여하여 무사들에게 일대사의 최후 일념을 전수하는 등 왕생의 안심을 주어 무사 층의 신뢰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한때 각광을 받았지만, 다른 신종파에 비해 사원의 소실, 종풍의 해이, 조력자들의 몰락 등으로 크게 발전하지는 못했다.

일련종은 니치렌이 후사를 부탁한 여섯 제자 가운데 뒤의 두 명을 제외한 나머지 제자들의 포교 활동으로 관동에까지 교세를 넓혔다. 무로마치 시대에 이르러서는 교토를 중심으로 관서에도 정착했다. 신앙 집단의 형태로 도시와 농촌에까지 진출한 일련종은 곳곳에 사찰을 건립했다. 하지만 니치렌의 정신을 표방하는 의궤의 존재 방식에 문제가 제기되고, 앞장에서 언급한 대로 소의 경전인 『법화경』의 해석 문제로 분파가 생겼다.

가마쿠라 신불교의 정토계 및 일련종계의 각 종파는 대체로 남북조 및 무로마치 시대를 거치면서 본격적인 분열이 일어났지만 오히려 교세 확장에는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현상은 종조의 가르침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각 분파의 주장을 확립하기 위한 과정과 시대적 상황이 결합하여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 주목할 것은 선종을 중심으로 5산이 성립되고, 이를 기반으로 한 5산 문학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중국의 남송 말기에 이루어진 5산10찰의 사격寺格 제도가 일본에도 정착한 것이다. 시초는 가마쿠라 시대 말기에서 무로마치 시대에 걸쳐 막부 및 공가의 씨사 5개 사찰을 선택하여 가마쿠라 5산이 정해 진 것에서 비롯되었다. 바로 켄쵸지 · 엔카쿠지 · 쥬후쿠지 · 죠치지 · 죠묘지였다. 이 후 임제종의 무소 소세키(1275~1351) 및 그 일문의 발전에 따라 여러 차례의 사찰 선정과 사격의 변화를 거쳐 교토를 중심으로 하는 5산 제도가 정착했다.

당시는 난젠지를 5산의 상위에 두고, 텐류지 · 쇼코쿠지 · 켄닌지 · 토호쿠지 · 만 쥬지를 교토 5산이라고 불렀다. 무가나 공가의 유력한 비구니 승려들의 사원을 니사 5산이라고도 했다. 이 외에 10찰 제도도 확립했는데 5산은 주로 교토나 가마쿠라에 소재하는 사찰에만 지정되었지만 10찰은 지방에도 있었다. 후에는 10개소에 한정하지 않고, 시기에 따라 그 수를 늘려 단지 사격만을 나타내는 것으로 변화되어 근세에 이르러는 60여 개소에 달하기도 했다. 이 5산10찰은 대부분 임제종계의 사찰이 독점했다. 여기에 속하지 않는 임제종 대응파와 환주파, 그리고 조동종계의 사찰들은 임하라고 불렸다.

5산은 막부와 중요한 관계를 맺고 주로 학술이나 문학에 관한 기능을 담당했다. 막대한 재정 후원을 얻은 5산에서는 5산판이라고 부르는 출판물을 간행했다. 이것은 선승들이 출판한 것으로 주로 중국 송원宋元판의 복각이지만 일본 승려들의 저작도 들어 있었다. 내용은 선적禪籍이 주를 이루었으며 한적漢籍도 들어 있어 이후의 출판문화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출판한 사원에 따라 이름을 붙였으며 지방에서도 사원의 이름을 딴 출판이 이루어졌다.

또한 이러한 출판문화는 5산 문학의 황금기를 떠받쳐 주었다. 5산 문학은 주로 5산10찰의 선승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문학작품을 말한다. 시초는 중국의 북송 시대 과거에 실패한 선승들이 관료 문서에 사용되는 46병려체문의 사교성 문학에서 출발했다. 이러한 풍조는 가마쿠라 시대 중국 임제종 선사 일산일녕(1247~1317)이 일본에 들어오면서부터였다. 이후 남북조 시대 『원형석서』를 저술한 코칸 시렌(1278 ~ 1346)에 의해 전수되고, 주로 토후쿠지에 전통이 전해졌다. 중국의 원나라 때부터는 선림 문학의 속화를 비판하여 시문의 제재를 불교의 영역으로 한정하고자 하는 게송주의가 제창되었다. 이러한 풍조가 축선범선에 의해 일본에 전해지고, 남북조 시대 류산 토쿠켄(1284~1358) 등을 중심으로 유행하였다.

대표적인 작가는 류산 등의 가르침을 받은 기도 슈신(1325~1388)과 젯카이 츄신(1334~1405)이었다. 기도는 게송 중심의 작품활동을 했으며, 그의 문류는 쇼코쿠지를 중심으로 전해졌다. 젯카이는 원대와는 다른 46문의 유행과 재속 문학을 지향하는 명나라 초기 선림 문학의 경향을 띠었으며, 그의 문류는 켄닌지를 중심으로 전승되었다. 이러한 5산 선림으로부터 근세에 활약한 후지와라 세이카와 하야시 라잔 등이 배출되어 일본 주자학을 성립시켰다.





잉태(孕胎) - 하윤주

眞虛性宗 [2021-03-22] : 법광 거사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세계불교사는 모레(수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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